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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의 동요와 일본의 방향 고민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라는 국제정세 불안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일본은 이와 함께 보다 중장기적 차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조망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대응책을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중간의 중장기적인 패권전과 함께 무역마찰이 격화되는 한편 세계 경제의 분단화 우려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의 각종 무력 충돌의 확대와 함께 국제질서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선진국도 개도국처럼 경제안보를 명분으로 반도체 산업 등에 노골적인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무역기구(WTO)의 기능 부실화,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 등이 국제적 협조체제를 어렵게 하고 있으며, 국제질서의 안정화를 위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해 왔던 미국의 역할이 각 분야에서 후퇴하고 있다. 이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성에도 영향을 주면서 국제 금 가격의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내각부는 금년 1월 17일에 공표한 보고서 ‘지향해야 할 미래 사회상과 국가의 바람직한 상태(目指すべき未来社会像と国家の在り方)’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후퇴와 국제협조체제의 약체화 속에서 다극화된 세계경제 구조가 지배적인 상황이 되고 기후 위기 등 세계적인 과제에 대한 대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그리고 앞으로 국가전략을 모색하면서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Well-being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국가 본연의 방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일본이 기후변화 등 글로벌 과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고민은 국제질서를 안정화시키는 각종 제도가 약해지는 가운데 일본도 우호국과 협력하면서 국제질서의 안정화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본의 방향 고민은 일본경제의 상대적 지위가 중국, 인도 등에 비해 약화되는 어려운 미래 환경을 고려할 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국가정책도 고민하는 싱크탱크인 PHP연구소는 작년 말에 발간한 보고서(국제질서와 일본의 좌표 축, PHP연구소, 2024.12.)는 향후 일본의 국력 순위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력의 질과 사용 방법을 개선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대국 간 질서를 보완하고 국제 공공질서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함으로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파워 구조의 변화와 주요국의 외교 행동, 다양한 국제 위기와 현대 사회의 취약성에 직면하더라도 방향성을 잃지 않고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PHP 연구소의 보고서는 일본의 외교 전략은 자체 노력과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국제 공공재를 강화하여 세계를 보다 안정화시키는 방향을 또 다른 축으로 제시하였다. 일본은 다양한 제약 조건을 고려할 때 일국주의를 선택할 여지가 없으며, 평화와 번영,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실현하기 위해 다자간 협력과 개방적인 국제 환경을 중시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일본의 우위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립하고 국제적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발상과 실천이 필요하며, 인구 감소와 도쿄 집중화에 따른 국가적인 리스크를 완화하고 국가의 형태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세계 속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고 행동의 자유를 넓히기 위한 기개가 필요하며, 자유롭고 진지한 논의가 시대에 맞는 국민정신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 방향에 대한 고민은 미중 패권전이 장기간 지속될 전망 속에서 세계의 질서, 공조체제가 약화되면서 경제적 충격과 함께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충돌 등의 발생 가능성 및 시나리오를 검토한 위에서 나온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장경제는 19세기에 세계경제권의 형성을 통해서 구미 각국에서 성립했다고 할 수 있으며, 영국, 미국 등 패권국이 국제질서를 안정화시키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행 과정에서는 리더십의 부재,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세계대전, 대공황 등의 시스템 붕괴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의 미중 패권전도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엄 앨리슨이 지적하는 투큐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와 신흥 부상국인 아테나이의 충돌에서 도출된 말로 종래의 패권 국가와 대두하는 신흥국은 결국 전쟁이 불가피한 상태까지 충돌하는 현상을 가리킨다)에 따르면 미중 충돌의 가능성이 높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세계경제는 이미 패권 시대 이후를 바라보고 있으며, 미중 양대 세력의 영향력도 제한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EU경제권의 유지, 한국이나 일본 등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들도 있다. 중국의 추격도 경제 및 무역 규모 이외의 문화적 측면, 정통성, 국제통화, 글로벌 금융중개 기능 등의 측면에서는 한정적이며, 중국 국가시스템상 금융 등의 시장개방이 원천적으로 어렵고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에 한계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이러한 다극체제의 강화 추세를 바라보면서 아시아 역내 경제협력 등을 통해 자유무역 체제의 유지 및 확대와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중견국가 등과의 파트너십의 강화를 통해 국제질서의 안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무역의 가치를 유지하는 미들파워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에 주력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보호주의 확산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위축과 일본경제의 충격을 억제하는 등 중장기적인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자유무역의 가치를 유지하는 국가들과의 연계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PHP 보고서는 미국의 역할이 약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부담감을 완화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의 혼란을 흡수하고 국제질서의 평화적 기능과 자유롭고 열린 국제환경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공유하고 냉전기부터 다각적인 협력 관행을 키워온 미들파워 국가들과의 파트너십 강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EU 각국, 영국, 한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가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시에 경제, 산업기술, 군사적 능력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상위에 위치하고, 국제질서 구축 및 규범 형성에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라는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 미들파워 국가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본과 이들 국가 사이에서는 G7을 비롯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국제에너지기관(IEA) 등 오랫동안 제도화되어 온 협력 메커니즘과 양국간 협력 틀을 통해 다층적으로 정책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이 모색하는 이러한 미들파워 국가 연대는 중국 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미국과 공조하면서 미국의 국제공공재 후퇴 효과를 완화하려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국국제개발국(USAID)의 기능 마비 및 원조 감축으로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각국의 의료 시스템 붕괴 등 사회 인프라에 타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각국간 협조 강화도 중요한 시점이다.
사실, 일본정부는 최근 영국과의 제휴 관계를 강화하여 일본이 맹주국으로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연대협정(TPP)에 영국이 가입할 것을 허락했으며, 양국 정부는 지난 3월 7일에는 경제 관계 2+2(외교장관, 경제산업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는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 영국 양국은 계속해서 자유롭고 공정한 규칙에 기초한 국제경제질서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해 같이 행동하겠다고 합의했다.
이상과 같은 일본의 국제질서의 향방에 대한 고민과 대응은 우리가 중장기적인 세계 정치 및 경제 환경을 고려할 때 참고가 될 수 있다. 또한 역사문제로 어려움이 있는 한일 관계를 극복하면서 한일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과제도 있다. 국제질서에 대한 비전과 지켜야 할 규범, 정세 인식을 큰 틀에서 한일간에서 공유하면서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워지는 국제정세에서 국제적 고립을 피하고 연대전략을 강화하면서 강대국의 횡포에 대한 방어막을 이중, 삼중으로 구축해 나가는 대비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로서는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 글로벌 사우스, EU 각국 등과 연대하여 국제질서, 국제공공재를 보강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협력을 바탕으로 동남아를 포함한 지역의 협력체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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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20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1일 1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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