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農民)일기 (5) 흥부마을 영농조합 ② 마을기업 사업 : 들기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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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한 흥부골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2011년에 끝났고, 그 일환으로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는 30억 원가량이 들어간 휴양체험시설이 지어졌으나 이듬해 봄까지도 개점휴업상태였다. 마을에서는 이의 활용을 위하여, 2012년 봄에 귀농한 나에게 무언가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 개인이 아니라, 사업의 주체로서 마을주민들이 출자한 영농조합법인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하여 2013년 3월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고,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서 계획했던 당초의 휴양체험마을사업 등을 추진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다는 이야기는 지난번 글에서 설명한 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대안이 마을 주산물인 들깨를 원료로 한 들기름 사업이다. 1~2차 산업의 바탕이 없는, 휴양체험이라는 3차 산업은 어렵기 때문에 농산물 가공사업부터 시작해 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농촌마을에서 서비스사업만으로 ‘홀로 서기’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어렵지 않게 내린 결정이었다. 흥부마을은 여느 농촌마을처럼 1차 산업인 농산물 생산이 전부였다가, 들깨 가공사업(들기름)을 더하고, 성과는 없었지만 기존의 흥부가를 주제로 한 휴양체험사업이 추가됨으로써, 작지만 나름은 1-2-3차 산업을 갖추게 된 셈이었다.
흥부마을은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남-서-북쪽을 감싸고 있는 해발 500m 내외의 고랭지 산간마을이고, 주민의 대부분이 70 전후의 노인들이다. 그렇다 보니 흥부마을의 농산물 생산은, 이른 봄에 감자를 심어서 밭떼기로 팔고, 5월경 그 밭에 콩이나 들깨를 심어서 이른 가을에 수확하는 매우 단순한 작부체계가 반복된다. 콩이나 들깨도 스스로와 자녀들에게 보내고자 하는 자가소비 물량만 생산하고, 그것도 매년 줄어들어서 놀리는 밭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큰 일교차로 당도가 높은 고랭지 포도농사를 짓는 분도 있으나 소규모고 2~3 집에 불과하다. 마을의 이런 사정에서 들깨는 들기름으로, 콩은 두부로, 포도는 과일즙으로 가공하는 마을기업사업을 하기로 하고, 남원시 일자리경제과의 안내를 받아서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마을기업사업을 신청하기로 했다.
주민들과 상의해 가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첨부해야 할 자료들을 갖추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이와 비슷한 사업신청서를 심사도 하고, 자문도 했었지만, 기름 짜고, 두부 만들고, 포도즙을 짜는 일이 처음이라서 주변 업체의 기술자와 전문가들을 찾아서 자료를 구하고, 묻고, 받아 적어서 계획을 세웠다. 덕분에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비교적 잘 답변할 수 있었다. 심사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이런 사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의심이다’는 지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신청자들은 기존의 사업에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하겠다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간의 실적과 경험으로 성공 가능성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는 마을기업사업의 취지가 궁극적으로는 ‘마을 만들기’라야 하고,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흥부마을에는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특히 기존의 사업체 외에도 처음으로 시도하려는 흥부마을 같은 마을도 한두 개는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이 설득이 통했던 것 같다는 평가는 나중에 들었다.
2015년 5월, 처음으로 사업을 따와서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당초에 지으려던 땅에는 공장 건물을 지을 수 없고, 대체 토지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서 사업을 반납해야 되는 상황에 몰렸다. 나는 이렇게 사업을 반납하고 나면, 앞으로 국가지원사업을 받는데 불리해진다고 설득했고, 마침 이장님이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자기 텃밭을 10년 무상임대로 제공해 주어 고비를 넘겼다. 10평도 채 안되는 공장이지만, 기초공사를 할 때는 출자조합원들이 삽을 들고 나와서 함께 하도록 하여 주인의식을 가지기를 바랐다.
2015년 후반기는 전통압착식 들기름 착유기, 두부 기계, 포도 착즙 및 파우치 포장기를 들여놓았고, 이젠 주민들이 나서서 공장을 가동하길 바랐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바람에 결국은 내가 직접 기름도 짜고. 두부도 만들고, 포도즙도 짜야했다. 비록 1960년대 농화학과를 졸업하여, 식품가공학을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기름 짜고, 두부 만들고, 포도즙을 짜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앞서가고 있는 기름공장과 두부공장 등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시운전도 해보면서 배워나가야 했다. 2016년부터는 연 3%의 출자배당을 할 수 있었다. 조합설립 3년 만에 출자배당을 한 것이다.
< 전통압착식 착유기 등 들기름사업의 새로운 시설들>
해를 거듭할수록 기술도 안정되면서 들기름 품질도 나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두부는 저장성이 별로 없어서 지역시장을 벗어나기 어렵고, 값싼 수입콩을 원료로 한 두부공장들이 대부분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특히 많은 양을 소비하는 음식점들은 ‘좋은 두부’보다는 ‘값싼 두부’를 찾기 때문에 농촌마을에서는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어서 마을주민들이 콩을 가져와서 두부를 만들어가는 용도로 가동하고 있다. 포도즙도 포도 재배농가들이 수확을 끝내고 가져오면 즙을 짜주는 정도로만 가동하고 있다.
들기름을 짜서 팔기 시작한 2016년부터 출자배당을 시작했고, 2022년에는 마을기업 가공장이 세워진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10년간 무상 임대를 해주기로 한 이장님이 시세보다 싼 가격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영농조합도 매년 수익금의 일부를 매입자금으로 적립해 왔었다. 이는 출자조합원들과 조합원이 아닌 마을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신뢰를 얻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연간 매출액은 4,000만원 내외로 아직은 너무 작다. 들기름이라는 상품이 특별하지 않고, 들기름을 짜는 기름집도 무수히 많기도 하지만, 마을기업은 “마을이 없어지지 않는 한 망하지 않는 것”, 달리 말하면 ‘지속가능한 경영체’를 목적으로 하고, 매출은 이러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출원가와 영업비용, 출자배당금(자본용역비)을 감당하고, 감가상각과 손실충당을 위해서 다소라도 적립해 나갈 수 있으면 적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명예직 대표이사인 내가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서, 전담인력 1명의 연간 인건비 2,500만원 정도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연간 매출액이 1억 원 정도에는 이르러야 하고, 그래야 자립경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 나이가 곧 80이니, 후계자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매출액이 지금의 2배에 이르러야 하는데, 걱정이다.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을 시작하면서 2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는 자립경영이 가능해지면 마을 주민들이 꾸려가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큰일이 아니더라도 주민들에게 알리고 상의해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전담자 1인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립경영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어서, 설립 12년째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대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거의 모든 일을 주민들과 상의해서 처리한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어서 아직까지 잡음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마을기업은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마을기업에 대해서만 살펴보았고,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먹는다는 들기름의 생산과 판매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달로 미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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