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링크
본문
지난 1월, 마을공동체로서의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설립 이야기로 시작하여, 2월에는 산골인 흥부마을에서 생산된 들깨를 들기름으로 만들어 파는 마을기업사업, 3월에는 들기름 사업의 전망과 과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흥부마을의 농촌휴양체험마을사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휴양체험사업은 마을기업의 들기름사업과 함께 흥부마을의 양대사업 중 하나이고, 처음에는 흥부골 권역에 지어진 휴양체험시설인 ‘우애관(友愛館)’의 활용을 목적으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졌으니 휴양체험마을사업은 중심사업이었다. 그러나 농촌휴양체험사업만으로는 적자경영을 피할 수 없어서 마을기업사업(들기름)을 추가하여 보완하게 된 것이다.
흥부마을의 농촌휴양체험마을사업은 여러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필요(수요)와 제공(공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의 휴양과 정서 함양이라는 필요(수요)를 농촌의 공간과 문화가 제공(공급)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흥부마을은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골마을로 ‘농촌다움’이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고, 세계 유일의 음악장르인 판소리(유네스코 등재문화재) 흥부가의 발상지와 가야의 아막성, 그리고 봉화산 봉수대가 있어서 제공할 수 있는 꺼리(요소)들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또한 이런 요소들 덕분에 권역당 70억원이 지원된 ‘흥부골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도 선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사업비의 절반가량(35억원)을 들여서 만든 우애관 등의 기반시설들을 갖춘 다음부터는 아무런 사업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의 해결을 위해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으나 당초에 계획한 농촌체험휴양마을사업만으로는 적자경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먼저 제공(공급) 당사자인 흥부마을의 입장에서 보자.
우선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골마을, 판소리 흥부가, 가야의 아막성과 봉수대는 흥부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 유용한 자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좋은 원석들이 잘 가공되고 꿰어져야 보석이 되듯이, 잘 가공하고 꿰어내야 하는 ‘사람’과 이 과정을 만들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즉 흥부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꺼리’를 만들 사람과 ‘이야기를 해줄’ 사람, 그리고 이것을 이어줄 체계(시스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나는 농업과 숲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흥부마을과 관련된 기사와 연구자료, 논문 등의 자료를 직접 모아서 스스로 이야기해줄 꺼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농업과 숲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면지(面誌), 남원시문화원, 운성고을*문화대학, 운봉향교,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 신문, 인터넷 검색 등으로부터 매우 유용한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남원시는 서쪽이 섬진강 연안의 평지이고, 동쪽은 지리산에 둘러싸인 해발 450m 내외의 남한 최대의 고원지대인 운봉읍, 인월면, 아영면, 산내면 등이 있는데 이들 마을을 통틀어 ‘운성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진;체험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흥부전'에 관해 직접 얘기해주고 있는 이영석 대표(오른쪽)>
그런데, 그 자료들의 신빙성 등을 고려하면,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이 나서서 ‘이야기해 줄 꺼리’를 만들어주고, 행정당국이 나서서 서로를 연결하고 지원하고 관리해줘야 하는데 이런 체계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농촌에는 이를 감당할 사람이 없다. 때로는 흥부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이 마을주민보다 흥부가를 더 잘 설명해 줘서 주객이 뒤바뀐 때도 있을 정도로 지금 농촌마을은 노령화되고 비어가고 있다. 특히 흥부마을은 도시근교의 농촌마을과도 전혀 다른 상황이다.
현재 흥부마을은 2시간 정도가 걸리는 ‘흥부길 탐방’ 프로그램 외에도, 체험프로그램으로 마을에서 생산된 블루베리와 오미자를 이용한 블루베리 쨈 만들기, 블루베리 치즈케익 만들기, 블루베리 화분심기, 오미자 젤리 만들기 체험을 운영하고 있으나, 점심과 같은 식사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부정기적이고 식사인원도 20명을 넘지 않아서 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특히 식중독 사고 예방을 위한 식품위생요건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
|
|
이러한 체험프로그램은 우리 스스로 개발하여 알리고, 주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요청하여 진행되고 있다. 남원시 13개의 휴양체험마을이 협의회를 구성하고, 남원시와 휴양체험마을 사이를 연결하고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남원시농촌종합지원센터)’과 남원교육지원청을 통해서 일정과 구성, 내용 등을 협의하여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곧 흥부마을 체험프로그램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의 ‘학교밖 수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농촌의 체험프로그램이 농업농촌을 체험함으로서 농업농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본원적인 수요보다는, 학교 안에서 진행하기 곤란하거나 번거로운 ‘학습과제’를 농촌이라는 공간을 빌려서 잠깐 동안 진행하는 수요가 더 압도적이라는 것이 문제이고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나마도 지방에서는 취학아동들이 꾸준히, 그리고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어서 남원의 읍면지역은 2~3개 학년을 합해도 15명을 채우기 어렵고, 때로는 인근의 2~3개 학교를 묶어서 10여명을 채워서 체험학습을 하기도 한다. 수도권도 취학아동이 줄어드는 현상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수도권의 체험농장들은 그런대로 수요가 있고, 이를 감당할 젊은 농가들이 있어서 딸기 수확 체험, 감자 캐기 체험, 고구마 캐기 체험, 다육식물 화분심기 등 등 상대적으로 괜찮은 상황이다. 물론 와인체험, 한식체험, 사찰음식체험, 한옥체험과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도 하고, 템플스테이와 같은 체험프로그램도 있으나 농촌체험보다는 관광업의 관점에서 다뤄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농촌체험휴양마을사업은 전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장려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체험마을사업을 성공시키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첫째로 농촌체험휴양사업은 농촌을 경험하고, 쾌적한 공기와 풍광 등 자연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느끼도록 함으로서 정서적 안정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숙박과 식사가 포함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 드나들면 돈이 된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할 때가 있다.
둘째, 농촌이 도시민들의 요구에 어디까지 맞춰야 하느냐? 이다. 농촌이 도시민들의 휴양지나 관광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서울의 북촌도 관광객과 주민들의 욕구가 합리적이고 타당한 수준에서 합의되어야 하는 것처럼, 농촌도 방문객들과 농민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사회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농업·농촌·농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은 낙후되고, 농촌은 불편하고, 농민들은 뒤떨어져 있어서 안타깝다는 시선은 서로를 갈라놓게 될 것이다. 도시와 농촌은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해야 하는데, 농업을 2등 산업, 농촌은 2등 지역, 농민은 2등 국민 등으로 서열화하는 시선이 갈수록 매서워지는 것 같다.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산업국가에서 지식기반의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가장 밑바닥 토대가 되어준 것이 농업·농촌·농민이기 때문에 그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농업·농촌·농민이 무시당하거나 없어져도 잘사는 선진국이나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농촌의 발전은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잘 사는 마을로 만드는 일이고, 전국의 농촌마을들이 이렇게 잘살게 되면 대한민국도 잘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모든 국민들이 함께 느끼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ifsPOST>
※ 필자는 귀농 13년차로 농업경영학을 전공하고, 농업과 농촌 연구에 몰두했던 연구자(한국농촌경제연구원)로서, 또 농업후계인력 양성에 매달렸던 교수(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로서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아 농촌 농업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편집자> |
- 기사입력 2025년04월01일 16시45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19일 11시3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