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청소년 정치교육, 선거연령 인하에 앞서 필요한 것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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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2월27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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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중학생 때, 그러니까 한 10여년 전 독서토론학원에 잠깐 다닌 적이 있다. 매주 책을 읽고, 토론보다는 문제 풀이와 선생님의 해설을 중심으로 강의가 이루어졌다. 매주 읽는 책은 청소년을 위한 정치부터 환경보호, 고등학생의 해외여행기까지 다양했지만, 선생님의 해설은 다 비슷비슷했다. 주로 당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미국에 대한 은근한 혐오를 표출하는 내용이었다. 휴대폰 원자재 때문에 고릴라 서식지가 줄어든다는 환경 관련 책을 읽고서는, 느닷없이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나쁜 것이며 ‘녹조 라떼’에 불과하다고 설명하는 식이었다. 고등학생의 아랍권 국가 여행기를 읽고서는, 팔레스타인 지구 문제를 유대인과 미국의 욕심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주한미군 철수하라는 내용의 사설을 베껴 쓰게 한 것도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 일 없이 학원을 관뒀지만, 이제 와서 찾아보니 그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

 

2006년 오마이뉴스는 386 운동권 세력들이 사교육 시장에 넓게 포진해 있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에 따르면,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밥벌이를 위해 학원 시장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94년 이후 논술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학원에서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다고도 덧붙였다. 개인적인 경험이 청소년 정치교육의 일례였음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편향된 청소년 정치교육의 현장


 10년도 더 된 일을 지금 기억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 비슷한 일을 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는 사촌동생을 만나서 다소 믿기 어려운 얘기를 들었다. 어떤 사회과목 선생님 한 명이 지속적으로 학생들에게 편향적 정치 성향의 영상을 보여주고, 과격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으로 쥐약을 보낸 한 유투버를 칭찬하는 등이었다고 한다. 해당 과목으로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은 수업을 안 들을 수도 없어 곤란해 했다고 한다. 물론 사교육과 공교육, 해당 분야가 다르지만 청소년을 상대로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이 이어지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인헌고에서 불거진 교사의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도 비슷하다.

 정권마다 역사교과서 편향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일보에서는 지난 16일 검정된 역사교과서 8종을 모두 살펴본 기사를 내면서, 8종 모두가 현 정부를 우호적으로만 서술했다고 지적했다.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촉진 등의 설명이 있다고 한다. 아직 집권 중인 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이례적이기도 하고 객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과를 말하기 아직 어려운 외교를 에둘러 칭찬하고, 논란이 되는 경제 실험 등에 대한 평가는 없는 것이 편향된 주관성을 보여준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했다가 스스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감히 5년짜리 정부가 역사를 재단할 수 없음은 모두가 알지만,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 정치교육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마다 불거지는 역사 교과서 문제 역시 청소년 정치교육이 얼마나 편향되었는지, 또 얼마나 그러기 쉬운지를 잘 보여준다.

 

차라리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계획해라


 청소년은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단계다. 본인의 정치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인 정치사회화는 여러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처럼, 주입식 교육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일방적인 정치교육을 겪는 것은 건강한 정치사회화를 오히려 방해한다. 편향된 청소년 정치교육은 학생들을 미래의 유권자 정도로만 치부하고, 특정 세력의 지지층으로 키운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는, 이러한 교육이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현상을 학문적으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편향되게 바라보면, 내 편 네 편을 나누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친구들을 반목하게 되고, 또 내 편 안에서 자유롭게 말 할 수 없는 전체주의적 문화도 생긴다. 사회화를 거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분법적인 교육은 악영향만 미친다.

 그렇다고 고등학생의 정치교육을 쉬쉬하며 막거나, 학생의 정치 참여를 손가락질할 것만은 아니다. 고등학생은 정치사회화가 어느정도 완성된 단계이고, 투표 이외에 참여할 플랫폼도 다양하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 전무해, 위와 같은 편향성 교육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육을 빙자한 선동이다. 제대로 된 교과과정이나 필수 과목이 있으면, 교과과정 외 발언이나 수업과제는 인정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교과과정은 특정 생각이나 단체를 지지 혹은 반대하는 내용이 아닌, 다양한 생각을 듣고 개진할 수 있는 토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국가의 근간이 되는 국가기관, 선거제도 등 제도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청소년과 정치를 무관하게 생각하면서 비교육적인 정치교육을 묵과하는 것보다, 정권과 독립적인 위원회에서 차라리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전략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낫다.

 

선거연령 논의 이전에 제대로 된 교육부터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채택된 선거법 개정안에는 선거연령 인하도 있다.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내용인데, 이렇게 되면 고3 학생들도 투표할 수 있게 된다. 선진국 투표연령이 주로 만 18세임을 참고한 개정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도 17살부터 투표할 수 있다. 19세는 아주 부끄러운 것’이라며 선거법 통과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기계적인 숫자로 볼 일이 아니라, 학제와 나이 체계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만 19세가 고등학교를 벗어나는 나이고, 투표연령이 16세부터 시작되는 영국은 16세에 중등교육을 끝낸다. 일본, 미국 등 7개국이 채택한 평균 만 18세는 17세 고교 졸업 이후이므로 사실상 한국의 만 19세와 같다. 이렇게 보면 ‘고등학생 투표’를 하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사회에 무작정 참여하게 하기보다는, 어떻게 참여할지를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배울 권리를 존중하는 선택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편향된 청소년 정치교육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 그런데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또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계획하기 위한 논의조차 없는 상태다. 청소년들의 배울 권리조차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면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운운하며 선거연령부터 인하하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소년들의 건강한 정치사회화를 위한 제대로 된 교육이 먼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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