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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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도 70년쯤 살다보니 비슷한 어떤 현상들이 모여서 일어나는듯한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만큼 철학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몇 번의 일들이 나에게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 해서 몇자 적어 보고자 한다.
가끔 만나는 후배가 있다. 평균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후배다. 자주는 아니지만 특별한 업무가 있어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자주 만나는 후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상 시 이 후배는 밝고, 가끔 너스래도 떨어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후배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남에서 “형님, 저와 오늘 얘기 좀 할까요?”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후배이니 그렇지 않을 이유도 없어 “그럽시다.”하며 얘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이 의외였다. 40여년 같이 살아 온 부인이 암에 걸렸다는 것이다. 무심히 “그럼 치료 받아야지.”하였다. 그러나 그 후배 말은 이미 그런 단계가 넘었다는 것이었다. 유난히 금슬 좋은 후배였는데, ‘저런 아픔이 있는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죽음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만큼 철학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후배에게도 나의 그런 심정을 평이하게 말하였다.
1. 각 종교의 사후(死後) 생에 대한 가르침
사후 생에 대한 가르침은 곧 현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모든 종교에는 생사관이 있다. 불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유교 또한 마찬가지다.
먼저 유교를 말해 보겠다.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사후 세계는 어떤것입니까?” 이 말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생도 잘 모르는데 사후 세계를 어떻게 알겠느냐?”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사후 세계가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고, 아니면 말 그대로 자신이 사후 세계는 모르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유교는 ‘사후 세계관’이 없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제사 지내는 것을 가장 중시여기는 종교가 유교이니, “나는 모르겠다.”라는 공자의 말은 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기독교는 비교적 명쾌하다. 하느님 나라 즉 천당으로 가거나, 죄를 많이 지었으면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전생도 후생도 없다. 오직 현생이 있을 뿐이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믿게되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현생(現生)은 내가 사는 지금 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생(前生)인 과거 생이 있다. 그리고 그 전생 때 쌓은 업보(業報)의 인과법칙에 따라 현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내가 현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업이 다 지워질 때까지 생은 반복되고, 그 업이 지워지면 윤회가 끝나고 열반의 세계로 간다고 가르친다.
비록 지난 생의 내 업보에 따라 현생이 결정되지만, 그것에 순응만 하지 않고, 나의 의지에 따라 즉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行動)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은 불교의 참으로 적극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믿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보다는 더 합리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2.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서양의 차이
서양에서도 죽음에 대한 표현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지나가다’(Pass away)이다. 즉 현생은 여기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다가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말로도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생의 『이 자리』 말고, 분명히 그 어떤 다른 자리가 있는 것은 동서양 모두가 같이 생각하는 듯하다.
3. 자식들과의 대화
나는 자식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이다. 일상적인 대화 이외에 상당히 속 깊은 대화도 하는 편이다. 얼마 전 딸과 ‘하고 싶었던 일, 이루지 못한 일, 아쉬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는 적이 있었다. 나도 내가 이루지 못했던 일에 대해 상당히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내 딸의 대답은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로웠다.
“아빠, 아빠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아빠가 이룬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아빠가 원하는 것을 하였다면, 아빠의 세 자식들이 이렇게 자랄 수 있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는 답변이었다. 그날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었을 이루었을까?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이 정말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값있는 일이었을까? 그리고 딸의 말데로 내가 이루지 못한 것과 내가 이루었을 때 자식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칠 가능성과를 비교할 때, 나는 어떤 것을 택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았다. 인구 십여호에 불과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대학교도 가고, 유학도 갔으며, 대학교수도 되었다. 우리나라 큰 두 개 학회의 회장도 했고, 학교에서도 중책을 맡았으며, 제법 유명교수도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명의 자식들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제 역할을 하는 아이들로 자라 주었다.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부자가 된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만큼도 너무 감사할 일이다.’
