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107> 친구따라 강남 간 이야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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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1월09일 18시25분
  • 최종수정 2024년11월10일 10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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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다. 전혀 예상치 않았고, 별생각 없이 친구의 권유로 어떤 일을 했는데, 그 결과가 괜찮았을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이번 나의 대만 여행이 그러하였다.

 

직업이 교수인 관계로 여행을 적게 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구미 쪽에 편향되어 있어서 사실 동양은 거의 방문한 적이 없었다. 대만은 물론, 태국도 가보지 못하였고, 보라카이, 발리는 말할 것도 없다.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역마살이 가까운 동양에는 미치지 못하였나 보다. 이런 차에 친구로부터 제안이 왔다. “너 대만 같이 가볼래?” 친한 친구이고 평소에도 농담은 잘 하지만, 실없는 소리는 안하는 신뢰감 있는 친구였기에, 나도 “그러지 뭐.”라고 쉽게 대답하였다. 그래서 대만 여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호화스런 여행도 아니고, 내 비용으로 절약하며 가는 보통 수준의 여행이었다. 그래서 이번 대만 여행은 대만의 검소한 측면을 많이 보는 여행이었고, 타이페이에 한한 여행이었다는 것을 미리 말해 둔다.

 

1. 친구 따라 쉽게 강남 간 이유

 

친구의 권유로 대만을 갔지만, 의사 결정을 쉽게 한 이유는 나름대로 있었다. 나에게 대만은 관찰해 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대만은 나에게 경제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나라였다.  tsmc라는 반도체 제조회사를 제외하고는 대기업이 없는 나라다. 가족경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중소기업이 중심인 나라가 대만이다. 자동차산업도 없고, 조선산업도 없으며, 전자산업, 국방산업도 없다. 오로지 반도체 산업 중에서도 고객들의 설계도에 따라, 칩을 제조해 주는  tsmc와 그와 관련된 기업들이 주류인 나라다. 그러면서도 제법 잘 사는 나라다. 참으로 특이한 나라다.

 

다음은 중화민국, 대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을 때, 미국을 중심으로 중공을 대만 대신 중국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우리나라 노태우 정권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미국이 인정한 후 곧바로 중공을 중국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서울 명동에 있는 대사관을 재빠르게 빼앗아 새로운 중공 정부에 내주었다. 우리나라가 일본 압제에 있을 때,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임시정부를 인정해 주고, 작은 건물이지만 우리 임시정부 처소를 마련해 준 나라가 장개석의 중화민국이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너무도 빠르게 중공을 중국의 정식 정부로 인정하였을 때, 중화민국이 느낀 배신감은상당히 컸었다. 나처럼 외교와 무관한 사람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때의 서운함으로 대만은 그 후 국제관계에서 우리나라 편을 들지 않게 되었고, 지금도 그들 마음에는 하나의 감정으로 남아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손님이, 집을 나가자마자 재빨리 문을‘쾅’하고 닫아 버리면, 그것도 내가 평소에 잘해주었다고 생각하는 집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쫓겨 난 손님의 서운함은 길게 남을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외교적으로 매우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끝으로는 ‘고궁박물원’ 때문이었다. 69만점의 유물이 있고,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다니, 도대체 어떤 박물관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나의 대만 행은 쉽게 결정되었다.

 

2. 도착해서 바로 느껴지는 작은 놀라움들

 

대만은 포르투갈어로 ‘포르모사’라고 불리었던 곳이다. 포르모사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또한 대만은 2023년도에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인당 GDP가 우리나라를 추월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은 나에게 궁금한 나라였다.

 

비행기를 타고 타오위안 공항에 내렸다. 후덥지근하리라고 예상했는데, 10월 말 가을이어서인지 그리 덥지도 않고 조금 더운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가 있는 타이페이로 향했다. 새로 지은 공항이라고 하였지만 의외로 단촐한 크기의 공항이었다. 지하철은 깨끗하고 천장이 조금 낮은 것 이외에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내가 타본 지하철 중에서는 우리나라 다음으로 잘 유지된 지하철 같았다. 유럽과 미국의 지하철보다는 훨씬 나았다. 

