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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논란되니 “불륜女” 딱지… 베트남 이주여성 폭행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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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02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02일 15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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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여성 폭행 논란… 그는 왜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최근 남편에 의해 베트남 이주여성 아내가 폭행당하는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공분을 샀다. 논란이 커지면서 갑자기 피해자 A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남편의 전 부인이라고 밝힌 익명의 누군가가 A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A가 전 부인의 자리를 ‘빼앗았’으며, 그가 ‘작정하고’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의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A를 둘러싼 여론은 순식간에 싸늘히 식어갔다. 어느새 남편의 무차별적인 폭행이 아닌 A의 국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폭로가 있었던 지난 달 9일부터 15일까지 유튜브에는 A를 비방하는 영상이 27건 게시(언론사 제외)되었다. 총 조회수는 21만7천 회였다. 같은 기간 동안 남편의 폭행을 비판하는 영상은 7건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사건이 공론화된 7일부터 9일까지의 영상 수를 합쳐도 여전히 A를 비난하는 영상이 더 많다. (유튜브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어떻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나, 민주언론시민연합)

 

전 부인의 주장은 검증 없이 인터넷 뉴스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A에 대한 비난 역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삽시간에 여론은 A를 포함한 이주여성 전반을 돈과 영주권을 목표로 입국한 파렴치한으로 매도했다.

 

 왜곡된 부계 혈통주의와 국가의 묵인


중개업체를 거친 국제결혼은 매매혼에 가까운 진행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남편과 시가는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사온 노동 인력으로만 취급하는 경우가 다수다. 노동력 착취를 비롯해 성적 학대도 빈번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폭력이 살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존재해 왔다. 이주여성이 처한 비극적 현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러한 이주여성은 한국에서 이주민으로서 살아간다. 그의 지위는 국가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해당 조치는 남편과 시가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신원보증제는 폐지됐으나 실제로는 해당 결정이 공무원 재량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남편과 시가의 입김이 강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결국 90년대부터 국가에서 추진했던 일명 ‘농촌 총각 결혼시키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 그 중심축은 결국 대를 잇기 위한 노력이다. 90년대까지 횡행했던 여아낙태, 여아입양과 더불어 이야기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지금껏 결혼이주여성이 처한 현실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다는 국가적 변명으로 가려져 왔다. ‘러브 인 아시아(KBS1)’부터 ‘다문화 고부열전(EBS)’까지, 방송계 역시 이에 일조했다.

 

 필요할 땐 ‘공동체’, 권리 주장하면 ‘외국인’?


농어촌 고령화는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심각한 의제로 대두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현재 유일한 희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때로는 농어촌 특유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이주민 대상 폭력을 방조하기도 한다. 농장주와 이주노동자의 관계는 기타 작업장과 비교했을 때 불평등한 위계질서를 가진다. 숙소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 환경부터 체류 문제까지 농장주의 재량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경우 농장주의 위계형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작년 ‘미투 운동’의 물결을 타고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이주여성들은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라는 아우성을 마주했다. 여론은 그들을 영주권을 노리며 한국에 기생하는 존재로 취급했다. 이러한 입장을 골자로 하는 청와대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1339)은 남편을 처벌해 달라고 하는 다른 청원들의 동의 합보다 더 많은 청원 수를 기록했다. 이는 아마도 가정윤리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불륜 키워드가 자극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가정파탄범’은 해당 여성이 아닌 남편이다. 아이 앞에서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내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그 남편 말이다.

 

이번 사건은 A가 대표하는 이주여성의 현실을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한다는 경고등이다. 관련 게시글과 댓글에서는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기 싫다며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에 침묵하는 것 역시 이를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묵인이 지금까지 이주여성을 억압해 온 구조를 공고히 해 왔기 때문이다. 착취와 폭력을 멈추라는 호소에 추방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의 여름은 너무도 쌀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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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02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02일 15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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