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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수의 디자인 시선 <15> “스토리 기반 도시 브랜딩 전략“: 도시 브랜딩은 각개전투가 아닌 전면전을 펼쳐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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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4월23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거수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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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명칭, 캐릭터, 공사판 가림막에 이어, 이번 칼럼에서는 ‘스토리’를 활용한 도시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 브랜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가장 기본이자 전통적인 방식이다. 관광 산업이 발달한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의 주요 도시들 대부분은 저마다 그 도시 고유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를 건축물, 상품, 기념물, 공공디자인 등 곳곳에 일관된 아이덴티티로 담아내며 도시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확장해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의 도시 브랜딩은 지속성과 확장성이 뒷받침 되지 못한 채 피상적인 방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종종 연예인이 다녀간 식당, 방송에 나온 골목, 혹은 유명인이 운영하는 카페 등에 집중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일시적인 관심에 기대어 사라지는 소비형 경험들이 도시와 지역 브랜딩에 어떤 기여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깊이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런류의 경험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그저 일회성 소비로 끝나고, 도시의 영속적 브랜딩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도시 브랜딩 전략은 스토리의 흡입력이 있어야 하고, 경제적 지속성, 문화적 상징성, 글로벌 확장 가능성이라는 네가지 핵심 요건을 갖춘 콘텐츠에서 출발해야한다. 다. 그 중심은 결국 전사적으로 기획된 매력적인 스토리다.

 

밀라노 대성당 & 명품 아케이드 광장에 스토리로 화룡점정, 밀라노의 황소 타일

인상 깊게 필자가 경험한 사례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마주한 밀라노 대성당과 그 주변의 공간 구성에서 비롯된 깨달음이었다. 

 

고딕 양식의 화려한 극치 밀라노 대성당은 그 자체로도 압도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대성당을 정면에 두고 좌측으로 펼쳐지는 공간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II세 갤러리(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아케이드가 이어진다. 이곳은 루이비통, 프라다, 구찌와 같은 명품 브랜드 본사들이 밀집해 있는 고급 상업 공간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관광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고급 상업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공간 브랜딩의 화룡점정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던 장치는 다름 아닌 작고 상징적인 ‘황소 타일’이었다.

 

아케이드 내부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닥 중앙에 작은 황소 모자이크 타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주위엔 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황소 꼬리 움푹 파인 부분에 발뒤꿈치를 넣고 세 번 돌면 행운이 온다’는 스토리를 통해 관광객의 참여와 흥미로운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타일이 마모되어 매년 3차례 보수공사를 할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즐거운 명소라고 했다. 사실 3차례 보수공사를 한다는 것도 이곳을 인기를 방증하는 확장된 스토리라 생각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이처럼 ‘스토리의 힘’은 반복되는 물리적 손상조차 관광 콘텐츠로 바꾸는 놀라운 가능성을 지닌다. 누군가는 그 보수비를 아까워할지 모르지만, 보수를 한다는 스토리 자체가 이 스토리에 대한 확장 된 경험이자 에피소드가 된다. 그만큼 스토리의 힘은 크다.

 

밀라노 대성당이라는 압도적 랜드마크, 비토리오 엠마누엘 II세 갤러리 아케이드의 건축미, 명품 본사 브랜드가 주는 고급 이미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스토리 조각이 절묘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하나의 전면적 브랜딩 체험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의 손,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스토리의 힘, 도시 전체를 스토리로 엮어낸 ‘안트베르펜의 손’ 이야기

이전 칼럼에서 ‘베토벤’을 활용한 도시 브랜딩 사례를 다룬 이후, 필자의 수업을 듣는 홍익때학교 대학원생 배준영 씨로부터 공감 어린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여행하며 마주한 도시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감명을 받았고, “도시의 정신과 전설이 실생활의 디자인, 상품, 철학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 숨 쉬는 이 스토리 브랜딩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해왔다. 그 학생은 여행 중 도시 곳곳에서 ‘손’의 형상이 반복적으로 마주쳤던 것을 보며 처음엔 단순한 장식쯤으로 여겼지만, 곧 그것이 도시의 브랜딩을 위한 연결된 깊은 스토리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이 도시의 영어식 이름인 ‘앤트워프(Antwerp)’는 고대 네덜란드어의 ‘hand werpen(손을 던지다)’에서 유래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셀트강을 지배하던 거인이 통행세를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자들의 손을 잘라 강에 던졌고, ‘브라보’라는 병사가 그 거인을 무찌른 뒤 그의 손을 잘라 강에 던짐으로써 도시를 해방 시켰다고 전해진다. 이 스토리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손’이라는 상징을 자유와 저항의 표상으로 승화 시켰고, 오늘날까지 앤트워프 시민들의 자부심으로 남게 되었다.

