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상국 교수의 생활과 경제 이야기 <104> 단양 석달 살아보기 (1) 작은 시골 성당의 감동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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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9월14일 16시41분
  • 최종수정 2024년09월24일 11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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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충북 단양의 작은 마을에서 농촌 살아보기 석 달 경험을 하고 있다. 원래 출신이 촌놈이니,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살리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하였다. 그리고 정년이 되니, 드디어 그 꿈을 실천하게 된 것이다. ‘가는 곳이 어디메냐?’는 항상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바로 안사람 때문이었다. 

 

1. 왜 하필 단양?

 

안사람은 내가 무엇을 할 때 별로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알아서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양’을 갔으면 좋겠다고 꼭 집어서 말하였다. 의견을 표시하는 것도 드문 일인데, 더욱이 장소까지 지정하여 말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의아한 마음을 감추고 물어보았다. “왜, 하필 단양?” 그런데 그 대답 또한 의외였다. “거기 김영희씨 고향이잖아.” 김영희씨는 이십여 년 전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라는 책을 쓴 ‘닥나무 종이 인형’ 작가다. 물론 우리 부부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십여 년 전에 읽은 책이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등장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안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에게 작은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곧 ‘늙은 말의 지혜’다. 뭐 대수롭게 큰 얘기는 아니다. 옛날 물이 귀한 곳에서 전쟁을 하면, 때로는 물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울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때, 늙은 말의 고삐를 풀어주고, 그 말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물을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여기서 ‘늙은 말의 지혜’라는 말이 생겨났다.

 

나도 나이가 드니 이런 지혜가 조금은 생겼나 보다. 뭐 대단한 지혜는 아니다. 그저 아무런 상관없는 말이 중요한 의사결정 시에 갑자기 튀어나오면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나는 수호천사라는 존재를 꼭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가를 할 때, ‘누군가가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또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그런 것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좀처럼 명확한 의견을 내지 않은 안사람이 단양이라는 『구체적』인 명칭까지 지적하며 말하는 것은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결정하였다. 원래는 남쪽 나라로 갈 계획이었지만, ‘그래 그쪽으로 가는 것은 이번에는 아닐지도 몰라. 나에게 더 나은 길을 이끌기 위해 이번에는 단양으로 가라는 말이겠지?’ 그래서 단양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단양 옆 제천에는 잘 아는 분도 계셔서 단양으로 가게 되었다.

 

2. 단양의 특징


(1) 카르스트 지형의 아름다움

 

누구나 관심을 깊게 가져야 할 중요한 학문 중의 하나로 나는 지질학(地質學)을 꼽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땅의 지질을 잘 이해하면, 그 지역에는 어떤 산업이 적합하고,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는지를 비교적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말이 있다.“지리(地理)는 지리(地利)로 통한다.” 즉 ‘그 땅의 지질적 특성이 그 땅에서 제공하는 이익(利益)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단양만큼 이 말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장소는 없을 것이다. 단양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석회암 지역이다. 그것을 가장 쉽게 증명하는 것이 바로 ‘단양팔경’이다. 단양팔경 중 5개가 석회암 지질과 관련되어 있다. 도담삼봉, 단양 석문, 구담봉, 사인암, 옥순봉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밖에 유명한 고수동굴(古藪洞窟)이 있고,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단양의 산업은 시멘트 산업이다. 시멘트의 주재료가 바로 석회암이다. 즉 단양의 특성과 경치 그리고 주요 산업이 바로 단양이 석회암 지역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밖에도 단양에는 천연기념물 제261호 온달동굴이 있고, 여성적이고 섬세한 동굴로 유명한 천동동굴도 단양에 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 세 개의 동굴 이외에도 수많은 동굴들이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 지하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럼, 잠깐 석회암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석회암은 원래 얕은 바다에서 사는 칼슘 성분이 풍부한 플랑크톤조개껍데기가 차곡차곡 쌓여서 생긴 지형이다. 그런 얕은 바다(천해, 淺海)가 지각변동에 의해 땅속으로 들어가서 높은 압력을 받아 굳어진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석회암들이다. 그리고 그때 압력 이외에 높은 온도로 구워지기까지 하면 ‘대리석’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석회암과 대리석의 어머니는 바로 칼슘 성분이 많은 규조류와 조개껍데기다.

