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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113> 2025 을사년 새해인사, 그리고 덕담(德談) 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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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2월0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31일 11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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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신년 인사를 두 번씩이나 할 필요가 있느냐?”는 친구도 있지만, 나는 두 번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 ‘왜 새해가 일년에 한번밖에 없는지’ 안타깝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나이 들어 새해가 두 번있어도 두 번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새해가 두 번이어도 그리 나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양력 1월 1일이 한달쯤 지났으니, ‘이번 새해에는 어땠으면 좋겠다.’는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이 든다. 또한 양력 첫날에 새해 인사를 못했던 분들에게 인사도 드릴 수 있으니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1. 을사년에 대한 여러 인상들

 

그러나 우리에게 을사년은 그리 인상이 좋은 해는 아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외교권을 빼앗아 간 을사늑약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를 공부한 나로서는 2025년 우리경제가 그리 좋을 것 같지 않은 생각도 들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전을 뒤져 보았더니, 의외로 뱀(巳)은 동양과 서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긍정적 의미가 훨씬 많은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을사년은 한자로 乙巳年이라고 쓴다. 간지의 오행인 목, 화. 토, 금, 수는 각각 청, 적, 황, 백, 흑색이다. 그리고 '을'은 오행상 '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색상은 청색이 된다. 그러니 2025년 을사년은 ‘푸른 뱀’의 해가 된다.

 

2. 서양에서 뱀의 상징성

 

뱀은 조금 징그럽게 생겼다. 그리고 성경에서도 인간을 유혹한 동물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의미도 강하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달리 뱀은 동서양의 많은 신화에서 매우 신성한 동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며, 의학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는 죽은자를 다시 살릴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이 금한 죽은자를 살리는 행위를 함으로써,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죽게 된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하늘 ‘뱀자리 별’의 주인이 되었다. 

 

의사들은 의사가 되기 전, 의사 윤리 규정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플라톤은 히포크라테스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이라는 의미에서 ‘아스클레피아드(Asklepiade)’라고 불렀다. 과거에도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였다. 그러나 1948년 세계의사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현대 사정에 맞게 『제네바 선언』으로 개정하였다. 현재 전 세계 의과대학 졸업식에서는 이 선서를 하고 있다.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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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선언(1948)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그런데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자를 살릴 때 뱀이 어떤 약초를 물고 왔고, 그 약초를 죽은 자의 몸에 문지르자 죽은자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죽은 자를 살려내는 대죄를 저지름으로써 그는 제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는 죽은 자도 살려낼 수 있는 의술의 신이 되었고, 그의 상징 지팡이에는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의 뱀이 휘감겨 있는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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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대한의사협회 같은 많은 의료관련 기구들은 이 뱀이 그려져있는 지팡이를 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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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뱀은 ‘논리의 신’ ‘치유의 신’이고, 지혜의 동물, 수호의 동물이기도 하다. 또한 반 나체로 사는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에도 지혜와 위엄, 왕권의 상징으로 코브라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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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양에서 뱀의 상징성

 

동양에서도 뱀은 주로 ‘지혜, 보호자, 불사, 재생’의 존재라는 상징성이 강하다. 이런 여러가지 뱀의 상징성은 아마 뱀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우선 뱀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재생). 그리고 가을이 되면 동면에 들어가 사라졌다가,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난다(환생, 불생). 그리고 그 모습이 매우 위엄이 있고 눈동자도 매우 날카롭다(지혜). 그래서 자기가 존경하는 대상에게 감히 다른 동물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보호). 부처님이 득도 후 선정에 계실 때, 그곳 땅의 신이었던 코브라가 나타나 부처님을 옹위하여 다른 동물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보호하였다고 한다. 또한 뱀은 인도와 불교에서는 비와 땅을 관장하는 ‘풍요(豐饒)의 신’으로도 숭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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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나라에서 뱀의 상징성

 

우리나라에서 뱀의 상징성은 다른 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지혜나 보호, 불사의 의미보다는 은혜를 갚는 의미 또는 역으로 복수의 의미,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집안에 부(富)를 가져오는 업신(業神)의 의미’가 있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도 뱀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었다. 정초이기 때문에 좋은 얘기 하나를 소개하겠다. 시골에서 쓰는 『업』은 불교의 『업(業)』과는 다른 의미다. 불교에서의 업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일으키는 ‘내가 행한 행위’ 또는 그 ‘행위의 결과’다. 하지만 우리 민담에서의 업은 같은 글자를 사용하지만 “집안에 재물(財物)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뜻이다.