 

숙소까지는 지리도 모르고 또 첫 대만 여행이어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GPS에 주소를 입력하였다. 조금 의외였다. 왜냐면 대만이 큰 나라도 아니고, 내 숙소는 서문동(시먼딩) 번화가 가까운 곳이었는데 그곳의 지리를 택시 기사가 모른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작은 나란데?” 택시비는 저렴하여 좋았다. 물가가 싸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구나.

 

호텔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작은 모텔 수준의 숙소였다. 여행책에 평이 좋아 선택한 집이다. 들어가 보니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는 여종업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키를 받아 7층 숙소에 들어가니 옆집 담벼락이 코앞에 보인다. 작은 호텔이니 옆집이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옆집 담벼락은 거의 정리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관찰하는 습관이 있어서, 작은 것들을 비교적 유심히 보는 편이다. 여기는 타이페이에서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명동과 같은 중심가인데 어떻게 저런 집이 있을까? 그런데 이런 의아함은 대만 여행 기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여장을 풀고 몇십 미터 떨어진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배가 고프다. 뭘 좀 먹어야지.’ 그래서 우리 말을 잘하는 직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바로 앞 식당이 너무 유명한 사천요릿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갔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와 매우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내 책자에서도 나오는 유명한 식당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좁은 골목길을 서로 마주하며 다른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다. 대기열까지 있는 유명식당이어서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한 것 같았다. 음식 맛은 제법 괜찮았다. 

 

그러나 두가지 것이 의외였다. 하나는 값이 제법 저렴하였고, 다른 하나는 서빙하는 그릇들이 그릇으로서 역할만을 하는 아주 단순한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국 정부 초청으로 중남해(中南海, 중난하이)의 18호각(17호각은 서기장 초청 인사들이 식사 하는 장소라고 함)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릇 자체는 꽤 고급스러웠지만, 대부분 그릇들은 작은 상처 ‘투성’이었고, 서빙하는 젊은 여자들의 태도가 상당히 거칠어서 놀란 적이 있었다. 

 

‘대만은 모든 허례적인 것은 생략하고, 맛에만 노력을 기울여서 그런가?’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라면 아무리 맛이 있어도, 이런 그릇을 사용하면 유튜브 등에서 많은 악평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맛있다.”는 평가가 많은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외국을 평가할 때 점수를 매우 ‘후하게 준다’는 어떤 여행기의 지적이 떠 올랐다.

 

2. 시내 구경에서 느껴지는 작은 놀라움들


(1) 사치품(명품) 간판이 거의 없는 거리들

 

우선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계 유명브랜드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타벅스, 구찌, 루이부이통 등 우리나라 명동, 강남에 즐비한 그런 것들은 거의 없었다. 타이페이 101타워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다. 명동에 해당하는 서문역(시먼딩) 가장 큰 백화점 매장에서도, 외국 브랜드는 중저가 제품을 파는 H&M과 ZARA였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대만 브랜드이거나 그냥 브랜드 없이 자기가 파는 상품을 소개하는 간판들이었다. 

 

(2) 작고 검소한 가게, 가족경영 가게

 

커피점도 제법 많았지만, 스타벅스는 거의 없었고, 프랜차이즈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자기 상호로 장사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였다. 자기 상호로 자기 가족이 경영하는 것이 대부분임으로 ①원가가 낮을 수 있고, ②수입의 대부분이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⓷다양한 맛과 낮은 가격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만답게 발 마사지점이 의외로 많았고, 대만산 차(茶)를 판매하는 찻집도 많았다. 커피점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세계 3위 커피 소비국에서 온 나는 조금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발 마사지 점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관광객이 아니라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리에는 우리나라 젊은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발 마사지 보다는 거리를 걷는 것이 더 좋은 모양이다. 

 

그리고 찻집과 거의 대부분의 상점들은 내부 의자가 별로 없이 판매만 하고, 고객들은 거리에서 주로 먹었다. 이 또한 소규모 자본인 가족경영의 결과이고, 원가절감의 수단으로 보였다. 대형 매장, 화려한 매장에 익숙한 나로서는 불편하다는 인상을 끝까지 버릴 수 없었다. 