4. 후배와의 이어진 대화
부인의 암 투병을 돕고 있는 후배에게, 특히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많은 후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병을 알고 있지만,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전혀 자신은 그 병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얼마든지 틀릴 수는 있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자연스럽게 그러나 의연하게 자네의 심정을 얘기하게.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나는 죽음을 지나가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허망하고 두렵지. 하지만 이것도 현 과정에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죽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억울한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닐지 몰라. 나는 옛날부터 생(生)은 ‘긴 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죽음은 그 긴띠의 한 끝자락이 아닐까? ” 나의 이 말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내가 정작 그런 일이 나에게 발생했을 때, 또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5. 고서의 기증과 뜻하지 않은 칭찬, 그리고 ‘기증 릴레이’
나는 대학교때부터 한자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서(古書)를 모았었다. 제법 값이 나가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내 자식들은 모두 해외에서 살고 있고, 한자는 아얘 모르는 세대다. “이 책들을 어떻게 하지?” 버리는 것은 선현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고, 자손들에게 남겨 주자니,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고민 중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한국학 중앙연구소(조선시대 藏書閣의 후신)’를 발견하였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기증받을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기쁘게 받는다고 하였다.’ 그들이 기쁘게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쁘게 기증할 일이었다. 그래서 세 번에 나누어 기증하였고, 후배와의 대화도 있고 하여,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직접 방문하여 기증하였다.
어찌나 시원하고 기분이 좋은지. 내가 사라져도 책은 남을 것이라고, 그것도 확실한 기관에 맡겼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몇몇에게 자랑질을 하였다. 자식들도 모두 잘했다고 하고, 친구들로부터는 ‘훌륭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생애 처음 듣는 큰 칭찬이었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평상 시에도 자주 전화하는 친구였다. ‘자기도 나와 동일한 이유에서 고서를 기증하겠다.’는 전화였다. 남양 홍씨 큰 집안이니 분명히 나보다 더 좋은 책들이 많을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8,000여권의 책(근,현대 서적)을 기증하겠다고 하여 ‘서울시 기증 중고 도서관, 서울책보고’를 소개하였다.
아! 이것이 기증의 기쁨이구나. 아! 이것이 보시(報施)의 기쁨이구나!
칭찬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기증 릴레이’ 까지 약속받았으니, 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일어난 기쁜 일 중의 하나였다.
6. 자식들에게 보낸 제사에 대한 편지
연달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는 나의 생각에 최근 다음과 같은 일도 있었다. 그것은 ‘제사’에 관한 친구의 글이었고, 그 글을 받고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자식들에게 보냈었다. 이 글에 이 내용을 포함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포함 하기로하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합리적 생각에 따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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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친구로 부터 제사에 관한 메일을 받고, 아빠의 생각과 그 글을 함께 보낸다.
(제사가 갖는 의미)
아빠 엄마도 언젠가는 너희들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도 떠나신 부모님을 기리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동양에서는 '제사'라는 형식이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특히 개신교가 들어 오면서, 마치 제사가 미신 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것은 서양의 동양선교 역사에서 매우 잘못된 행위 중 하나였다. 이점은 캐톨릭도 마찬 가지였다.
⚫ 그들이 제사를 부정한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서양선교사들은 지나친 제사 의식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양 유교에서는 제사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먹고 살기도 힘든 살림에서 과도한 제사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먹고 살 쌀도 충분히 생산할 수 없는 좁은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 농토를 팔아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분명히 옳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사들 입장에서 제사는 없애야 할 나쁜 전통이었다.
둘째, 지방(신위)의 문제였다.
지방은 제사 상 앞에 부치는 종이 위폐이고, 신위는 같은 목적이나 밤나무로 만든 집 형태의 조상님 이름을 새긴 위폐다. 집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그 글씨 맨 끝에 ㅇㅇㅇ신위라고 되어 있다. 한자로는 신위(神位)라고 쓴다. 그런데 기독교는 유일신 즉 하나님 한 분만을 신(神)으로 모시는 종교다. 그런데 조상도 神이 된다니 받아드릴 수 없는 행위였다.
그래서 카톨릭, 개신교 모두 제사를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카톨릭은 잘못을 깨닫고, 제사를 지내도, 신위 대신 ㅇㅇㅇ아버님, 어머님, 부모님으로 쓰라고 정정하였다.
⚫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다. 제사는 아래 사람의 주장처럼 그 장점이 너무나 많다. 다 자라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어찌 이런 계기가 없으면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겠느냐? 이것은 서양의 Family union day와 같은 의미다
ㆍ앞으로도 너희들은 반드시 제사를 지내라. 그리고 꼭 너희 자식들과 “함께” 참석하여라.
ㆍ제사상은 가능한 전통 격식을 차리면 좋지만 테이블 위에 차려도 좋다.