 

왜 뱀이 그런 재물의 의미를 갖게되었는지는 우리나라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옛생활에서 농사, 특히 쌀은 매우 귀중한 존재다. 그러므로 그런 쌀을 지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쌀을 흠쳐먹는 밉상스런 존재가 있다. 바로 쥐다. 그런데 쥐는 너무 날쌔 사람은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 대신 그 쥐를 잡을 존재가 필요하다. 아마 개와 고양이가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고양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그리 환영받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여러 용도로 이용이 가능한 개를 많이 키웠다. 하지만 한두마리 개로는 한계가 있다. 무슨 다른 보충안이 없을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아마 구렁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좋은 증거가 있다. 지방 마다 업(業, 좋은 의미의 재물신 구렁이)을 모시는 방법은 다르다. 그러나 한결같은 원리는 ‘따뜻한 곳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초가지붕일 수도있고, 부엌의 한 귀퉁이 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예는 짚으로, 작고 두터운 따뜻한 움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바로 업이 사는『​업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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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곳은 어떤 동물이든 좋아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면 업자리는 그런 곳에 마련하여야 한다. 사람의 잦은 보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양지바른 곳이 집안에 있다. 그곳은 바로 ‘장독대, 장꽝’이다. 또 거기에는 고추장, 된장 등 좋은 음식 냄세도 풍기는 곳이다. 여기에 짚으로 만든 따뜻한 업자리(업가리)를 마련해주면 적격이다. 그리고 이런 자리는 쥐나 월동벌래들에게도 너무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니 그들도 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 점심은 없다.’ 그 업자리에는 쥐를 너무나 좋아하는 긴 동물이 기다리고 있다. 추가 설명의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업가리를 기다란 동물, 업이 기다리는 곳 ‘긴업가리’라고도 부른다.

 

동물 중에서 가장 벌래와 쥐를 잘 잡는 동물은 바로 뱀과 족제비 그리고 두꺼비다. 그래서 우리 민간 신앙에서 족제비나 구렁이를 ‘곡물을 지켜주는 신’, 수곡신(守穀神)이라고 불렀다. 또한 같은 의미에서 벌레를 잘 잡아 먹는 두꺼비도 재물을 표시하는 신이 되었다. 아주 고마운 존재다. 그래서 사랑하는 손주 녀석이 귀엽고 잘 생기기 까지 하면 ‘떡’ 두꺼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많은 뱀 중에서 업신이 “왜 구렁이일까?” 그 중에서도 “왜 굵은 구렁이일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여기에도 매우 합당한 설명이 있다. 우선 구렁이는 독(毒)이 없다. 게다가 사람이 오면 독이 없어서인지 먼저 피한다. 어머니들이 장독대로 가면 금방 먼저 숨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게다가 야행성이다. 밤에 장독대에 갈 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다. 그러나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제법 숫자가 많은 동물이기도 하다. 

 

쥐도 잘 잡고, 독도 없고, 눈에 잘 띄지도 않으며, 숫자까지 제법 많으니 얼마나 적절한 동물인가? 게다가 재물신인데 가늘어서야 되겠는가? 굵고 튼실해야 한다. ‘왜 굵은 구렁이인가?’라는 질문에 아주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5. 2025년 새해 덕담 하나. 의사 송청의 구불약(九不藥)

 

우리나라 전통 중 하나는 새해가 되면 이웃들이나 자손들에게 좋은 얘기 “덕담(德談)”을 하는 풍습이다. 매우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새밑에 친구로부터 받은 좋은 덕담 하나를 전해 드리고자 한다. 흔히 듣는 “버려라, 용서해라. 더 큰 욕심내지 말아라.”라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의사 얘기이지만, 우리 ‘인생의 지혜에 해당’되는 말임으로 전달해 보겠다. 전하는 버전마다 차이가 있어서, 옥편을 참고하며 약간 수정하였다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 의사 송청의 구불약(九不藥) >>

 

송청은 당(唐) 나라 때 의사였다. 송청은 많은 환자를 치료하여 큰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다른 의사들이 그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송청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에게 구태여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환자의 마음에 생기는 다음과 같은 아홉까지 의심을 없애주는 것(九不)입니다.” 

 

1. 상대방이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게 만들며(不信),


2. 불안한 마음을 없애준다(不安).


3. 나에게 앙심을 품지 않게 하며(不怏),


4. 환자가 필요한 것을 내가 갖추었다는 것을 말해준다(不具).


5. 약값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해주고(不値),


6. 내가 의지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不倚).


7. 내가 그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不衷),


8. 내가 공손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며(不敬),


9. 내 언행이 원칙에 어긋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不規).


그러나 九不藥에 하나를 더한다면, 그것은‘웃음’입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다. 이 말씀을 새겨보며 다시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2025년 새해에도 더욱 행복하시기 기원(祈願)드립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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