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적폐수사의 희생자, 故 이재수 중장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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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14일 1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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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님,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더 이상....”

지난 11일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회의 중 적폐청산을 얘기하며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떤 방송은 이를 다소 우습게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베테랑 정치인의 언행을 믿기가 쉽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필자는 순간 그의 진심을 봤다고 믿고 싶을 정도로 깊이 공감했다. 한 국민이 검찰수사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또 일어났다. 

고인이 된 이재수 기무사령관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명복을 기도한다.

 

 한 논설위원은 전직 군인들의 비극적인 말년을, 권력과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정치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 국군의 상부는 청와대이다. 국가의 최대이익이 곧 군의 일관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진적인 정치의 목표는 집권당의 최대이익이다. 최대이익과 집권 정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임정부 관계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전임 상관을 모셨던 우리 군인들의 비극적 말년이 되풀이된다. 故 이 사령관 역시 적폐청산이라는 후진적 정치로 인해 안타까운 피해자가 되었다. 

 

 기무사 불법 사찰 혐의 수사는 그의 사망으로 일단 사그라드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죄의 유무를 따져보기도 이전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은 곧 그가 정치적 수사에 희생되었음을 뜻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모욕적인 수사 방법이다. 검찰은 자진해서 영장심사를 받으러 온 사람에게 수갑을 채웠다. 변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도주 우려도 희박하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사람을 중범죄자 취급한 것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모멸감을 주며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 인권의 날을 맞아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겠다”던 대통령의 발언이 생각날 따름이다. 지켜야 할 인권에 우선순위가 있나. 

 

 사건과 무관한 지인이나 아들의 집을 수색하는 등 과도한 수사를 한 것 역시 정치적 표적수사였음을 의미한다. 수사를 해야 한다면 합법한 절차로 증거를 채택하면 된다. 그러나 절차적인 시비가 붙을 정도의 수사 압박을 가한 것은 ‘답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를 두고 지난 7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 일탈 행위”라고 답을 정해놓았다. 성과를 사실상 요구받은 검찰 입장에서는 무리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민의 기본권과 존재가치까지 쉽사리 위협하게 되는 것이 바로 정치적 표적수사이고 적폐다. 

 

 군이 청와대의 하부조직임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수사는 또한 사회분열을 조장한다. 소위 ‘아랫선’들은 ‘윗선’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쉽게 적폐와 정의를 가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권이 바뀜에 따라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지시를 수행한 사람들까지 단죄하면 국민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으로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은 변호사는 해당 태스크포스 소속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3달밖에 안되었던 그가 정말 악의적 자기의지를 가지고 업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너무나 간단하게 적폐로 분류되었다. 적폐 아니면 정의를 너무나 쉽게 가르는 수사에 한국 사회가 분열되고 있다. 

 

 댓글조작 사건과 같이 거론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미국 국가안보국(NAS)의 에드워드 스노든이다. 「스노든」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국가기관의 과도한 사찰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 개인의 영웅적 언행 뒤에 더 중요한 교훈은, 사태를 해결하는 국가의 태도이다. 상관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자 의회의 정적들도, 백악관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관계자를 줄줄이 책임지게 하기보다는 제도를 개선했고 기관 간 견제를 강화했다. 사회통합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스러운 합의인 것이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다름 아닌 전・현직 대통령 내외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또 고인과의 생전 관계가 어땠는지와 관계없이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정치인들의 모습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집안끼리 앙숙이었던 고인에게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존경받았다”는 세련된 애도를 표했다. 이러한 사회적 단합은 곧 그 나라의 저력을 보여준다. 

 

 정치적 의도를 담은 적폐수사를 견디다 못해 국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간간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 주소라는 것이다. 정부는 선택할 수 있다. 이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개선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을 것인지,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한 여론을 무시하고 계속 적폐청산을 이어나갈 것인지 말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인이 마지막 적폐수사의 희생자이기를 바라본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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