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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뒤흔드는 세계경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4월2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21일 16시22분

작성자

  • 김흥종
  •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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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임기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 동안 전 세계는 트럼프 정부의 공세적 관세정책으로 인해 폭풍과도 같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은 말이라는 관세(tariff)를 모든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는 트럼프대통령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 기간이었다. 지금 세계 각국은 4월 5일에 부과한 10% 기본관세, 3월 12일에 시작한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의 품목별 관세와 4월 3일 자동차 품목관세, 그리고 중국을 제외하고 83개국에게 적용되고, 마침 7월 8일까지 90일간 유예된 소위 상호관세 11~50%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예정되어 있다. 모두들 워싱턴 DC로 달려가서 상호관세를 낮추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하느라 바쁜 모양새다. 일본, 한국, 인도, 호주, 그리고 영국이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되었다. 

회색코뿔소(gray rhino)라고 했던가. 우선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작년 가을부터 유력시되었다. 필자도 작년 9월 이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 1기를 통해서, 그리고 바이든 정부 4년 동안 그의 주장들, 그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경제학자들의 수많은 글을 통해서 고율관세 부과를 통한 세계경제에의 충격이라는 시나리오는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상됐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당으로 변신을 끝낸 상황이고, 상하원이 모두 공화당 다수당으로 되는 것도 선거 전부터 유력시 되었다. 중간선거가 내년 말이라는 시한을 고려해 본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자신의 대외정책을 온전히 구사할 수 있는 시간은 올해정도라고 볼 때 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예상되었다. 그렇다. 그의 전격전은 충분히 예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고율관세정책이 전 세계를 상대로, 또 중국에 대해 145%라는 말도 안되는 추가관세가 부과되자 세계경제는 큰 충격에 빠졌다. 세계 경제는 회복 국면에서 다시 침체로 미끌어지고 있으며, 선진국 중 나홀로 성장하던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고, 더 나빠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예견된 충격은 예상보다 더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도대체 그는 왜 이러는 것일까.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이해하려면 그와 그의 참모들, 트럼프주의자들이 2차 대전이후 세계질서와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그 방향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트럼프대통령은 여러 차례 다른 나라들이 그동안 미국을 속여서 벗겨먹었다(rip off)고 주장해왔다. 점잖은 표현은 아니지만 이 것 만큼 그의 생각을 잘 드러내는 말은 없다. 지난 80년 동안 규칙기반의 자유주의 질서를 통해 세계 각국, 특히 우방국은 미국시장에 대한 특혜적 접근권을 무상으로 누렸는데도 미국은 엄청난 돈을 써가며 이 나라들의 안보를 책임져 주었다고 본다. 유럽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고, 또 한국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존질서의 최대의 수혜자이면서 항상 기술을 훔쳐서 미국의 뒤통수를 치는 중국은 반드시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된다. 

관세전쟁과 관련하여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의 발언을 보면 국가 간의 관계를 보는 기본 시각이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국가 간에 호혜와 평등의 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마치 중세 동아시아에서와 같이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순응하는 주종관계가 지배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기본 인식하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질서를 재편하려는 정교한 전략적 시도를 하는데, 여기서 미국의 핵심적 딜레마, 즉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키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상호 모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전략이 있다. 처음에 진행시켜야 할 최우선 과제는 공세적 관세정책을 통한 기존무역질서 흔들기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의 수입시장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주의자들에게 관세는 단순한 무역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국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강력한 지렛대이자 전략적 수단이 된다. 관세를 통해서 세계 무역에서 당연시되던 관행을 몰아내고, 각국의 서열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등장하는 계획은 전 세계 관세 체계의 급진적 조정, 세계 각국을 마치 신호등과 같이 녹색, 황색, 그리고 적색의 세 집단으로 나눠 분류하는 분류체계, 그리고 브레튼우즈 체제에 상응하는 새로운 ‘마라라고 협정(Mar-a-Lago Accords)’의 추진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반드시 거쳐야 할 1단계 작업이자 세계경제 재구조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각국이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안보 질서에 편입될 때 위험과 보상을 전략적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전략적 의사결정 매트릭스도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미국 트럼프 정부가 구상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뒷받침하는 나라들은 녹색집단에 속하게 되는데, 영국과 일부 서유럽 국가들을 비롯하여 일본과 한국, 호주 등은 열심히 노력하여 이 그룹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국가 중 최대 경제력을 갖고 있는 독일의 경우다. 독일은 미국의 정책에 대해서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경제구조와 지정학적 모호성이 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된다. 중국과 이란은 지금 추세로 간다면 미국의 응징대상이 될 것이다.  

