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수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사람 얘기에만 골몰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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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7월20일 10시2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20일 13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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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세상에 하도 희한한 일들이 예사로 벌어지다 보니, 국민들은 이제 웬만한 일에는 그저 시큰둥하고 지나칠 정도로 상당한 내성이 생긴 것 같다.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일들도 웬만하면 오래 가지 않아 뇌리에서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지난 4월 총선 직후 만해도 시중에는 온통 보수 야당의 괴멸적인 패배를 자조하는 목소리가 요란했으나, 요즘은 언제 그랬었냐는 것처럼, 절박하게 일깨우는 이들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다급하다 못해 비상 대책의 달인이라는 노 정객 한 분을 좌장으로 모셔다가 부랴부랴 출범한 제일 야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몇 달이 지나도 무슨 비상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간혹 들려오는 소식이란 게 뜬금없이 아직 한참 남은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이름난 요리 전문가를 후보로 내세우면 어떻겠냐는 둥, 툭툭 던지는 말들이 듣기에도 거북한 농담조일 뿐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총선에서 일패도지로 망가진 야당을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구하자고 꾸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당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건전한 운영 체제를 구축할 방도를 숙의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일신한 뒤에 당이 구현하고자 하는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골몰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당의 운영권을 넘겨받아 자기들 몫으로 떨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자리 노름이나 해보자는 심산인 것으로 비쳐져 국외자가 보기에도 심히 걱정스럽고 한편 불쾌하기도 하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는 아예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에서 자신들이 추구할 기본 노선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이라도 해 봤는지 모르겠으나, 무슨 선수를 친답시고, 사회주의 원류의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본소득’ 제도 얘기를 꺼내질 않나, 아니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개헌’ 이야기도 불쑥 꺼낸다. 어느 구석에도 당을 다시 일으키려는 ‘비상한’ 대책을 고민하는 결연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고로, 어느 나라 어떤 체제 하에서도 정당이라는 결사체가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그들이 추구할 확고한 이념을 정립하는 것이고, 달성할 최상의 목표를 정하고, 궁극적으로 펼치고자 하는 청사진인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념과 비전을 성취할 방도인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고, 그런 연후에, 동질의 정치 이념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확고하고, 출중한 자질과 역량을 갖춘 강호의 제현을 끌어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다녀야 할 일이다.  

 

이런 정당으로써의 바탕과 틀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등한시하고, 다짜고짜 이 사람 저 사람 함부로 거명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도 않고 이념과 노선을 중심으로 뭉친 정치 결사체라는 기본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사람만 모아오면 모든 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적합한 인재를 끌어 모을 정당 조직의 대의명분과 운영 룰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골을 터놓으면 물은 자연히 거기를 향해 흘러드는 이치다.  

 

또 한가지, 우리가 흔히 과장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위원회’ 형태의 조직 운영 방식이다. 사실, 위원회라고 하면 말 그대로, 소속된 위원들이 주어진 과제들을 놓고 서로 다른 각자의 의견들을 공유하면서, 토론하고, 타협을 이뤄가는 회의체일 뿐이다. 여기서 ‘위원장’의 역할이란 각 구성원들의 견해와 지식을 최대한 광범하게 도출하고 치열한 토의를 거쳐 최선의 결론을 완성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 운영의 기술자인 셈이다. 다수 위원들 위에 절대자로 군림해서 전권을 뒤흔드는 지체높은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거만한 태도로 ‘내가 곧 전부’ 라는 식의 오만함을 과시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 비상대책위원장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경제 민주화’도 보수 정당이 추구해야 할 자유시장경제 노선과는 전혀 정합(整合)되지 않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은 때때로 자신을 ‘경제 민주화’의 화신(化身)인 것처럼 내세우나, 한 마디로, 도대체 어느 나라 경제를 어떻게 ‘민주화’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 이론이란 모름지기 경제 주체들이 자유로이 진입, 퇴출하는 시장이라는 제도 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으로 배워 온 대부분의 경제학도들을 심히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본질적으로, 민주란 인간 사회의 가장 숭고한 ‘보편적 원리’ 인 반면, 경제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쟁과 선택이라는 냉정한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논리가 아닌가?  

 

한편, 우리는 자고로 ‘보수’라는 가치의 본령이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경쟁 규칙을 엄정하게 준수할 것을 기본적인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공감해 왔다. 그래서, 자유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는 결과 여하에 불구하고 경쟁 ‘과정’의 공정을 중시해 온 것이 소중한 전통이다. 그래서 언필칭 자유시장에서 경쟁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진보’ 진영에서는 정의로운 결과를 위해 과정의 불공정을 무릅쓰려는 성향이 다분하고, 극단적인 경우엔 과격한 수단을 불사(不辭)하기도 한다. 

 

한 사회에 속한 모든 주체들은 마땅히 그 사회가 합의한 보편적 법 질서와 관습을 준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합의된 법규를 위반하는 일탈 행위는 가장 엄정하게 척결돼야 할 反사회적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법규를 위반하는 주체들은 누구나 빠짐없이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받아야 함은 마땅하고 그런 관행이 공고하게 정착되지 않으면 한 사회가 건전하게 굴러갈 수 없다는 점은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다. 지금 야당 재건이라는 비상한 임무를 맡은 인사들은 스스로 법령을 준수할 의지와 이력을 갖췄는지 자성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정당이라고 해도 ​전체 사회에 형성된 큰 틀의 시장을 상정해 보면, 그 틀 안에서 ‘정치’라는 서비스 상품을 제공하는 공급자일 뿐이다. 따라서, 각 정당들은 정치 시장에서 수요자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경쟁 과정에서 발휘될 경쟁력에 따라 선택되고 그 결과로 생멸흥망이 판가름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조직의 일상적 운영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마땅히 그 조직에 참여하는 구성원 간의 경쟁이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기업 경영에서 자주 거론되는 명제이나, “(내부적으로) 경쟁을 보장하는 조직이 (대외적으로도) 경쟁력을 가지는 법” 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해, 정치인이라고 하면 흔히들 일언지하에 부패 집단으로 매도하거나 모든 정치 결사체들을 싸잡아 폄훼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애써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아직도 살아있는 정의로운 영재들이 많이 숨어 있을 터이다. 그저 겉보기에 반짝거리는 대상들에만 주목하지 말고, 음지에 자중하며 뭍혀 있는 이들 인재들을 발굴해서 잘 거두고 북돋우기만 하면 능히 이 사회를 걸머질 훌륭한 동량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위기에 처한 보수 야당은 어느 날 불현듯 신통한 현자가 만병통치약을 들고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부질없는 망상을 과감히 떨칠 때다. 조직 문호를 활짝 열어 강령에 공감하는 많은 인재들이 삼밭처럼 몰려들게 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택되는 제도를 마련할 때다. 그렇게 공정 경쟁을 통해 선택되면, 누구라도 그가 바로 기다리던 현자인 것이고,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면 될 일이다. 괜히 젊은 피를 수혈한다며 케케묵은 40대 기수론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얘기다. 나이가 적으면 모두 다 개혁적인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는 나이가 들어도 개혁 마인드가 충만한 경륜을 갖춘 이들은 차고도 넘친다. 이제는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올바른 길을 갈 때다 (Go the Right Way, Not the Eas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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