 

그런 태생을 갖기 때문에 석회암과 대리석은 강한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빗물에 쉽게 녹고, 특히 빗물에 탄산가스가 녹아있을 때는 더 빨리 녹는다. 그런 이유에서 석회암 지대에는 동굴이 많고, 바위의 색도 회색빛이며, 산의 모양도 긴 능선이 발달하지 않고, 마치 작은 컵을 뒤집어 여러 개 연결한 것처럼, 옹기종기 작은 봉우리들이 연결된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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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양의 산수가 아름다운 이유

 

그럼, 왜 단양의 산수가 그리 아름다울까? 단양에는 가곡리(佳谷里)라는 곳이 있다. ‘골짜기가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이다. 그만큼 단양은 아름다운 곳이다. 

 

무엇이든지 너무 반듯한 직선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단양은 곳곳이 곡선이다. 산 정상도 곡선이고, 하천은 더욱더 곡선이다. 가곡리 앞 하천을 보면 아주 곡선이 심한 ‘S' 자형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탄산칼슘으로 구성된 석회암 지형은 빗물에 잘 녹는다. 잘 녹으니, 직선이 있을 수 없다. 4억 5천만 년 동안 녹아내렸으니, 직선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할 일이다. 그래서 단양 이곳저곳에는 기암괴석이 많다, 그러니 단양은 산수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도담삼봉(島潭三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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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김정희, 단원 김홍도, 겸재, 이방운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시와 그림을 남겼다. 

 

조선 1등 개국공신인 정도전 선생은 이 도담삼봉이 너무 좋아, 자기 호를 삼봉(三峯)이라고까지 지었다. 삼봉 선생이 단양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의 역사적 기록으로 볼 때 단양 출신은 아니고, 바로 옆 경북 영주 출신으로 생각된다. 아마 외가가 단양이어서 자주 놀러 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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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자체 간에는 유명 인사나 소설의 탄생처가 자기 고을이라는 다툼이 자주 있다. 아마 관광산업이 중요한 테마가 되면서부터 그런 것이라고 짐작된다. 홍길동의 고향이라고 선점해 버린 전남 장성, 흥부전의 고향이 남원이라는 주장, 차(茶) 시배지에 대한 구례와 하동 간의 다툼, 산수유 시배지에 대한 다툼 등이 그것이다.

 

어떻든 도담삼봉은 석회암 지형(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원추 모양의 세 개의 봉우리가 남한강 유속이 느려지면서 마치 연못 같은 느낌이 드는 넓은 자락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그래서 남한강(江) 줄기에 있으면서도, 담(潭, 연못)에 있는 도담삼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 개 봉우리에 대해서는 재밌는 설화가 있다. 본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이 첩실을 얻었고, 그 꼴 보기 싫은 부인은 뒤돌아 앉아 있고(가장 왼쪽 바위), 중앙의 남편은 첩실(가장 오른쪽 바위)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해설이다. 

 

3. 시골 삶의 한적함과 아름다움


(1) 짧은 기간 느껴 본 단양의 귀농·귀촌

 

단양의 아름다운 산천에 싸여 지낸지가 이제 2주가 되었다. 매포읍에 있는 흰여울 회관에 있는 작은 펜션에서 살고 있다. 친절한 주최 측과 주위 동료들 덕에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오전 중 약 4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대부분 오후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처음에는 별로 강하지도 않은 근로 시간이 그래도 부담이 되었는지 낮잠도 잤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듯하다. 

 

선배 귀농인 집도 방문하고, 일찍 귀촌하신 분들도 만나 보았다. 모두들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어떤 분은 아예 조금 일찍 들어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분도 계시는 것으로 보아, 귀농·귀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용기의지인듯하다. 귀농귀촌을 염두에 두고 계신 분들은 그냥 실천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운동화로 유명한 ’나이키‘의 로고가 생각이 난다. “Just Do It!" ”, “그냥 해버려!”