마라라고 합의에 대해서는 마치 플라자합의와 같이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상대국과의 무역 및 환율에 관한 합의라고 이해된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그 내용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스티브 미란이 자세히 언급해 놓았듯이 미국이 지금까지 제공했고 앞으로도 제공할 안보와 질서 유지라는 공공재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하라는 것이다. 관세를 그대로 맞고 비용을 지불하던가, 수입을 더 늘리던가, 방위비를 더 부담하던가, 수출산업을 미국으로 옮겨 현지생산으로 전환하던가, 그리고 놀랍게도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미국 재무성에 수표로 비용을 지불하라고 한다. 국가별로 어떻게 지불할 것인지를 자세히 합의하는 것이 마라라고 합의라고 보면 된다. 

트럼프 정부에 적대적인 언론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고 우호적인 인터넷 언론사에게 출입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질문의 우선권을 주는 등 기자실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래빗(Karoline Leavitt)은 종종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There’s a new sheriff in town)”는 말을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니 바뀐 현실을 빨리 깨닫고 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취지다. 이는 기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와 캐나다 등 이웃나라들, 이란과 후티 반군을 포함한 악당들, 그리고 우방국에게도 모두 해당된다.

래빗대변인의 비유에 따라서 트럼프 대외경제정책의 모습을 그려보면 상황이 보다 명료해진다. 마을의 새 보안관은 과거 보안관이 약속한 모든 것은 휴지조각같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새 보안관이 만든 질서만이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법이다. 그러니,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이나 전 정부와 합의한 방위비, 자유무역이라는 철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시의 대상이 된다. 보통의 보안관이라면 마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본연의 임무가 되겠지만, 새로 온 보안관 자신의 사업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보안관이 경영하는 사업체와의 거래나 보안관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무상으로 누릴 수는 없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과 가게들은 보안관에게 달려와서 보호비를 내야 한다. 그래야 보안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거부하면 가혹한 보복이 따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라라고 합의는 보호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절차가 된다.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와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 그것이 합리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기준이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비관세장벽 상당치를 어떻게 도출했는가, FTA로 무관세인데 왜 25%인가, 부가세와 국내규제를 어떻게 관세로 환산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초첨에서 벗어난다. 의도는 명백하다. 지금까지 미국의 상대국들은 미국을 이용하면서 무임승차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무임승차한 비용도 지불하고 앞으로 누릴 공공재에 대해서도 비용을 확실히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 국제질서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리는 세계가 이런 모습이라고 해서 이것을 주어진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세계무역기구가 지향하는 규칙기반 자유무역질서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지속적 번영을 위해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가 미국과 맺고 있는 특혜무역협정인 한미 FTA의 틀 속에서 모든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국을 유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FTA 협상의 틀은 상호 호혜의 원칙하에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상품양허에 관한 합의뿐만 아니라 비관세조치, 무역원활화, 서비스, 투자, 지재권, 정부조달 등 다양한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서둘러 달려가 선물보따리를 풀어놓고 선처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동안 한미동맹으로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고 미국과 우리는 혈맹이라고 강조하는 언급도 자제해야 한다. 계산서에 비용만 더 청구될 뿐이다. 결국은 서두르지 않으면서 우리가 제시할 카드를 준비하고 실전에 가서는 관세를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없는 세계를 상정해 보면서 유럽, 일본, 여타 국가들과 경제적 연대와 통합을 가속화하여 시장의 규모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확대하는 상호의존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EU와의 연대, CPTPP, 한중일 FTA, 한일FTA, RCEP 강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시장 확대 전략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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