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라젠의 배신, 개미와 청년의 몰락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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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30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03일 15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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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8일 오전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이하 검찰)은 신라젠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사유는 ‘신라젠 임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시이전에 주식을 거래했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한 때, 고통 받는 암 환자들의 희망이자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의 희망이었던 ‘신라젠’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바이오산업은 두말 할 것 없는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알려져 있다. 삼성은 물론 국내 여러 기업들이 바이오산업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기업은 단연 ‘신라젠’이었다. 2019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시가총액은 3조 5899억 원에 달했고, 코스닥 상장기업 TOP 10에 들 정도로 유망했던 기업이다. 

 

 신라젠은 ‘펙사벡 (JX-594)'을 가장 주력으로 개발하고, 또 그로 인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기업이다. ‘펙사벡‘이란 우두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한 항암제이다. 

 3세대 항암제라 할 수 있는 면역 항암제로서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 이외의 세포들까지 파괴했던 부작용을 개선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게 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신체 내 면역체계를 깨워 몸이 스스로 암을 치료하도록 유도하는 특성을 가졌다고 제조사가 홍보한 약물이다. 나아가 이론상으로는 뇌암을 제외한 모든 암에 적용이 가능하여 ‘꿈의 항암제’로 불렸다. 

 

 이로 인해 신라젠의 주가는 (2016년 12월 16일 기준) 주 당 13,750원에서 (2018년 9월 28일 기준) 주 당 102,400원까지 올랐다. 그런데 최근 (2019년 8월 29일 기준) 으로는 다시 주 당 10,400원으로 하락했다.

 3년 동안 10배 가까이 올랐다가, 다시 원래 가격으로 회귀한 수준이다. 물론 주식시장에서는 유망한 기업의 주가가 한없이 상승했다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다. 그런데 왜 신라젠은 압수수색을 받았고, 수많은 투자자들은 분노하는 것일까?

 

 사실상 ‘펙사벡’이 전부인 기업인 신라젠에게는, 펙사벡의 성공여부가 곧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난 2일 신라젠 측은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 (DMC)로부터 개발 중인 신약 ‘펙사벡’의 간암 임상 3상 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다.”고 공지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신약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기초탐색 및 원천기술연구, 개발후보물질선정, 전임상 (비임상) 시험, 임상시험 (Clinical Trial)을 거쳐 ‘신약 허가 및 시판’이 가능해진다. 이 중에서도 임상시험 단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번에 신라젠에서 발표한 ‘펙사벡’의 간암 대상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한 무용성 평가 결과는 ‘임상 중단’이었다. 

 대조군인 ‘넥사바 (소라페닙)’ 단독 투여 환자군‘과 ’펙사벡 투여 후 넥사바 투여 환자집단‘을 비교한 결과 ’약물 투약 후 생존기간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즉, 그간 이 기업의 근간이었던 ‘펙사벡’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고, 자연스레 펙사벡에 사활을 걸었던 ‘신라젠’이라는 기업은 존폐여부의 갈림길에 선 상황이다. 

 

 그런데 정말 문제가 되는 점은 따로 있었다. 

 

  ‘주가’가 폭락할 것이 뻔한 발표 이전에, 신라젠 임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했다는 사실이다. 신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전무 신모 씨는 지난 7월 보유주식 16만 7777주 (88억원 상당)를 전량 장내 매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외 임직원의 친인척들도 거액의 지분을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임상중단과 관련된 내부 정보’를 알고서 실행에 옮겼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공모 (공무원교육과 공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모임)의 기획국장이자 인권변호사인 ‘이민석 변호사’는 “사기 또는 주가조작의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신라젠이 항암제 기술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밸류인베스트코리아’에서 자금을 투자받은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고, 본질적으로는 신라젠이 대표적 ‘항암제’라고 내놨던 ‘펙사벡’이라는 약품이 이미 2013년 임상시험 2b상을 통과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또한 여러 해 동안 회사는 영업 손실과 적자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원들 중에는 최대 103억 원의 연봉을 받은 사람도 있었고, 50억 이상의 연봉을 받은 임직원도 총 6명에 달했다고 한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2017년 12월과 2018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150만주가 넘는 주식을 처분하여 ‘13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현금화했고, 대표의 친인척 4명도 그 시기에 800억 원 가량을 현금화 했다. 앞서 지난해 초엔 지성권 전 이사와 박철 전 사외이사가 100억 원 안팎을 챙기고 사임한 사실이 있다. 

 

 요약하자면 “있지도 않은 꿈의 항암제로 주가 띄우고, 그렇게 들어온 자금으로 회사 임직원들 연봉 파티하고, 띄운 가격대로 주식 팔아서 큰 돈 벌었지만, 항암제는 효과도 없었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즉,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자금을 노련하게 탈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라젠은 도덕적,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국가를 이끌 신사업, 미래 먹거리’에 투자했던 수많은 개미투자자들, 청년들, 신라젠 소속 일반 사원 연구원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실제로 신라젠에 투자했던 지인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한다는 말을 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일이 이 지경까지 오는 동안, 금융당국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토록 대담하게 ‘작전’을 펼쳤는데도,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내버려둔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과정에서 발생한 천문학적인 자금은 개인에게만 귀속되는 것인지, 아니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묻고 싶다. 

 

 오늘 오전 11시 경 서울시 영등포구 HP 빌딩에 위치한 신라젠 서울 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했고, 1층 중앙 로비의 안내원에게 방문을 요청했더니 “담당자 인솔 하에 가능하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사람이 있긴 한가.”라는 질문에는 “그건 저희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았다.  

 베일 속에 감춰진 신라젠, 접근조차 불가능한 사무실. 이제 드러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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