 

(2) 30분 내에 모든 것이 있는 시골 생활

 

시골 생활의 특징은 한적함과 불편함. 그리고 여유로움인듯하다. 내가 세 가지로 나누어 말했지만, 사실 이 세 가지는 모두 같은 말이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우선 집 근처 30분 내에 모든 것이 다 있다. 30분이 아니라 15분 이내에 다 있다. 읍사무소, 약국, 음식점, 잡화점, 성당, 모든 것이 다 있다. 그러나 저녁 7시가 넘으면, 있는 것은 오직 가로등뿐이다.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밤 10시까지 불 밝혀있는 약국, 아무리 늦어도 9시까지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음식점 등등 그런 것은 여기에 없다. 당연히 불편하다.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아니 저녁이지만, 이처럼 훤한 시간에 밥 사 먹을 곳조차 없단 말이야?”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바뀌게 된다. 비상약도 조금 사놓고, 시간을 보아 너무 늦으면 아예 외지에서 밥을 사 먹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집에서 먹으면 된다. 편의점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것 몇 개는 여유 있게 사놓거나, 아니면 잠시 참으면 된다. “제법 큰 냉장고도 있는데, 이게 무슨 큰 대수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 시골 생활은 불편하지 않고 여유로워진다. 그리고 사람 없는 길들이 쓸쓸하게 보이지 않고, ‘한적’하게 보인다.

 

사람은 참 ‘적응하며 사는 동물’인가 보다.

 

(3) 시골 작은 성당 미사 참여의 즐거움

 

오늘은 마침 일요일이다. 그간 몇 번 빠진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글쎄 7분 거리에 있다. 30분 전이 아니라 10분 전에 나가도 충분하다. 또 한 번 시골 생활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혹시 하면서 15분 전에 출발하였다. 길을 찾는데 약간 헤맸지만, 워낙 작은 동네라 헤매도 거기가 거기다. 여유롭게 도착하였다. 성모님 전에 인사드리고 성당에 들어서는데, ‘어라, 저분이 신부님이야?’ 잠시 놀랬다. 아주 젊은 신부에 머리는 노랗게 물들였다. ‘허 참.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신부님도 저런 노란 머리 염색을 하다니.’ 왠지 마음이 불편하였다. 괜스레 강론까지 걱정되었다. ‘너무 앞선 강론을 하면 어떡하나?’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로 하는 강론은 좋았다. 미사의 진행도 여유로웠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그러나 이 작은 성당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다. 참여 신자 수 77명의 귀여운 성당이다. 그러니 성당이 클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작은 성당에서의 미사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우선 신자들이 상당히 큰 소리로 성가를 불렀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부르는 성가는 교회당 넓이와 높이와 묘한 공명을 이루었다. 같은 음악이라도 건물과 공명을 이루면 신비한 반향음이 펼쳐져 나오고, 원래 곡 이상의 감응이 사람에게 다가온다. 

 

언젠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를 바하가 악장(樂長)으로 있었던 성당에서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토카타와 푸가는 전축을 통해서 들었던 그 토카타와 푸가가 아니었다. 엄청난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성당의 돌기둥과 벽, 그리고 높은 천장에서 부딪히고, 반향되어 들리는 소리는 내가 스피커를 통해 들었던 소리와는 판연히 달랐다. 그리고 푸가의 잠깐잠깐, 음악이 비어있는 것이 이해되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성당과 공명(Echo)되어 울려 퍼지는 몇 분의 몇 초 동안의 메아리는 엄청난 감흥을 나에게 주었었다. 

 

에밀레종의 녹음을 들어보면 종을 치고 난 후 종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맥놀이가 일어나면서 오히려 ‘우웅’하며 갑자기 커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단단한 돌로 건축된 대(大)성당에서 들은 토카타와 푸가에서도 같은 효과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아! 바하는 이런 반향까지를 생각하며 곡을 작곡하였구나!”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작은 이 성당에서의 반향이 어찌 그것에 비하리오마는, 신자들이 함께 힘차게 부르는 성가는 나에게 상당한 감흥을 주었다. “아마 이런 반향이 신자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큰 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석 달 간의 단양 생활에서 이제 겨우 2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작지만 큰 기대감이 마음속에서 속삭여 댄다. 

 

“앞으로도 기쁜 일들이 더 많이 있을꺼야.”

“무슨 재미난 일들이 내 앞에 또 더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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