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5월 뉴욕 맨해튼 <1> 대학생 반전(反戰) 시위 제압한 노동자 시위 > 청계산 칼럼

어느 정치학자는 1970년 5월 8일 뉴욕시가 미국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본다. 또 어떤 평론가는 금년 초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동은 1970년 5월 8일에 예고됐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면 그 날 뉴욕시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1970년 5월 4일, 오하이오 주 켄트 주립대학에서 학생 약 300명이 베트남 전쟁, 특히 캄보디아로의 확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오하이오 주 방위군은  최루탄으로 해산이 되지 않아서 곤란을 겪었다. 그러자 별안간 총성이 올렸고 주 방위군 77명 중 29명이 실탄을 발사해서 학생 4명(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국 역사상 학생이 시위 도중 공권력의 총격으로 최초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5월 한 달 동안 일어났다. 5월 15일에는 미시시피 잭슨 주립대학에서 경찰이 총격을 가해서 시위에 나선 흑인 학생 두 명이 사망하는 등 당시 미국 캠퍼스는 혼돈 그 자체였다. 

켄트 주립대학에서 사망한 학생 중 한명이 뉴욕시 출신이었다. 그 학생의 시신은 뉴욕의 부모 곁으로 돌아와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뉴욕시에 있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계획했다. 당시 뉴욕 시장은 존 린지(John Lyndsay 1921~2000)였다. 진보적 공화당원으로 하원의원을 지내고 1965년 선거에서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린지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었다. 린지 시장은 5월 8일을 켄트 주립대학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로 선포하고 학교를 휴업하도록 했고 시청 청사에 조의(弔意)를 표하는 반기(半旗)를 계양하도록 했다. 

5월 8일 아침부터 대학생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켄트 주립대학에서 사망한 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시위를 하기 위해 맨해튼 증권거래소와 유서 깊은 페더랄 홀(Federal Hall) 앞으로 모여들었다. 11시가 되어갈 무렵 이들은 1,000명을 넘어서 제법 큰 집회를 형성했다. 11시 30분,  갑자기 근처의 세계무역센터(9.11 테러로 사라진 쌍둥이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수백 명이 안전 작업모(hard hat)를 쓴 채로 대학생 시위대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U.S.A, U.S.A,"를 외치면서 대학생 시위 군중을 향해서 거칠게 다가갔다. 이들은 ”America, Love It or Leave It"(미국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떠나라) 피켓 등을 들고 대학생 시위대와 충돌했고 닥치는 대로 학생들을 폭행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두 그룹을 분리시키려 했으나 학생들을 폭행하는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않았다. 그 날 뉴욕시 경찰은 노동자 편이었다.   

500명 이상으로 늘어난 노동자 집단은 “린지를 잡아와라”(Get Lindsay !)를 외치면서 시청 청사로 몰려가서 반기(半旗)로 게양한 성조기를 완전히 올려 버렸다. 뉴욕 시청 직원들은 속수무책이었고 뉴욕 경찰은 이런 모습을 즐기면서 구경했다. 이날 노동자들의 폭행으로 부상당한 학생이 100명이 넘었고 수십 명이 두드려 맞고 실신을 했는데, 부상당한 학생 네 명 중 한명은 여학생이었다. 공사장 안전모(安全帽 hard hat)를 쓴 노동자들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머리채를 끌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던 것이다. 이날 있었던 사건을 흔히 ‘Hard Hat Riot'이라고 부른다. 'Hard Hat'은 건설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쓰는 딱딱한 안전모로 블루칼라 노동자의 상징인데, 이런 노동자들이 대학생들의 반전(反戰) 시위를 힘으로 제압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계속)

사진 (1) 켄트 주립대학에서 주 방위군 발포 직후 쓰러진 학생. 퓰리처 상을 탄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 (2) 5월 8일 Hard Hat 시위대

사진 (3) 5월 8일 하드 햇 노동자가 대학생을 구타하는 장면. 구경하고 있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건설회사 관리직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