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햇볕(火)에 잘 익은 벼(禾)를 거두는 계절인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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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16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16일 19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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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시(古典詩)의 한 형식인 칠언절구(七言絶句) 가운데 유명한 시구(詩句)가 있다. 일반사람들도 많이 애송하고, 서예작품으로 써서 남기기도 하는 글귀이다.

 

“靑山不墨千秋屛(청산불묵천추병)

流水無絃萬古琴(류수무현만고금)”

 

“푸른 산은 그림이 아니고 천년의 병풍이요

흐르는 물은 줄이 없는 만고의 거문고로다“

 

지금이 단풍철이라고 야단들인 가을이니만큼 본문의 ‘푸른 산(靑山)’을 ‘붉은 산(紅山)’으로 바꾸면 글의 운치(韻致)가 더 살아날 듯하다. 김영랑의 시(詩) ‘오매 단풍 들것네’도 머릿속을 어른거린다.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와/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오매, 단풍 들것네.'

 

한자어 ‘가을 추(秋)’는 "禾(벼 화)와 火(불 화)가 합쳐진 글자로, 햇볕(火)을 받아 잘 익은 곡식(禾)을 거둬들이는 계절”라는 의미다. 가을걷이로 따지면 ‘풍성한 계절’이고, 곡식이 무르익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따지면 ‘더욱 겸손해지는’ 그런 넉넉하고 따스한 풍경이 펼쳐지는 때인 셈이다. 

 

‘추(秋), 미(美), 애(愛)’라는 세 글자를 따로 따로 써놓고 보면 얼마나 좋은 뜻인가. 아무리 감정이 없는 돌부처라 해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글자들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언론에 회자되는 사람이름 ‘추미애(秋美愛)’를 듣다 보면 우선 짜증부터 난다. 현직 법무부장관의 이름인데도 말이다. 그 유명한 조국(曺國) 전 법무부장관에 이어 임명되고, 인사청문회 때부터 전임 장관 못지않은 논란을 일으키며 유명세도 타고 있는 분이다.

 

추 장관은 시도 때도 없이 본인의 임무는 ‘검찰개혁’이라고 늘 말해왔다.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것도 나 같은 미천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깨닫기도 어렵다. 무조건 ‘내 편’만을 옳다고 편드는 그런 고분고분한 검찰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추 장관은 그동안 많은 어록과 유명한 국회답변 등을 쏟아냈고, 지금도 식지 않고 뜨겁게 진행 중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간 일어난 추 장관을 둘러싼 갖가지 사건들, 예컨대 아들 휴가 미귀 문제를 비롯해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그에 따른 막무가내 식 검찰 인사, 부동산 대책에 대한 참견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이런 사건들’ 축에도 끼지 못할 자질구레한 일들로 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보자. 이미 지난 1월 대검의 부장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전보시켰다. 사실상 좌천이다. 문제는 6개월만인 지난 6월 ‘검·언 유착 의혹 감찰’ 착수에 따른 직무배제로 법무연수원으로 발령 내고, 용인 분원에 배치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며칠 전 근무지를 용인에서 진천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법무연수원 근무 정상화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편의상 용인에서 근무하도록 했던 것을 본원으로 옮기라고 정상화한 것이라는 얘기다.틀린 말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가 법무부 국감을 계기로 한 검사장이 추 장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국회에서 부른다면 국감증인으로 출석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히자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 문제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보복조치 아닌가 싶을 정도다. 참으로 치졸한 처사이자, 직권을 이용해 개인감정을 표출한 오만(傲慢)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지난 15일에는 자택 앞에서 취재 중이던 한 민영 뉴스통신사 기자의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출근을 방해 한다"고 비판하는 일도 벌어졌다. 추 장관은 이날 오전 "오늘 아침 아파트 현관 앞에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며  "출근을 방해하므로 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며 일을 봐야겠다."고 SNS에 올렸다.

 

 기자의 과도한 취재를 탓하는 여론도 있지만, 공인인 추 장관이 자신에 대한 언론 취재에 불편함을 드러내면서도 기자의 얼굴을 SNS에 공개적으로 올린 것은 이른바 '좌표 찍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애초엔 해당 기자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 사진을 올렸다가 이후 얼굴 부분에는 모자이크 처리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할까? 권력(權力)에 취한 오만(傲慢)의 극치(極致) 때문 아닌가 싶다. 법무부장관이라면 법질서 확립을 통해 ‘정의(正義)’를 실현해야 하는 주무부처장관이다. 상식을 가진 서민들이 판단하기에도 법 위반이나 절차상의 하자 등이 분명한 것 같은 아들 군복무 문제에서도 아주 당당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특히 사실로 판명 난 것같은 일도 일단 부인하는 철면피(鐵面皮)의 일면도 보여주고 있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는 물론 국정감사에서까지도 야당의원들의 질의에 안하무인(眼下無人)식 답변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스스로 국민의 대표라고 자부하는 여당 의원들의 행태는 오직 ‘내 편’ 만 챙기는 한쪽 대표임을 스스로 과시하고 있다. 청와대나 정부를 옹호하고 나서는 데는 ​물불을 가리지않는다. 국민을 대표해 정부를 감시하라는 본분은 잊은지 오래다. 그래서인가. 추미애 법무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야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답변이 아닌 반론과 윽박지르기를 하는 것이 예사다. 이를 자랑인 듯 과시하는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참으로 이상한 나라가 돼버렸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정부조직법상 국무위원 서열 6위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직위에 걸맞지 않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데도 국정수반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 여당의 최고책임자들까지 한 마디 쓴 소리를 하거나 시정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앞장서 방패막이가 돼주고 허물을 감춰 주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도 너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거들먹거리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께서 이런 한시(漢詩)를 접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金剛山高松下立(금강산고송하립)

漢江水深沙上流( 한강수심사상유)“

금강산이 높다하나 소나무아래 서 있고, 한강 물이 깊다하나 모래 위에서 흐른다.

 

쉽게 한마디로 풀이하자면 “너무 까불지 마라!”는 뜻 아닐까.

힘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권력에 내재하는 악마적 속성'을 경계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낭패(狼狽)를 보기 십상(十常)이란 점 명심했으면 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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