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명호의 짧은 소설 <8> 송동월 (松桐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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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14일 13시41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14일 13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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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서 ‘육백’은 600점을 먼저 내면 이긴다. 약은 청단, 초단 100점, 송동월(솔광, 오동광, 팔광) 300점, 빠이(국화열과 팔광) 150점, 대포(국화열과 팔광) 300점. 그리고 비약은 200점, 용꼬(비광 뺀 4개 광) 600점이다. 일월인 송학부터 매조 벚꽃 흑싸리 난초 목단 싸리 팔공산 국화 풍 오동 비 열두 개의 그림 속에는 꿈도 있고 좌절도 있고 사랑도 있고 미련도 있고 희망도 있다.

이 가운데 삼광이라는 송동월(松桐月)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사람은 벌써 십 년이 넘게 매 달 마지막 수요일은 어김없이 시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한다. 늘 보아온 터라 얼굴은 알지만 한 번도 인사를 건너거나 대화를 한 적은 없다. 세 사람이 송동월이라는 다소 낭만적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들이 자리 잡은 장소의 영향이 크다. 한 사람은 소나무 아래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띠를 가슴에 걸치고 앉아있고, 다른 한 사람은 오동나무 아래서 ‘집창촌을 부활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반월 조각이 뚜렷한 담장 아래에 가부좌를 튼 채 간헐적으로 ‘하야하라!’ 소리만 지른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이름하여 ‘삼광’이라는 300점짜리 송동월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림이 아니래도 그들은 자칭 시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스스로도 최고의 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솔광은 노숙자이다. 

오래 전 고향 마을에 댐이 생기면서 건너 마을과 길이 막혀 엄청나게 돌아가야 했다. 어느 날 그가 고무 다라이(큰대야)를 타고서 건너 마을에 다녀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따라서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의 인기는 대단히 높았다. 그는 마을의 이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본에서 독도 문제를 제기하자 흥분한 그는 다라이 배로 독도까지 가겠다고 실행하다가 포항 앞바다에서 10미터도 나가지 못한 채 좌초되었고 그 길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고 이장 자리에서도 쫓겨나 결국 노숙자가 되었다. 노숙자가 되어도 그는 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슴 띠를 두르고 다녔다.

 

오동광은 자칭 노동시인이다.

창녀들에게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며 집창촌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그 피켓에는 구호 같은 시가 적혀 있다.

내게는 여럿의 누이들이 있었지만 /모두 가난하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나는 지상의 외톨이 /단재가 '부처를 형님이라' 했듯 

예수는 나의 형님이다. /그래서 형님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집창촌을 부활하라! /그녀들에게 일자리를 돌려주라!

 

팔광은 늘 기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아직 그가 바둑을 두는 것은 본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그의 기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바둑을 두지 않으니 기원에서 돈 쓸 일은 없다. 그는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와이티엔처럼 뉴스를 내뱉는다. 사람들은 그의 뉴스를 귀담아 듣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벽에 걸린 액자와 같은 기원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가 시청 앞 반월조각 담장 밑에 가부좌를 튼 채 명상하듯 앉아 있다가 한 번 씩 ‘하야하라!’를 외친다. 딱히 누구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하야’라고 하니 대통령이 아닐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 한다.

 

그날도 세 사람은 각 제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둘기 떼가 몰려왔다. 인근 부두에서 갈매기들과 한가하게 먹이 경쟁을 하던 비둘기들이 무엇 때문인지 시청까지 몰려왔다. 게다가 여기저기 똥을 마구 갈기는 바람에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삼광의 머리 위까지 실례를 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견고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던 세람의 경계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고, 세 사람은 처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같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도 같은 목소리로 ”씨팔, 새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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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14일 13시41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14일 13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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