 

(3)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니라, 명허전(名虛傳)

 

그러나 여기서도 명불허전(名不虛傳)이 아니라, 명허전(名虛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 어디서나 소문과 실상이 다른 경우는 있나 보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시는, 그것도 상당히 긴 줄을 서서 마시는 상점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팔까? 그리고 얼마나 맛있기에 저런 긴 줄이 있을까? 파는 음료는 진한 우유커피에 작은 새알을 많이 넣은 약간 독특한 음료였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평가하여도, 줄을 서서 마실만큼은 아니었다. 

 

“그럼 왜일까?” 경제학도의 직업병이다. 첫째는 위치다.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거리, 삼각점 코너를 차지하는 집이다. 삼거리 어디에서 오든 눈에 띈다. 게다가 상점 내부 색은 하얀색과 밝은 주황빛이었다. 조명도 다른 상점과 달리 매우 밝게 켜 놓았다. 그러니 어느 길에서 오든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음료수를 사면 작고 긴 통을 준다. 그 안에는 오늘의 운세 또는 좋은 경구가 쓰여있었다. 미국에 있는 중국 음식점의 ‘포천쿠키’ 같은 것이다. 즉 이 상점은 독특한 음료수와 함께 시각적 청량함과 스토리를 파는 길목 집이었다. ‘네가지를 한꺼번에 파는 곳이니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작은 상점의 성공 비결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몫이 좋은 장소, 눈길을 끄는 ‘밝고 산뜻한’ 분위기, 그리고 상품 이외에 작은 스토리를 넣어 파는 것이다. 맛까지 좋았으면 더 좋으련만... 아마 나만 별맛을 못 느꼈을까? 


3. 앞으로 2, 3년간 우리나라 중소‘자영업자’들이 부딪힐 모습 

 

여기서 작은 팁 하나를 우리나라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나쁘다고 난리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경기가 나쁠 것이라는 예상은 중국의 패악질과 특히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기의 어려움은 IMF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들이 어려웠지만, 앞으로 2,3년의 경기는 대기업보다는 중소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대만식의 검소형 경영, 자가경영, 가족경영 그리고 가까운 장소에서의 경영이다. 프랜차이즈이기는 하지만 ‘메가커피’ 스타일의 상점이 앞으로 생존하기 쉬울 것이다. 작은 가게, 집과 가까운 가게, 검소하나 깨끗한 내부 스타일, 품질은 괜찮으나(B+) 저렴한 가격, 박리다매는 아니지만 그것과 비슷한 경영이다. 쉽게 말해 ①적당히 낮은 가격에 ②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품질의 상품이어야 한다. ③특히 양(量)을 줄여서는 안 된다. 경기가 나쁠수록 사람들은 심리적 허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때 정신없는 분석가들은 ‘서민들은 어렵지만 부자들은 더 좋은 시절이다. 고급가게는 IMF 때 더 잘 된다.’는 식의 분석도 아닌 분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국론을 분란 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1,2차 세계대전 때도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미국 남북전쟁 시에도 워싱턴에서는 최고급 카페와 술집이 성행했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분석도 아니다. 올바른 경제분석이라면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①미리 예견하고,대비책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③사실에 바탕을 둔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사람들의 마음을 산란스럽게 하는 말을 하는 것은 올바른 분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 타이페이 101 타워에서 느낀 점들


(1) 대만에서는 너무 높은 건물

 

대만과 일본은 환태평양 화산대의 가장 서쪽 지역에 존재한다. 잠깐 아주 간단히 지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서있는 지구는 마치 동지 팥죽과 비슷하다. 우리가 팥죽을 쑤어 그릇에 담아 놓으면, 팥죽이 식으면서 팥죽 윗부분이 갈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딱 그것이 지표(地表)의 모습이다. 갈라진 부분 중에서 덩어리진 부분을 땅, 육지(陸地)라고 부르고, 우리는 그 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바다 밑에 있는 땅은 무겁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다 위의 땅은 조금 가볍다. 그래서 바다 밑의 땅은 끊임없이 육지의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간다. 전문용어로는 그것을 섭입(Subduction)이라고 부르지만, 알 필요는 없다.