 

이 스토리에서 핵심은 도시의 여러 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손 모양의 초콜릿(‘Antwerpse Handjes’)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지역 기념품으로 제작되었고, 과자를 비롯한 다양한 기념품으로 상품화되었다. 도시 내 상점이나 공공공간에서는 손 모양의 조형물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앤트워프에 기반을 둔 고급 시계 브랜드 Ressence(리상스)는 ‘시곗바늘(hands)이 없는 시계’라는 독창적인 콘셉트를 통해, ‘잘린 손’이라는 도시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고유의 브랜드 스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안트베르펜은 하나의 스토리를 도시의 상품, 기념품, 공간, 심지어 철학적 상징에 이르기까지 각개 전투가 아닌 전면적으로 엮어서 브랜딩한 우리에게 의미있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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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어상과 큰 스토리의 교훈

필자는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 중 덴마크 코펜하겐 해안에서 인어공주 동상을 직접 마주하고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기대와는 달리 인어공주 동상은 너무 작고 소박했으며, 그 존재 자체가 무색할 만큼 단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와 곱씹으며 깨달은 것은, 그 인어공주 동상이 어린 시절부터 동화책과 미디어 속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수십 년간 꾸준히 각인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짧은 스토리 하나가 수십 년 동안 한 도시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기억되고, 대상을 상상속에 이미지화 된다는 것,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된다는 것, 나아가 관광의 동기가 되며 그 스토리의 공간과 도시, 국가까지 심리적으로 친근한 파트너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것, 강력한 마케팅 도구이며,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와 효과를 창출하는 매우 경제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자 스토리 브랜딩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큰 교훈이었다.

교훈이 귀한 이유는 그 교훈이 어떤 대상에 대한 실현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교훈 앞에 무엇을 해야할까? 

 

과연 우리 도시에는 인어공주를 능가할 소재가 정말 없을까? 

이제는 스스로 한번 진지하게 물어볼 때다. 목포(갓바위), 남원(이도령과 성춘향), 안동(양반탈), 수원(화성, 정약용) 이런 도시들은 오히려 덴카크의 인어공주보다 더 깊고 강력한 역사적 스토리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관된 브랜딩 전략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주의 ‘영주 도령’처럼 귀엽지도, 공감도 되지 않는 표면적 캐릭터가 아니라, 개혁과 도전의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인 정도전을 전면적인 스토리 브랜딩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기업이든 정치든 때만 되면 매번 개혁 얘기하지 않나? 뒀다가 사극 속 등장인물로만 쓰려고 아껴두고 있는 것인가? 지금처럼 뮤지컬 몇 편, 강당에서의 강연, 방송 프로그램 몇 회로는 브랜딩의 지속성과 파급력을 확보할 수 없다.

 

안트베르펜의 사례는 곧 목포와 남원, 영주같은 도시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스토리를 단순히 콘텐츠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좋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으로 출시하고, 감성적인 공산품으로 개발하고, 그리고 도시의 상징적 기념품으로 세련되게 스토리를 실체화하고 일상화시켜야만 그 도시가 움직이고, 이야기가 확장되며 매력적인 브랜딩이 가능하지 않을까?

 

부산의 장영실은 과연 충분한가?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자, 발명가로 교과서에 칭송한다고 해서 요즘 학생들이 과연 그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 교과서 혹시 외국 관광객들도 보는가? 수원 화성은 그저 높고 큰 기와집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해마다 반복되는 보도블록 재시공과 멀쩡한 도로 포장을 마치 행정의 성과인 양 당연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한 반복적 행정 속에서 도시는 과연 진정한 브랜딩 자산을 축적하고 있는가?

 

단기적인 예산 집행에 따른 일시적 안도감과 자기 위안에 머무르며, 오히려 도시의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정체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이 과연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올바른 전략인가?“

 

"왜 우리 지역의 도시 인지도는 늘 부족하고, 발전과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을까?"를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이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하지 않았을 뿐’이다. 

스토리로 도시를 설계하고, 사람과 공간, 상품이 하나의 스토리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면적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들어야 하며,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결과를 기대할 것인지에 대한 통시적 관점에서의 기획과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 체계성, 그리고 전략적 통합성이다. 이제 도시 브랜딩은 ‘각개전투’로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전면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면전이 답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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