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폐허가 된 학교에 꽃은 피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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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02일 17시46분
  • 최종수정 2018년11월02일 17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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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유치원 비리,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국정감사 최대 이슈는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였다.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의 골자는 운영진들이 유치원 예산을 부적절한 개인 용도로 썼다는 점이다. 유치원 운영에 쓰여야할 돈이 다른 곳으로 새니, 아이들 교육의 질은 떨어졌을 것이 당연하다. 화가 난 학부모들이 “원장님은 포도 한 박스, 아이들 간식은 포도 한 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유치원 원비로 성인용품, 명품가방, 항공권, 아파트 관리비 등에 썼다고 한다. 비리 규모를 ‘포도 한 박스’에 비유한 건 오히려 축소 미화해 준 셈이다.

 

사립유치원을 대표하는 단체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줄여서 ‘한유총’이다. 전국 사립유치원 3분의2가 가입해 있다. 비리 폭로 후 한유총의 사과와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 다시 한유총의 반발과 억울함 호소로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한유총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건 ‘사립’ 유치원의 사적 재산권 행사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사립유치원은 2013년부터 누리과정 지원금으로 정부에서 2조원의 예산을 받고 있다. 누리과정은 만 3세에서 5세에게 제공하는 보편적 교육 복지다. 해당 나이의 유아는 누구나 교육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국가가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누리과정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는 순간, 교육기관으로서 사립유치원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공공성(公共性)’의 의무를 지게 된다. 사립보다 ‘유치원’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이유다. 이슈 당사자뿐 아니라 일반 여론도 한유총에 호의적이지 않은 건 ‘어떻게 유치원이….’라는 정서가 깔려있어서다.

 

사립유치원에 개인 사업자적 속성이 있다 해도 ‘유치원’이라는 기관이 한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모르고 시작하진 않았을 테다. 사적 재산권 강조를 이슈 돌파구로 삼는 건 그동안 유치원이라는 ‘자영업’을 해왔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한유총이 여론을 설득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은 전략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이 ‘교육기관이 져버린 공공성’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곡된 교육목표가 불러온 범죄의 유혹

 

지난 7월에는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태가 있었다. 숙명여고에 다니는 쌍둥이 두 학생이 문‧이과 각각 전교 1등을 했는데, 1학년 성적과 비교하면 놀라운 상승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학생의 아버지가 같은 학교 교무부장이었기 때문에 의혹은 커졌다. 아직 조사 중에 있지만 시험 정보를 유출했다는 물증을 확보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사건을 교무부장 아버지와 쌍둥이를 비난하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된다. 숙명여고 사태 전후로 광주와 목포의 고등학교에서도 각각 기말‧중간고사 시험지가 유출되는 일이 있었다. 이번 국감에서는 최근 4년간 13건의 시험지 유출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단지 몇 사람의 개인적 일탈로 여길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교육 목표와 신뢰 받지 못하는 대학입시 제도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초‧중‧고 12년에 걸친 교육의 최종 목표는 오로지 ‘명문대 입학’이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의문이나 방황, 문제제기가 있다 한들 “일단 대학만 가!”에 막혀 버린다. 명문대 입학이라는 결과 산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를 종용받는 분위기다. 시험지 유출은 극단적 사례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의 시간과 사고, 육체는 대입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이에 더해, 대입 제도에 대한 불신도 있다. 대입제도 중 비중이 큰 학생부종합전형, 일명 ‘학종’은 논란이 많다. 반영 요소가 대학마다 다르고 주관적 평가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어서다. 그런데 학종에는 내신 성적이 반영되니, 덮어놓고 중간‧기말고사 한 번 한 번이 중요해진 것이다. 복잡하고 불투명한 대입 제도의 무한 경쟁 속에서 일단 승자가 돼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부작용으로 시험지 유출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된 교육기관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일이.”라고 할 만한 일이 또 발생했다. 지적장애 1급인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엄마는 가슴을 쳤다.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발로 차이고 구타를 당했다. 폭행은 CCTV 사각지대에서 이뤄졌다. 해서는 안 되는 짓임을 알면서도 작정하고 때렸다는 정황 증거다. 피해 학생은 한 명이 아니다. 서울 교남학교‧인강학교, 세종누리학교, 울산‧광주 등의 특수학교에서 장애학생 폭행 뉴스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교사뿐 아니라 사회복무요원도 장애학생들을 폭행했다. 장애학생들은 본인의 피해 사실을 주변에 직접 전하기 힘들다. 교사들은 내부에서 쉬쉬한다. 갈 수 있는 특수학교는 제한적인데 문제를 제기했다가 아이에게 더 큰 불이익이 돌아오거나 퇴학까지 당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특수학교 폭행 사건이 공론화된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급기야 교육기관이 ‘가해자’가 됐는데, 폭행 사건이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약자는 피해자다.

  

얼룩진 교육기관의 모습 = 한국 사회의 자화상

 

이 모든 일들이 2018년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다. 2018년을 ‘교육기관 대참사의 해’라고 불러야 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특수학교까지 모두 폐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스쿨미투(학교 내 성범죄 고발)’도 있었다. “누군가 한 나라의 미래를 묻거든 학교로 안내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다. 인재상‧공정‧정직‧교육철학‧꿈‧공동체 등 우리 사회 미래와 직결된 가치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다뤄지는지 모두 학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지금 교육기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과연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래는커녕, 얼룩진 교육기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시험지 유출, 특수학교 폭행. 세 사건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른들’이 저질렀다는 점이다. 유치원을 개인사업장으로 여긴 어른들의 욕망이, 일단 내 자식만 대학 잘 가고 보자는 아버지의 그릇된 애정이, 장애 학생을 때려야 말 듣는 대상으로 본 비인격적인 관점이, 교육기관을 몰락시켰다. 그 피해는 꽃 같은 아이들이 입는다. 당장 감사를 실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교육기관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어른들이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하는 교육 철학과 인재상을 세우고, 그에 맞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괴물이 된 어른들이 길어낸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오싹하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 사회 교육 개혁을 추진할 마지막 기회다. 폐허가 된 학교라도 꽃은 피워야 할 게 아닌가.​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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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02일 17시46분
  • 최종수정 2018년11월02일 17시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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