 

그런데 육지 땅과 바다 밑 땅이 만나는 곳은 마치 우리 몸에 큰 상처가 있을 때처럼 긴 흉터, 틈이 있다. 그래서 그 상처의 틈 사이로 화산도 자주 올라오고, 지진도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런 긴 상처 바로 위에 있는 땅이 바로 대만과 일본이다. 그래서 그 나라들에는 화산도 많고, 지진도 많으며, 또 덩달아 태평양이라는 큰 바다 바로 옆이어서 태풍도 많다.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좋지 않은 환경이다. 나는 지진, 화산폭발, 태풍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단군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어찌 이리 좋고 안전한 땅에 저희들을 살게 해주셨습니까?”라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

 

대만은 바로 이런 화산대 위에 있기 때문에 화산도 많고, 지진도 많으며, 태풍도 많다. 현대 건축 기술로 101층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진대 위에 안전하게 449미터 101층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해결을 위해 건물의 중상부에 660톤의 강철구를 달았다고 한다. 구경은 하지 못했다. 그저 4, 5층 상점 구경과 식사를 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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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관과 내부 장식들

 

101타워는 외관에서 확연히 느껴지는 바와 같이 대나무 줄기를 모방한 모습이다. 지진에 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들의 중국적 특징을 고수하려는 철학이 반영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철학은 내부 상가 디자인에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상당히 서구적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중국적이었다. 다음 사진들을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건축가들이 우리나라 적 요소를 건축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3) 타이페이 101타워 주변 환경들, 그 비싼 땅에...

 

내부 장식들도 나의 관심을 끌었지만, 경제학도로서 나의 관심을 더 끈 것은 오히려 주변의 건물들이었다. 단순히 생각해도 101타워 근처는 아마 대만에서 가장 비싼 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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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옆 블록에는 일제시대 때 지은 우리나라 광산촌 전시관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문화촌으로 개발하여 관광객을 끌고 있었다. 당연히 손님은 거의 없었고, 파는 상품 또한 관심을 끌만 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옆에는 오래된 군사 포대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전시된 대포도 없고, 그저 벙커 수준의 작은 포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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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이런 비싼 땅이런 수준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수준의 건물과 사적을 시내 중심가에 보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만은 1945년 건국으로 워낙 역사가 짧고, 그전에도 그리 주목받는 식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리고 장개석의 강력한 통치로 토지 투기 같은 것이 없었고, 비교적 일찍부터 계획경제 성격이 강한 나라여서 이런 현상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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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궁박물원의 기대감과 서운함

 

사실 이번 대만 방문에서 나에게 가장 기대되는 것 중 하나는 고궁박물원 관람이었다. 그간에 들은 너무 많은 좋은 소문과 몇십 년에 걸쳐 전시해도 전부를 전시할 수 없다는 69만점의 보물 등등. 정말 큰 기대감이 있었다.

 

(1) 박물원의 위치

 

우선 건물의 위치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높은 위치에 있었다. 비행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위치 선정이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 본토 전쟁에서 패해 대만으로 왔으니,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건물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다. 69만점의 유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절차를 밟고 들어섰다. 역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차근차근한 녹음 설명과 쓰인 해설 글들을 읽었다. 박물관답게 자세한 설명은 반가웠다.

