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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시범 운영, 결제 문화에 대한 고민도 제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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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28일 17시30분
  • 최종수정 2018년12월28일 16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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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실의 바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샤워실에서 물을 틀 때 수도꼭지를 더운물 쪽이나 차가운 물 쪽으로 급하게 돌렸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오히려 수도꼭지를 가만히 둘 때 적정한 물 온도가 더욱 쉽게 맞춰진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가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꼬집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정부를 사회 효용을 증가시키려 하는 선한 존재로 가정하지만, 그의 시장개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인 셈이다.

 

 지난 12월 20일부터 ‘제로페이’가 서울, 부산, 경남 일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등장한 간편결제 서비스다. 스마트폰의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결제 가맹점에 부착된 제로페이 QR코드를 인식시키면 소비자의 계좌에서 바로 금액이 이체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카드사 수수료나 VAN 사 수수료가 나가지 않는다. 현재 소비자들의 결제 방식 중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와 각종 금융권 뱅크페이가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고 있다. 소상공인 부담경감과 시장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도 이 경쟁 시장에 ‘제로페이’를 내걸고 뛰어든 것이다. 계좌이체에 따른 결제 수수료를 은행이 부담하게 함으로써 수수료를 인하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 핵심이다. 제로페이의 빠른 보급과 정착을 위해 다양한 혜택도 제시되고 있다. 소비자는 제로페이 이용 시 40%의 소득공제 혜택을 누린다. 신용카드의 경우 15%, 체크카드의 경우 30%의 소득공제율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상공인의 경우 카드사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제로페이 가맹점 수수료는 매출액 8억까지는 0%이다. 8억~12억 이하는 0.3%이며 12억을 초과할 경우 0.5%만 부담한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20개의 은행과 4개의 간편결제 사업자가 참여 중이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두 혜택을 누린다는 것이 ‘제로페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대부분의 간편결제 앱과 제로페이가 호환되기 때문에 QR코드 규격의 표준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장점이다. 

 

 그러나 제로페이 시범운영 이후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홍보 부족으로 인해 가맹점 수가 아직 현저히 적으며 결제방법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숙지도가 떨어진다. 서울시의 자영업자 수는 약 66만 명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제로페이 가맹점은 약 3만여 곳에 그친다. 손님이 직접 금액을 입력하고 이체한 뒤, 직원이 직원용 앱을 통해 다시 결제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번거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준의 불편함은 시범운영 단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가맹점 수 확보와 이용방법 홍보를 통해 정착 단계에서 개선될 여지가 있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정부가 전자결제 시스템 경쟁 시장에 뛰어들어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에 자체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다. 특히 경제학적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개입’은 시장의 왜곡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 기존의 결제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 주도의 전자결제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 현재 소비자들의 결제 방식은 과도기에 처해있으며, 스마트폰 기반 결제 시스템이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수수료 제로’로 가격을 설정하고 시장에 끼어든다면, 이는 새로운 결제수단을 가진 사업자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유효경쟁 시장질서체제에서 ‘효율’은 ‘경쟁’을 통해 달성된다. 그러나 은행사 및 페이사들의 입장에서는 수수료 경쟁을 해 보지 못하고 정부의 정책에 따라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데다 계좌이체 수수료도 면제해주지만, 제로페이 플랫폼 이용 수수료는 부담해야 하므로 은행사의 입장에서는 짊어져야 할 것이 많다. 사업자들이 부담하는 손해가 다시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면 그들을 보호하려 했던 제로페이 정책의 목표 자체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현재 제로페이는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사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달리 말하면 기존 간편결제 서비스 사업자들의 협조와 합의가 없다면 제로페이의 성공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도하여 운영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활발히 참여하던 시중은행도 시간이 지나면 소극적으로 변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소액금액의 경우 여신 기능을 제공하는 등 기존 사업자들의 참여에 대한 유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제로페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유인을 통한 이용자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제로페이가 현재 소비자들의 결제 문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점도 있다. 경제적 주체는 Incentive, 즉 유인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소비자는 간편하고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다양한 기능이 주어진 결제 서비스를 원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은 신용카드 사용 비중이 80%에 가깝다. 체크카드 소득공제율(30%)이 신용카드 공제율(15%)의 2배임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간편결제시장에서도 삼성페이와 같은 신용카드 기반의 간편결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득공제율 40%를 적용해 제로페이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제로페이는 한국의 신용카드 결제 문화를 계좌 기반 결제 문화로 전환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각종 결제 수단이 등장한 시대에 적극적인 홍보와 유인 제공 없이 소비자의 자연스러운 결제 패턴 전환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제로페이는 40% 소득공제율 제공 외에 교통비, 공용주차장, 문화시설, 공공자전거 따릉이 등 서울시가 운영하는 유료 서비스들의 할인 혜택도 점차 제공할 계획이다. 소비자들이 제로페이 사용 시 실감하는 혜택이 커야 이용자 수 확보의 유인이 될 것이고 정책 효과도 키울 수 있다. 제로페이는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샤워실의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로페이 시범 운영 후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다.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완화와 소비자 편의 제공이라는 정책적 목표가 원만하게 달성되기를 바란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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