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4월29일 21시11분
  • 최종수정 2016년04월30일 02시04분

작성자

  • 김민지
  •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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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한 주택가에서 불이 났다. 

 故 송국현 씨는 화재 현장을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고 4일만에 사망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었지만 장애등급 3급 판정을 받아 이동 보조 및 생활 보조를 해주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7년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다 처음 맞이한 자립생활이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국가의 편의를 위한 숫자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편리하고 불편한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란 1988년에 장애등록제와 함께 도입된 것으로 장애인을 신체적 기능 손상 정도에 따라 1~6등급으로 구분 짓고, 그에 따라 차등적인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기준은 하나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처럼 각종 의료적 검사를 받고 15가지의 장애유형으로 나눠 그에 따라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긴다. 정해진 예산으로 중증장애인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을 주기 위함이다. 그럴 듯한 명목이지만 이유 모를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 판정은 매우 중요하다. 몇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2등급을 받다가 4등급을 받으면 복지혜택은 반이 된다. 이는 결국 장애인들의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찍어주는 숫자 하나에 장애인들의 생존이 달려있는 것이다.

 

"현실성도 없고 기준도 없어…"

 장애등급제의 문제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장애인 복지가 확대되면서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강제적으로 장애등급 재심사를 요청한 것이다. 심사 과정에서 많은 장애인들의 등급이 떨어져 지원이 중단되거나 생활에 문제가 발생했다.

 

 더 높은 장애등급을 위해 내가 더 큰 장애를 가졌다며 경쟁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일어났다. 장애등급제가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을 하위의 존재로 계급 짓고 그들의 생존과 자립을 막는 족쇄 같은 제도임이 드러난 것이다.

 

 제도 자체도 비인격적이다. 인간을 몸의 손상도에 따라 1등급에서 6등급으로 구분 짓는다.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기는 순간 그들은 인간이 아닌 상품이 된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각자의 차이는 생각하지 않고 범주화된 유형에 그들을 분류시켜 넣는다.

 

 여기서 분류의 기준은 신체적 문제에만 국한된다. 의료적으로만 분류된 장애는 개인적, 사회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장애를 ‘손상’으로만 파악한다. 몸의 손상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력의 부족을 의미하고 또 다른 사회적 차별과 동정을 만들어낸다는 문제점이 있다. 

 

 장애에 대한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제도에는 장애인의 현실이 거의 반영되어있지 않는다. 장애 유형과 환경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장애등급제는 같은 등급이면 같은 혜택을 준다.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등급에 따른 일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기도 한다. 즉, 유명무실한 제도인 셈이다.

 

 판정 기준도 애매하다. 심사를 받을 때마다, 또 어느 병원에서 진단하느냐에 따라 같은 장애가 1급이 되기도 4급이 되기도 한다. 등급 판정 기준이 의료적 기준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장애의 정도는 개개인 별로 다른데 이를 무시하고 보편적인 잣대로만 정의 내린다. 

 결국 누가 판정하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뢰성이 없는 이 등급에 따라 그들의 삶의 질 역시 달라진다는 점이다.

 

자립의 족쇄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장애등급제가 큰 문제로 떠오르자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장애등급제 폐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등급제는 유지되고 있고 장애인들을 얽매고 있다. 실제로 장애등급제가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게 장애등급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다른 나라의 경우 장애인들을 수혜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립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계급적인 복지혜택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로 받아야 하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즉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이다.

 

 이제 등급으로 그들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그들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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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4월29일 21시11분
  • 최종수정 2016년04월30일 02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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