 

(2) 작은 실망감

 

그리고 전시된 유물들도 훌륭하였다. 그러나 작은 실망감도 함께 들었다. 너무 큰 기대감이 있어서였을까? 내가 본 시카고 박물관이나 뉴욕 박물관의 중국 전시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중국 상고사까지를 살피는데 고궁박물원은 단연 대단하였다. 그러나 진시황 이후 역사 시대 유물은 미국에 있는 박물관이 훨씬 더 많았고, 수장품의 질도 훌륭하였다. 가장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는 옥(玉)배추와 돼지고기 전시물도 서양 박물관의 그것보다는 숫자도 크기도 작았고, 그 질도 더 낮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된 그림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원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사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날 인연이 닿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많아 하루 종일 박물원에서 날을 보냈다. 다음 날도 가려고 하였으나, 동행인들이 별로 원하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다시 대만을 방문한다면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국에 대한 평가는 과장된 느낌이 많다는 것을 이번 고궁박물원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3) 샌디애고와 대영박물관

 

고궁박물원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그리스와 멕시코였다. 서양에서 가장 고대 문화가 발전한 나라라면 그리스이고, 중남미에서는 멕시코일 것이다. 샌디에고에 가면 ‘인류학박물관(Museum of Us)'이 있다, 주로 마야와 잉카 문명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너무나 전시물이 많아서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도 조금 지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멕시코 국립박물관을 가서는 그 수집품의 빈약함에 실망이 컸었다.

 

대영박물관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나 수장품이 많은지 거기서도 상당히 힘이 들었다. 파르테논 신전 기둥 여신상까지 뜯어와 전시된 것을 보고 ‘조금 너무 심했다.’라는 느낌마저 들었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 현지 박물관을 보고는 그 소장품의 빈약함에 실망감이 너무 컸었다. 

 

역시‘자기 나라 유산에 대한 안목과 경제력이 박물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고궁박물원을 보면서 왠지 그리스와 멕시코가 생각났다. “역시 경제력이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궁박물원은 반드시 방문하여야 할 명소다. 박물원의 앞에는 큰 글씨로 “대미불언(大美不言)”이라는 현판이 있다. “크게 아름다운 것은 말이 필요 없다,”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마츄어에게나 전문가에게나 설명의 필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고궁박물원에서 약간 실망은 하였지만, 마감 시간이 되어 나오면서, ‘역시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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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래시장 푸허시장(福和觀光市集)에서의 득템

 

요즘 우리나라 많은 여행객들도 벼룩시장(Flea Market) 찾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래서 외국여행을 하면 어떻게든 벼룩시장을 찾아가고, 특히 골동품 시장을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행책을 보니 네 다섯개의 큰 벼룩시장이 있었다. 시먼딩, 쓰쓰난춘 시장 등이 있다고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이든 나에게는 그들이 파는 그저 그런 수준의 장신구들은 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파는 음식들도 그저 그랬다. 한번 휙 둘러보고 바로 나왔다. 왠지 서운하다. ‘내가 서구에 갔을 때 가장 내 마음을 끄는 것은 플리마켓이었는데...’ 

 

그래서 다음 날 작전을 바꾸었다.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전통 재래시장을 가자. 거기에는 뭔가 있겠지.’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꽤 많은 시장이 있었다. 서너개를 골랐다. 대부분 큰 감흥을 주지 못했지만, 가장 오래되고 크다는 푸허시장(福和觀光市集)과 부중시장(府中市場)은 달랐다. 푸허시장은 매우 큰 시장이고 관광시장이라고 했지만, 관광객은 거의 없고, 현지민들이 이용하는 큰 시장이었다.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는 시장이었다. ‘저런 것도 팔리나?’ 싶을 정도의 깨진 장난감부터, 녹슨 나사, 때로는 제법 정교하게 만든 골동품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득템을 하였다. 좋은 그림이 있었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워 사지 못해 아쉬운 차에, “아니 이게 뭐야?” 돌로 만든 붓과, 침향팔찌, 작지만 멋들어진 향로 그리고 목각 ‘치우’가 있지 않은가? 내가 항상 골동품이나 미술품을 살 때 느끼는 바지만, 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거의 한집에서 물건을 많이 사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 마노석으로 만든 붓을 들어 보았다. 묵직하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감(感)이 착 안겨온다.‘오, 이건 내거다.’ 침향팔찌도 냄새가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는 60만원 한다는데, 3만원에 샀다. 향로는 내가 보기에는 귀한 물건이었다. 내가 모른건가? 아니면 그 판매상이 모르는 건가? 적당한 가격을 주고 7, 8가지를 샀다. 내가 보기에 중국에서 구입한 것보다 상당히 저렴하였다. 골동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든다고 하지만, 득템했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시장을 떠났다.

