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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말부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전은 많은 관객이 몰리며 관심이 높다. 잘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두 작가가 중심이 된 빈분리파 운동을 중심으로 한 1900년대 비엔나의 문화적 상황을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들과는 달리 정작 그 문화적 환경은 우리에겐 조금은 생소하다.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레오폴드(Leopold) 미술관의 소장품을 가져온 것인데, 전시의 이름으로 삼은 ‘비엔나 1900’은 레오폴드 미술관 상설 전시의 한 파트이기도 하다. 안과의사이며 미술 컬렉터인 루돌프 레오폴드는 특히 에곤 실레 작품의 진가를 일찍부터 알아본 인물이다. 레오폴드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곤 실레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실 에곤 실레의 작품의 퇴폐적 성향 때문에 일반에겐 다소 부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천재 화가로서의 가치를 확인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00년 초반 빈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로 파리와 함께 유럽의 문화 수도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제국은 독일계, 헝가리계, 체코계, 폴란드계, 세르비아계 등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였다. 합스부르크가의 황제가 통치하면서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빈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으로 다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변혁이 도래하고 있었다. 빈은 경제적으로 번영하면서 문화 예술 분야의 후원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빈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역량이 집결된 제국의 수도로서 전통과 혁신이 충돌하며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등장한 문화적 황금기를 형성하였다.
미술과 디자인 영역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전통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예술가들이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또한 예술과 공예의 결합을 목표로 한 디자인 운동으로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호프만에 의해 주도된 ‘빈 공방’ 역시 활성화되었다. 음악과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하우스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극장을 이끌었고, 전통적인 조성을 벗어난 무조음악을 실험하며 현대음악의 초석을 다진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활동했다. 철학과 문학 분야에서는 논리실증주의를 발전시킨 비엔나 학파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빈은 이렇듯 유럽 문화와 학문의 한 시대를 풍미하던 풍요의 도시였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의 이면에는 민족주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었으며, 특히 체코, 폴란드, 남슬라브 민족들의 독립 요구가 강해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의회와 민족주의 운동의 압력이 커지면서 점점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산업화와 경제적 발전 속에서도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 문제는 심각했으며,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하고 있었다. 전통과 혁신이 또 다양성이 충돌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는 세기말적 상황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러한 황금기의 풍요로움과 세기말적 양상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를 선도한 화가는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대표작 <키스>(1907-08),<유디트 I>(1901),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1907)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황금과 금박을 사용한 화려한 색채감이 두드러지며, 일본 판화와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영향을 받아 장식적이고 이국적인 요소를 결합했다. 패턴과 장식이 인물의 육체와 대비되면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작품과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미를 찬양하였다. 빈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1897년 ‘빈분리파(Secession)’를 결성하여 반(反)아카데미즘 운동을 주도하며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빈 대학의 천정화인 <의학>,<법학>,<철학>을 의뢰받고 그린 그림이 전통적 표현과 달리 여성의 누드를 그린 결과, ‘춘화’나 ‘변태성욕자의 무절제’라는 악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작품을 철수하면서까지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등 아카데미즘에 맞서 싸운 것으로 유명하다. 클림트는 여성의 육체미를 찬미하며 관능적인 자세와 도발적인 시선을 강조했다. 여성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마치 신화 속 여신이나 팜므파탈(Femme Fatale)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제자뻘 되는 한세대 후배이지만 클림트는 자신의 시대가 가고 에곤 실레의 시대가 되었다고 할 정도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클림트는 그의 멘토가 되어주었고 그를 미술계의 인맥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두 작가는 서로 존중하며 <분리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빈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 배울 게 없다고 중퇴한 실레를 끝까지 돌보아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돌프 히틀러가 세 번이나 빈 아카데미 입학에 낙방한 일화와는 대조를 이룬다. 어쨌든 그의 천재성은 공인된 것이었다. 그 역시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성애적 주제를 다룬다. 클림트가 ‘생명력과 관능성’을 주제로 했다면, 실레는 이에 ‘죽음과 고독’을 추가하여 더욱 극단적인 표현을 탐구했다. 그는 성적인 주제와 인간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애적 표현은 당시 빈의 ‘데카당스(퇴폐적)’ 문화와 맞물려 성(性)에 대한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를 가진 것이다. 당시 유럽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등장하며 성(性)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기였고 무의식과 욕망의 개념이 예술과 문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던 점과 접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성애는 에로스의 차원을 넘어선다. 에로스이면서 동시에 타나토스를 다룬다. 20대 초반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외설스러운 드로잉 사건으로 체포된 적도 있고, 자신의 누드 자화상이나 치마나 스타킹을 걷어 올리고 있는 여성들을 주로 그리면서 변태적 성욕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다룬 성의 문제는 생명의 탄생과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는 화두라고 할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철도원으로 그의 가정은 중산층의 가정이었지만 매독에 걸린 아버지가 뇌에 이상이 생겨 사망한 경험을 가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유럽은 성도덕이 문란하여 많은 사람이 매독에 걸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많았다. 슈베르트, 마네, 고갱, 보들레르 등 많은 예술가들도 매독의 희생자들이다.
그의 아버지의 죽음은 에곤 실레에겐 무거운 트라우마였다. 그의 누드 자화상을 보면 시체처럼 피부의 색이 검고 뼈만 남은 사지에 팔다리가 잘린 형상이 자주 발견되는데, 그 트라우마의 표현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매우 날카롭고 불안정한 선을 사용하여 인체의 왜곡된 형태를 강조며, 인물들은 길쭉하거나 비틀어진 형태로 내면의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수많은 자화상은 자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신체와 감정을 해부하는 듯한 표현 방식을 취한다. 모델들로 대개 앙상한 몸매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표현된다. 손가락이 과장되게 표현되며 관절이 강조된 기괴한 포즈가 많다. 피부색은 병적으로 창백함을 띠어 생명력보다는 고독과 불안을 암시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1900년대 빈은 표면적으로는 제국의 수도로서 최고의 문화를 누리던 황금기였지만, 이면적으로는 사회적 불안과 매독이나 독감과 같은 유행병과 마주한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하던 세기말의 혼돈기였다. 전통과 혁신의 충돌과 다민족의 다양한 문화적 융합은 숱한 천재들을 탄생시켰고 새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사유와 예술적 실험이 수행되었다. 기존의 도덕과 체제가 붕괴하여 가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꿈꾸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시절이었다. 불행히도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당대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으로 희생되었다. 뒤이어 벌어진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그들의 꿈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던 소망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아름답게 소생하였다. 우리 시대 예술가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ifsPOST>
- 기사입력 2025년02월17일 16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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