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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체제의 종말과 한국의 새로운 통상전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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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3월31일 15시25분

작성자

  • 허 정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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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들어가며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말이 다소 진부하게 들리긴 하지만 이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수출”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경제전문 용어가 아니고 하나의 가치가 된 듯하다. 산업화 시대에 수출 주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국민 모두가 공통으로 경험하였고, 현재 경제규모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소국개방형 거시경제구조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수출의 성과는 여전히 국민경제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우리에게 지난 10년간 두 가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자주의 자유무역체제의 종말과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의 등장이다. 한마디로, 무역 전쟁 중이다.

 

다자주의 자유무역체제 종말

 

자유무역체제에 되돌리기 힘든 균열이 발생한 것은 2015~2016년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는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통상장관회의에서 WTO 폐기를 공언하였고,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환태평양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TPP)을 탈퇴했다. 세계 제1 경제대국인 미국이 2015년과 2016년 연이어 자유무역체제 폐기와 탈퇴를 선언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1년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허용하여 시장경제로 편입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중국이라는 초거대시장이 열리면서 세계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중국에 투자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이 중국기업들에게 탈취 혹은 불합리하게 이전되는 현상이 관찰되었고, 동시에 대중 무역적자 누적 및 일자리 감소를 오랫동안 경험한 바 있다. 특히 후자의 현상을 국제경제학계에서는 ‘차이나 신드롬(China Syndrome)’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2010년대 내내 미국, 유럽, 일본, 심지어 한국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관찰한 실증연구들이 학술지에 보고되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통상 환경하에, 2015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WTO에 의한 국제통상규범만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 행정부 직속 기관인 USTR의 대표가 WTO 폐기를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그나마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TPP였다. 하지만, 2016년 트럼프 행정부가 소위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TPP마저 탈퇴했던 것이다. TPP는 미국이 탈퇴한 후 일본 주도의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으로 이름이 바뀌고 11개국이 참여하는 기술과 지적재산권 규범을 강화시킨 첨단산업 지향형 자유무역협정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WTO는 회원국들 간의 무역분쟁조정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며 각국이 차별적인 산업보호정책을 취해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주요 경제정책 방향

 

2016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세계통상질서의 한복판에 등장하게 되었고,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도 경제안보적 관점에서 자원, 기술, 노동, 산업을 보호해온 지 이미 10년이 지났다.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2025년 2기 행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밀고 있는 경제정책 방향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쟁력 강화와 소비 증대를 위해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를 고율의 수입관세와 해외영업 기업 과세로 보완하려고 하지만 부족할 것이다. 둘째, 통화정책에서는 연준의 의지보다 빠른 금리인하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로 연준은 그러한 압력에 속도를 맞추기 어려운 상태이다. 셋째, 산업 측면에서는 화석에너지 생산 증대와 친환경산업 축소 방향으로 진행된다. 화석에너지 공급은 미국내 인플레이션을 누르려는 목적이 있으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의 보조금 축소는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겠지만 시장잠재력을 고려한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통상분야에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자국 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 주요 수입품목에 부과하는 고율의 보편관세와 수출국가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통해수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대미 우회수출에 대한 규제도 적극 추진할 전망이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조업 부활을 위한 강력한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수단으로 관세정책이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효과

 

미국의 고관세가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다양한 관세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 최악의 경우 큰 폭의 총수출 감소를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투자·고용·소득·소비 감소로 내수 침체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과연 어떻게 될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태양광·세탁기·철강·알루미늄 4개 품목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특정 품목이 아닌 다양한 수입품에 보편관세를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철강, 알루미늄과 더불어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 주요 수출품에 고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또한 관세 부과 대상국을 중국에 한정했던 1기 행정부와 달리, 캐나다·멕시코·EU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무역적자 상위국인데 그런 관점에서 향후 한국·일본·베트남도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최근 불법이민자추방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고 국방비 분담금 이슈까지 있어 미국과의 협상 시 많은 카드(비관세장벽 철폐와 수입시장 개방 등)를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1기 행정부와 다른 특징은, 이번 2기 행정부는 기존의 FTA를 재협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조치를 시행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60~70년대에 만들어진 무역법(Trade Act), 무역 확장법(Trade Expansion Act), 그리고 국제비상경제권환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근거하여 기존 FTA협정을 패싱하고 있다. 또한, 보편관세라는 생소하고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고 관세율도 2.5~20% 정도로 높은 변동폭을 보이며, 관세정책 시행을 사전에 기한을 두고 발표하거나 기발표된 정책을 갑자기 유예하는 등, 소위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의 투자·고용·기술개발 계획에 차질을 주고 경영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요컨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수출 감소 예상이 단순추정에 그치지 않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나가며

 

2018년 한국 수출은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으나, 2018~2019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 1기의 미중 관세정책 이후 2020년 5,124억달러로 15.3% 감소했다. 2024년 다시 한국 총수출은 6,838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세계 6위로 기록되었지만, 향후 1~2년간 수출 감소는 사실 정해진 미래가 아닌가 한다. 현재 우리는 신산업 육성과 수출시장 확대를 목표로 하는 제2의 산업화 시대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출 품목과 시장 다변화를 통한 시장 확대뿐만 아니라, 동시에 첨단산업 기술개발에 적극 재정을 투자하고, 에너지·광물자원 확보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및 기술안보 등 강력한 산업정책이 요구되는 때이다. <KIPF>

 

<ifsPOST>

 ※ 이 글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KIPF)이 발간한 [재정포럼 2025. March. vol.345] 권두칼럼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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