 

6. 타이페이의 다른 모습들, 경제적 측면 


(1) 낡고 오랜 건물들

 

이제 경제적 측면으로 대만에서 느낀 점을 말해 보겠다. 이 글의 모두에 우리나라 명동과 같은 거리 바로 뒷골목에서, 전혀 단장이 되지 않은 담벼락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시내 중심가에서도 몇백 미터만 벗어나면 대부분의 건물이 매우 낡은 건물들이었다. 빈 건물들도 많았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 몇십 년 또는 일제 식민지 시대 건물이었다.

 

(2) 까르푸의 위용

 

그다음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까르푸의 규모였다. 타이페이 까르푸의 크기는 우리나라 이마트나 롯데마트 보다 컷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까르푸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퇴출당한 유통회사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이런 대규모로?’ 까르푸의 존재를 보면서 대만 경제의 어느 한 단면을 보는듯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대만은 tsmc를 제외하고는 대기업은 물론 대(大) 유통업도 거의 없는 나라다. 수많은 작은 기업들의 집합체가 대만이다.

 

여기에 대자본과 영업력을 가진 까르푸가 들어왔다. 가족 중심의 작은 유통업자들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까르푸는 군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삼성과 롯데, 그리고 LG와 같은 대규모 유통기업이 있다. 그들은 자금력도 풍부하고, 영업능력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양과 다른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와 선호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대형 소매점인 까르푸는 이 점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못 견디고 떠난 것이다. 그러나 대만은 그렇지 못하다. 이점이 대만에서 까르푸가 번성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시장을 지키기 위한 대기업의‘긍정적 역할’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케이스였다.

 

7. 대만 소득 분포가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까?


(1) 대만 중산층 또는 임금노동자의 소득 변화

 

그러나 까르푸보다 훨씬 더 나에게 중요한 것은 대만인들의 소득에 관한 분석이었다. 소득이 어떻게 변화하고, 중산층이 얼마나 되며, 미래 어떤 모습으로 대만의 경제가 진행될 것인가? 작고 빽빽하게 밀집된 상점들, 분주히 호객하는 상인들, 오가는 대만인들의 옷차림 등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대만의 중산층은 매우 두텁다. 소득이 국민들 사이에 얼마나 균등하게 퍼져있는가를 나타내는 수치에 지니계수라는 것이 있다. 그 값이 ‘1’이면 가장 불평등한 것이고, ‘0’이면 전 국민이 평등하게 소득을 나누어 가진다는 뜻이다. 중화민국(대만) 판닝싱 국세조사처장의 말을 들어 보자. 

 

“대만의 지니계수는 21년 말 기준 (0.606)이다. 호주 (0.611), 영국 (0.620), 일본 (0.678), 프랑스 (0.676), 독일 (0.727) 등보다도 현저히 낮다.” “쉽게 말해 타이완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보다도 빈부 격차가 적은 축에 드는 평등한 사회, 평등한 국가다.” 

 

그런데 대만 정부의 이 말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3위로 일본,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보다 더 좋다) 왜냐하면 타이페이시에서 내가 느낀 것은 결코 중산층 대만인이 잘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만은 tsmc 이외에는 그렇다 할 대기업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 통계를 보면 그것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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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대만 임금노동자의 임금은 인당 GDP의 71%이고, 우리나라는 111.2%다. 즉 우리나라 임금은 대만보다 40% 더 높다. 이 자료로 우리나라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자가 대만보다 더 잘 사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비율도 대만의 경우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다음 그래프는 중간 임금노동자의 수치가 급속히 낮아지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늘어나는 반면, 대만은 급속히 줄고 있다. 이것은 대만 중위 소득자의 GDP 내 비중이 점점 줄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의미에서는 임금노동자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산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 격차가 무려 66.9배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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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앞으로도 대만의 지니계수가 좋게 나온다면 대만의 중산층은 임금 소득 이외의 자산소득이 상당히 있고, 또 그것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산소득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통으로 ‘쉽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2) 임금노동자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

