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명호의 짧은 소설 <9> 불놀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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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22일 17시22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2일 17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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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소리가 울려났다. 곧이어 메케한 냄새와 함께 거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이 났다. 파출소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는 사무실 건물이 시커먼 연기에 휩쌓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을 동동 구르며 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멀쩡한 그것도 국회의원 사무실에 불이 날 수 있죠?

나는 옆에 있는 바바리의 사내에게 혼자말처럼 물었다

방화요. 실화가 아닌 방화죠.

바바리의 사내는 확신에 찬 어조로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너무 자신 있게 말해서 형사나 보험회사 직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그 사내는 내가 제보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줄곧 내 옆에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불을 질렀죠?

불놀이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연기가 쏠리면서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 다급한 상황에 뭔가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사내의 태도가 조금은 못마땅했다.

불놀이라뇨?

그제는 불보다 오히려 사내에게 관심이 갔다.

달집을 아시오?

보름날 달맞이하면서 불태우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질문을 보충했다.

보름날은 정기가 가장 충천하는 날이요. 이날의 진정한 의미는 이 땅의 사악한 것을 태우고 달을 맞이해야 하오. 그것도 달이 돋는 시각이 가장 효험이 있죠. 좋은 기사꺼리가 될 것이요.

아니, 제가 기자라는 것을 어떻게 아시죠?

화제 현장에서 여러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벌써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했다. 소방호수의 물줄기가 여기저기 불길 속으로 날려들고 주위에는 경찰들이 구경꾼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사내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도대체 ㄱ 국회의원은 이 땅의 어떤 사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부유한 부모 아래 좋은 학교를 나와 대학의 교수와 국회의원까지 이른바 인생의 꽃길만 걸어온 사람이다. 자녀 교육에 대해 편법이나 부정의혹이 있지만 그 정도는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 흔하다. 왜 하필이면 그일까.

저길 보시오.

그때 사내가 내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켰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잦아진 연기 사이로 커다란 보름달이 보였다.

보름달이군요.

참, 난 황이요.

바바리의 사내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도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내의 인상이 정말 낯이 익었다. 단순히 이런 불난 곳에서 한두 번 만만 얼굴은 아닌 듯싶었다.

누구의 짓이든 속이 시원하지 않아요. 저 따위 인간 쓰레기는 태워버려야 그 정기가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신성한 교육을 권력이나 재력으로 오염시킨... 그러고도 잘못인지 모르는....

사내는 달을 보면서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사내가 방화범일까 하는 궁금증보다는 도대체 그 낯설지 않은 얼굴의 기억이었다. 그때 무엇인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래, 우리는 한 스무 해 전에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어. 그 도시에 가장 번잡한 거리였어. 어디선가 요란한 자전거 경적음을 울리며 짐자전거 한 대가 전 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한가하게 거리를 걷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옆으로 퉁겨져 나갔다. 저 죽일 놈... 나는 그 자전거를 향해 마구 뛰어갔다. 얼마나 따라갔을까. 그 자전거는 길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죽일 놈은 어떤 사내에 의해 멱살이 잡혀져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손뼉을 쳐댔다. 그였다. 

나는 그에게 술이나 한잔 사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짧은 말만 쟁쟁거렸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깟 비리 정도가 아니라. 위선이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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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22일 17시22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2일 17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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