ㆍ그러나 인사는 반드시 우리 전통의 '큰절'을 해라. 자손들도 어색한 자세일지라도 큰절을 배워 익히도록해라. 그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예절을 갖추는 공부의 첫시작이 되는 것이다.
ㆍ정해진 형식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ㆍ미사는 언어만 다를뿐 전세계적으로 형식은 동일하다.
ㆍ공의회 이전에는 전 세계가 라틴어로 미사를 지냈다. 불과 오륙십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었다.
ㆍ그 이유는 반복적 동일 형식을 따르는 것은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전통을 지키는 수단이 되며, 부부, 부자, 조상 후손간의 연결점이 되기 때문이다.
ㆍ동일 형식은 동일한 기본 마음 자세를 만들기 때문이다.
ㆍ결국 내가 부모님을 소중히 모시는 것은 그것을 보고 자란 너희 자식들이 나중에 너희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되어 가기 때문이다.
ㆍ곧 제사를 모시는 것은 너희 자식들에 대한 교육이고, 미래 너희 자식들의 너희들에 대한 예절이 되는 것이다.
즉 부모에 대한 공경은 결국 너희 자신의 문제다. 매우 중요한 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ㆍ다만 제사일은 먼저 돌아가신 날의 전날에 모신다. 9일날 돌아가셨으면 8일날 지낸다. 옛날에는 모두 가까이 살았고, 밤12시 자정이 지낸 후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ㆍ그러나 여러가지를 고려해도 전날 모여, 자정이 되기 前이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 너희들이 너무 떨어져 살 때는 그 전 주 적당한 때 약속한 날(일요일)로 해도 좋다. 그러나 너무 떨어진 날로 정하지는 말아라.
ㆍ그리고 아빠, 엄마가 모두 돌아가시면 늦게 돌아가신 분의 돌아가신 전날 모여 합제 (부모님을 함께 모시는 것임)를 지내라.
ㆍ아빠는 제사(기념일) 지내는 것을 너희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손들이 뿌리를 잊지 않게 하기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꼭 지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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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친구가 보내준 글이다.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제사를 지낼 때 조상님이 실제로 다녀가시는지는 믿음과 해석의 차이에 따라 다릅니다.
1. 전통적·종교적 관점
많은 유교적 전통에서는 제사를 통해 조상님이 찾아와 후손들을 돌보고 복을 내린다고 믿습니다. 불교나 무속 신앙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있으며, 조상의 영혼이 제사를 통해 가족과 교류한다고 봅니다.
2. 심리적·상징적 관점
조상님이 실제로 오시지는 않더라도, 제사를 지내며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조상님과 연결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정신적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3. 과학적 관점
과학적으로 보면 제사는 문화적·사회적 전통일 뿐이며, 조상님이 실제로 다녀가셨다는 물리적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후손들이 조상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행위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 제사가 조상님을 실제로 모시는 행위인지, 아니면 가족이 함께하는 의미 있는 시간인지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죽음과 제사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제사는 기본적으로 죽은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1. 죽음에 대한 인식과 제사의 역할
인간은 예로부터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나 조상과 후손을 연결하는 과정으로 여겨왔습니다.
(아빠는 과거생, 현생, 다음생이라는 세개 생의 개념을 믿는다.)
제사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조상이 후손과 함께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2.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의미
유교적 전통에서는 죽은 조상의 혼(혼, 魂)은 하늘로, 넋(백, 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봅니다. 하지만 후손이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내면, 조상님이 후손을 보호하고 복을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은 조상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가족과 "계속 연결"되는 존재가 됩니다.
3. 사회적·문화적 기능
제사는 단순히 죽은 이를 기리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상을 공경하는 전통을 이어가며, 가족이 모이고, 세대 간 유대감이 강화됩니다.
4.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으로서의 제사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 사람을 기억하는 한 정신적으로는 계속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조상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방식이 됩니다.
5. 종교적 해석
불교에서는 윤회(輪廻)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제사를 통해 공덕을 쌓아 망자가 좋은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고 봅니다.
(아빠는 이 말도 진리라고 생각한다.)
도교나 무속신앙에서는 죽은 조상의 영혼이 후손을 돕거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결국 제사는 죽음을 "단절이 아닌 연결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상을 기억하고 그 유산을 계승하는 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후손들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나의 이 편지에 우리 큰 딸 말이 걸작이다.
“아빠, 이제 새로 시작하면 되겠네.”
나도 답하였다.
“오케이,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3월29일 17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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