 

이런 가운데 또 하나의 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기술의 발달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부(富) 축적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꼭 그렇지 않다. 높은 기술에서 부가 창출되는 미래 사회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고급 기술을 ‘내가 운용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그런 기술을 보유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소득의 격차가 빠른 속도로 더 많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현상은 개인인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는 무관할 수가 얼마든지 있다. 대만도 같은 걱정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사실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양날의 검처럼) IT기술이 발전해 나갈수록 이러한 (빈부 격차, 부의 양극화) 현상은 훨씬 더 극심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대만은 높은 기술력을 가진 몇 개의 기업에 경제가 너무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대만 GDP에서 tsmc가 차지하는 비중은 7.9%이고, 수출 비중은 12.5%이며 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 내 비중은 약 30%다

 

8. 대만 경제가 미래 우리나라 경제에 주는 시사점


(1) 고급 기술이 미래 임금 노동자들에게 주는 효과 

 

미래 고급 기술이 임금 노동자에게 주는 효과는 우리나라나 대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임금 격차는 고등교육과 고급 기술의 소유 여부에 따라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국민을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가장 앞장서야 할 일이고,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어떻든 미래 기술의 발전은 ①소득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고, ②노동운동도 약화시킬 것이며, 또한 ⓷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격차의 증대, ⓸정부예산의 여유롭지 못한 운용, 무엇보다 소득격차에서 오는 ⑤ 사회 불안감(不安感)의 증대와 ⓺정부에 대한 불만의 증대 등은 거의 확실하게 예상된다.

 

이 점에서 정말 실력 있는 지도자와 국민의 합심(合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부의 현명한 정책과 함께 부화뇌동하지 않고, 국민을 차분하게 계도하는 언론의 자세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2) 우리와 대만의 차이

 

가. 나의 미래는 내가 결정한다.

그런데 이번 나의 대만 여행에서 우리와 다른 대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대만은 우리나라처럼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즉 내가 잘되고 안 되고를 나의 탓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었다. 정부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고, 정치에 대한 언급도 별로 없었으며, ‘나의 미래는 나의 노력으로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미래 사회 불안의 가능성에서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점이었다. 

 

나. 대기업이 없는 안정감과 서러움

다음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의해 운용되는 대만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다. 가족경영으로 또는 나의 상점에서 나의 브랜드로 팔기 때문에, 비교적 작은 이익만 있어도 그들은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분명히 좋은 점이다. 그러나 소규모 경영에서 할 수 있는 경영은 규모나 크기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 신기술은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인 대만 정부가 나설 수도 있겠지만, 사(私)기업이 아닌 국가가 경영하는 기업이 성공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중공이 그렇고, 일본, 호주가 그러하며, 인도나 러시아 등 좋은 예가 너무나 많다. 즉 대만의 경제적 미래는 tsmc와 그 계열을 제외하고는 점프할 수 있는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게다가 미국이 중국과의 결별까지 강요하면 헤쳐 나가기는 더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트럼프는 중국 제품 관세를 60% 추가 인상한다고 하고, 반도체 장비뿐만 아니라 부품의 공급까지 금하며, tsmc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수출을 금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다. 왜소화(矮小化)의 느낌

또 다른 나의 대만에서 가진 강한 느낌은 대만인들 ‘사고(思考)의 왜소화’ 느낌이었다. 나는 중국 문화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시진핑의 중국이 싫어 여러 글을 쓰기도 하였지만, 중국 전래의 문화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대만 여행에서 느낀 점은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중국 대륙을 방문했을 때의 호방함도 느낄 수 없었고, 또한 중공의 야비함도 느낄 수 없었다. 솔직히 대만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착한 소시민들의 집단』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중국의 문물에 많은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모를 쓸쓸한 감정이 들었다. ‘거인이 작아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일까?’ 

그러나 이점은 나만의 잘못된 느낌일지 모르겠다. 

 

대만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함께 가지며, 대만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한번 꼭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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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11월09일 18시25분
  • 최종수정 2024년11월10일 10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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