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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눈에 띄지 마세요" 백화점 비정규직의 설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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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5월10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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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노동자에게만 요구된다


잠실의 한 대형백화점 푸드코트에서 파견노동자로 근무한 적이 있다. 모두가 유니폼과 조리복, 또는 같은 색 무지 티셔츠를 착용하는 곳이었다. 월 1회 있는 관리감독일, 정장을 갖춰 입은 감독관은 유달리 눈에 띄었다. 고용노동부 측에서 조사를 나온 근로감독관인가, 잠시 호기심을 가졌지만 이내 목에 걸린 본사 사원증을 발견했다. 바삐 돌아다니는 감독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점장과 매니저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관리감독 며칠 전부터 아르바이트생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공지가 수차례 올라왔다. 손톱을 꼭 깎고, 보건증을 제출하지 않은 이들은 전날까지 가져오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감독관은 특히 근로계약서와 보건증이 매장에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했다.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그는 주방 뒤편에 아르바이트생을 집합시켰다. 그리고는 심각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핸드폰 사용하지 마세요” 매장 안에서는 물론이고 점심을 먹으러 갈 때, 하물며 화장실을 갈 때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동자의 휴식은 왜 보장되지 못할까


감독관은 노동자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자 하나 없는 열악한 노동 환경은 관행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졌다. 특히 휴게 시설에 관해서 그랬다. 매니저는 우리가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 휴게 시설이 주어지지 않는다며 자조 섞인 투로 말했다. 이는 본사와 감독관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지 모른다. 근로기준법에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평균 8-9시간을 서서 일하는 이에게 휴게 시설의 부재는 암담했다. 고객의 눈을 피하라는 기조를 지키면서 앉아 쉴 곳을 찾는 것은 매번 고역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해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이들도 존재했다. 

 

휴게시설 미비에 대한 지적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지난해 판매직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고용노동부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를 사업현장에 배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제시된 방안인 ‘가이드 배포’는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 또한 지난달 19일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79조에 휴게 시설 관련 조항이 담겨 있지만, 내용이 다소 모호하다. 이렇듯 정부는 매번 권고 수준으로 그쳤다. 이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자는 많지 않다.

 

노동 환경 개선은 복지 아닌 권리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은 대부분의 서비스 노동자를 단기 계약직, 그리고 파견 형태로 고용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택하는 것이다. 인력을 제공하는 아웃소싱 업체, 즉 인력전문회사는 채용과 임금 지불 등을 담당한다.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시 감독하는 것은 파견된 작업장의 사용자인 원사업주다. 이러한 분리가 노동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황제 노조’는 없다. 평균적으로 노동 기간이 짧아 노조를 꾸릴 여력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사측에서 이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매니저의 말처럼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백화점에는 직원 전용 구내식당이 있었다. 그러나 해당 백화점 파견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자체적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인력전문회사를 통해 고용된 이들은 임금과 식대를 해당 회사로부터 지급받는다. 사업장 측에서는 이를 근거로 들며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허나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가 식사 시간에 노동자들을 쫓아낼 권한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당시 최대한 고객의 눈에 띄지 말라는 사내 규정에 따라 인근 지하철역 상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매장과의 거리가 꽤 되어 귀중한 식사 겸 휴식시간의 1/3가량을 이동하는 데 허비해야 했다.

 

대형마트 혹은 백화점의 파견 노동직에는 경력이 적거나 전무한 20대 초반이 대거 지원한다. 노동생활을 이곳에서 처음 시작하는 이들도 다수다. 앞서 이야기한 백화점 매장의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다. 백화점 내 식당 이용은 금지되었다. 화장실 역시 직원 전용 화장실만을 이용하도록 교육받았다. 중앙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는 ‘고객 전용’이었다. 같은 그룹 계열사 대형 마트에서 3일간 판촉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다행히 휴게실은 있었으나, 기타 사항은 백화점과 같은 규정이 적용되었다. 더 나아가 고객의 시선 바깥에 놓인 동선으로 멀리 돌아서 출근해야 했다. 당시 옆 가판대의 직원 A는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보는 스무 살이었다. 숨겨지는 노동으로 첫 발걸음을 디딘 것이다. 스무 살 A의 휴게실은 벽면 도색이 벗겨지고 편한 의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마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바퀴벌레도 빈번히 모습을 드러냈다. A가 이를 당연히 여기지 않길 바랐다. 

 

한국 사회, 노동의 인간화가 필요하다


가정의 달 5월은 노동절로 시작한다. 한국 정부는 1963년부터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해 부른다. 정부와 사회는 노동자를 ‘산업역군’으로 칭송하는 동시에 그의 이름을 빼앗았다. 부지런히 일함을 뜻하는 근로’가 노동의 자리를 대신했다. 이는 노동자에게 ‘열심히’ 일할 의무를 부과했다. 사용자의 어깨 에도 동일한 무게가 놓였는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한 해 산업재해로 숨지는 노동자 수가 주요 선진국의 2~3배에 달하며, 특히 하청 노동으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시된다. 한국사회의 낮은 노동인권은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 정부에 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하며 적극 나서기도 했다.

 

작년 11월 논란이 되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발언처럼 민주노총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닐 지 모른다. 허나 노총이 약자가 아닐지라도 노동자는 약자다. 또한 ‘약자가 아니다’라는 말의 함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약자라서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노동은 사회의 동력인 동시에 모든 국민의 일상을 이룬다. 노동의 인간화는 산업혁명 이후 줄곧 노동사회의 주요 의제였다. 인간적인 노동은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다. 노동자는 깨끗한 환경에서 편히 쉴 수 있고, 든든한 끼니로 힘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과 그의 가정이 영위할 삶, 그리고 사회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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