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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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학벌주의, 종말을 고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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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07일 21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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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교육운동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이 단체는 1998년 출범해 대학평준화와 서울대 해체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간 한국 사회에서의 ‘명문대 출신’ 우대 문화, 소위 계급 상승의 주요 수단인 ‘학벌’의 개념을 비판하며 누구나 출신 학교에 관계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이상향으로 삼은 조직이었다. 

 

 이번에 해체를 선언했는데, 그 이유가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철호 전 대표는 “학벌사회가 해체되어서가 아니라 그 양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벌은 더 이상 권력 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노동 자체가 해체되어가는 불안은, 같은 학벌이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풍속조차 소멸시켰다.” “같이 활동하는 20대들은 3주 이상 모임을 이어가지 못한다. 등록금 대출 갚으려 일하러 가고, 학점 관리하러 간다. 이는 아이들 탓이 아니다.”

 

 즉, 더 이상 한국 사회는 ‘학벌’이 아닌 ‘자본’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 사회임을 말하며 해체를 선언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 “언론인 하려면 학벌은 중요해.”와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나로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학벌 없는 사회 단체의 구성원들과 여타 언론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딱히 충격적이거나 심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학벌주의에서 높은 순위를 점해서도 아니고, 내가 자본권력을 지닌 소위 ‘금수저’이어서도 아니다. 당연한 흐름이고, 과정이 다소 긍정적이진 않지만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에 매우 의미 있는 양상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학벌주의 해체를 ‘거품의 해소’와 ‘지나친 경쟁이 낳은 역설적 평등’ 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간 ‘명문대’ 출신들이 주류를 이룬 주요 집단 (청와대, 대기업, 정부, 공기업, 학계, 법조계) 들 중 어느 한 곳이라도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전통적인 인재 선발 기준을 바탕으로 형성된 조직은 정체되거나 갈 길을 잃었고, 이는 그간 소위 엘리트로 칭송받던 집단의 사람들이 탄탄한 학문적 지식이나 화려한 뒤 배경은 가졌을지언정 그것이 ‘실질적인 능력’과 ‘끊임없는 능력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애초에 쓰이지도 않을 것들을 가르친 ‘잘못된 교육 체계’ 하에서 높은 순위를 점한 덕에 얻은 무의미한 간판은, 개인이 스스로 채찍질 하지 않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없고, 이는 자연히 경쟁력 도태로 이어지며 결국 “명문대 출신도 별 거 없네.” 와 같은 사회적 인식과 새로운 인재 선발 기준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작금의 상황에서 주목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문제를 해결 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고, 이 능력은 오직 그 사람의 ‘실력’을 바탕으로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학벌과 같은 무의미한 껍데기는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 밀집도 자체가 워낙 높은 인구학적 특성과 일정 수준 이상의 학벌을 지닌 사람이 수없이 많은 ‘학력 인플레’로 인해 ‘진짜 실력’을 가진 사람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오버할 필요 없다. 이제 자본만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고, 학벌조차도 의미가 없고, 결국 우리 사회는 다 끝났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절망할 필요 없다. 애초에 무너져야 했을 체계이고, 이는 역설적으로 학벌을 가지지 못한 또 다른 흙 수저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한국 사회를 좀 먹었던 ‘지역주의’와 ‘학연주의’가 무너지는 하나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지혜로운 어른들의 조언을 듣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진정 성공을 하고 싶다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높은 포지션을 점하는 성공이든, 소박하지만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나가는 성공이든 간에.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흐름은 ‘학벌주의’나 ‘지역주의’가 아닌, 당신의 목표와 가치관에 공감한 사람들과 함께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인연주의’이며, 그 인연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당신의 ‘실력’과 함께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원래 2학년이어야 하지만 1학년인 나는, 대학교를 한 번 옮긴 사람이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내 인생에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다는 것 외엔 말이다. 여전히 꿈을 위해 달리는 내 모습이 보이고, 그 모습에 공감한 주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람들과 함께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그림이, 대학을 옮기기 전과 후에 관계없이 빠르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다. 

 

 학벌주의, 종말을 고했다. 

 인연주의와 실력주의, 시작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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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07일 21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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