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세계대전’ 공포로 시작한 2020년… 연초 미국-이란 갈등을 돌아보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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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연 미국-이란 갈등… 전쟁 공포에 떤 세계
올해 초, 세계는 ‘전쟁’ 공포에 들썩였다. 미국과 이란 간의 첨예한 긴장 때문이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서로 상대국을 맹비난했다.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다. 두 정상이 무시무시한 위협을 주고받는 동안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속보부터 헤드라인까지, 온종일 시뻘건 불길이 화면을 채웠다. 솟구치는 미사일과 폭발 장면이 줄기차게 방영됐다.
이번 사태의 기폭제는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죽음이었다. 호메이니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그는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공습으로 사망했다. 미국은 솔레이마니가 작년 가을부터 이어진 이라크 미군 기지 공습, 그리고 최근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의 배후라고 본다. 그가 이라크 무장 단체를 이용해 일련의 공격을 사주했다는 해석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솔레이마니를 암살한 미국의 결정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로 둘의 긴장 상태가 자명했지만, 전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전 중이 아닌 타국의 군사령관을 살해한 셈이다. 이란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1월 8일, 이라크 미군기지에 이란의 미사일 공습이 가해졌다. 작전명은 ‘순교자 솔레이마니’였다.
격추된 여객기와 이란 시민의 분노
가시적인 공격을 주고받은 양국은 그전보단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갈등은 이대로 소강상태로 접어들 듯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발견이 이뤄진다. 이란의 미군기지 공습이 있던 8일,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 상공에서 추락했다. 170명이 넘는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기체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미사일 ‘격추’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며칠 뒤 이란은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해 격추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격추 시인에 많은 이란 시민이 분노했다. 사고 희생자 가운데 많은 수가 이란인과 이란계 캐나다인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로 자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민심은 싸늘히 식어갔다. 추모식에서는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솔레이마니와 호메이니가 “살인자”라고 외치는 시위대의 모습도 보였다.
화난 이란 시민들… 솔레이마니 장례식 수십만 군중은 어디로 간 걸까
당시 언론은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몰려든 인파를 집중 조명했다.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미국에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과연 일주일새 손바닥 뒤집듯 여론이 돌아선 것일까? 답은 이란의 국내 사정보다는 언론의 성급함에서 찾을 수 있다.
마시흐 알리네자드 등 이란의 반정부 사회운동가들은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이 정부의 선전 용도로 주도면밀히 계획된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장례식에서의 추도 물결은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 아니다. 이란 반정부 운동가들은 지난해 가을 있었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유로 든다.
지난 11월부터 이란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이란 지도부는 인터넷을 차단하고, 시위대에 헬기 사격을 가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 시위에서 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시위를 촉발한 경제난과 이란 정부의 미흡한 대처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상황에서 군사령관 한 명의 죽음에 온 국민이 단결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반정부 운동가 측의 비판을 다 받아들일 순 없다. 장례식에 모인 대규모 군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부가 ‘연출’되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국민적 의지는 결코 단일하게 합치될 수 없다. 솔레이마니의 사진을 걷어차는 시위대도, 가슴팍에 소중히 배지로 단 추모객도 다 이란 국민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 점을 유념했어야 한다.
이란과 미국, 은폐와 선전
미국과 이란은 늘 구체적 정황에 대해선 함구에 가깝게 기밀을 유지했다. 사망자 수부터 사건 경위까지, 양측의 입장은 계속해서 엇갈렸다. 이라크 미군기지를 폭격한 후 이란은 이 공습으로 미국 측 8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미 군용기 추락 사고도 마찬가지다. 추락 원인과 사망자 수, 이들의 신원까지 또 주장이 엇갈린다.
앞서 말했듯 이란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점은 명백하다. 지난해 시위로 터져 나온 내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솔레이마니의 죽음 이후, 한동안 트럼프의 암살 지시가 무리한 행동이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참모진이 그의 결정에 당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그가 탄핵 국면 타개를 위해 갈등 사태를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이들 다수는 ‘보통 사람’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여객기에 탑승해 있던 170명이 있다. 양측의 무력행사로 고통받는 인접국 국민들도 존재한다. 이란과 미국은 IS(ISIS 또는 ISIL, 이슬람국가)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주변 국가들에 줄곧 개입하고 있다.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곳도, 이란이 보복 공습한 미군 기지도 이란이 아닌 이라크다.
미국과 이란에는 각각 숙제가 주어졌다. 미국 사회는 더 이상 ‘자유 수호’를 내건 국외 전쟁에 호의적이지 않다. 솔레이마니 암살 다음 날인 4일, 백악관 앞에서는 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또 이란 지도부는 “정부가 우리의 IS”라고 외치는 시민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1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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