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국의 문화전망대 < 8 > “오래 살지 않아도 좋아요, 잠시 머물러만 주세요” -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문화의 역할 (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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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까지 위협하는 인구소멸 위기
저출생 고령화와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로 지역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면서 지역소멸 위기가 커지고 있다. 성장동력 약화에 따른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인구가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다시 생산인구 감소로 지방재정은 고갈되어 지역소멸 위기는 더욱 높아진다. 최근에는 부산 대구 대전 등 광역시까지 인구소멸 위험에 처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최근 연구분석에 따르면, 제2의 도시인 부산이 저출생 초고령화로 광역시 가운데 처음 '소멸 위험단계'에 들어섰다. 부산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0%를 기록해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소멸 위험지역에 새로 진입한 11개 시군구 중 8개가 광역시에 소재했다. 해당 구·군은 부산 북구·사상구·해운대구·동래구, 대구 동구, 대전 중구·동구, 울산 울주군이었다. 나머지 3곳은 전남 목포시·무안군, 충북 증평군이었다.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에서는 전남의 소멸위험도가 가장 높았다.
인구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생활인구’ 개념 도입과 제도화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빠져든 지방자치단체들은 당초 거액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출생·육아 지원정책을 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 대도시로 떠났던 청년들을 돌아오게 하는 등의 직접적인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효과를 보지 못하자 행정안전부(행안부) 등 정부와 관계기관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정책이 바로 ‘생활인구’ 개념 도입이었다. 2023년 1월부터 시행한 ‘인구감소 지역 지원 특별법’에 포함된 생활인구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① ‘주민등록법’에 따라 주민으로 등록한 사람 ②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정기적 교류 등의 목적으로 특정 지역을 방문해 체류(하루 3시간 이상 월 1회 이상)하는 사람 ③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외국인등록을 한 사람이다. 이를테면, 주민등록상의 정주(定住) 인구를 늘리는 것은 어렵더라도 직장이나 관광, 휴양, 통학 등을 위해 일시 방문하는 유동 인구는 늘어나는 시대 추세를 감안해 생활인구를 도입한 것이다. 지역에 주소를 둔 사람 못지않게 자주 왕래하는 생활인구는 소비를 통해 숙박 식당 가게의 매출을 올려주는 등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역민이 수도권 주민에게 “오래 살지 않아도 좋아요, 잠시 머물러만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행안부는 아울러 충북 단양군 등 7개 인구 감소지역을 선정해 2023년 4~6월 생활인구를 산정 발표했다. 여기에는 행안부의 주민등록정보, 법무부의 외국인등록·국내거소신고 정보와 통신 3사의 이동통신 정보가 활용됐다. 그 결과, 단양군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다양한 레저활동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으로 밝혀졌다. 인구 3만 명이 못 미치는 이곳에 주민등록인구의 9배에 가까운 25만 명의 생활인구가 실제 체류하는 것으로 산정되었다.
체류 인구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50~60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수도권의 도시들에서 많이 방문했다. 단양군은 이를 고려해 향후 건강체험·힐링푸드 등 중장년 맞춤형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한편, 체류 인구 대부분이 당일 또는 1박2일 지역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야간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온천형 숙박시설을 확충하는 등 수요자 맞춤 체류형 관광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행안부는 향후 89개 인구감소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이같이 생활인구를 산정해 지자체에 제공함으로써 생활인구 유치 사업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신용카드사의 소비데이터를 추가 연계해 소비업종 및 금액 등을 통해 생활인구 특성을 세분화해 정책활용도를 높일 예정이다. 행안부는 또 생활인구를 근거로 인구감소지역에 행정·재정적 특례를 부여하거나 지방소멸 대응기금 등 국가의 재정지원 기준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이는 생활인구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들은 당분간 생활인구 증대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각 지자체, 생활인구 붙잡기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
전국 각 지자체에서는 현재에도 워케이션, 농촌유학, 치유산업 등 생활인구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남 강진군에서는 농가에 1주일 안팎으로 숙박하며 텃밭 가꾸기, 음식 만들기 등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푸소'(FU-SO· Feeling-UP, Stress-Off)'를 운영해 5만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강원 평창군, 충북 제천시 등 15개 지자체에서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지역 방문객에게 숙박 식음 체험 등 각종 여행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운영 중이다. 강원 평창군에서만 6만 7천여 명이 관광주민증을 발급받아 혜택을 보았다.
생활인구 증진을 위한 문체부의 문화정책
지역소멸은 종합적이고도 복합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이다. 도시계획 산업 일자리 주거 외에 문화예술 면에서도 접점을 찾아 대응하는 정책적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인구 유출을 막고 유입을 늘리는 문화예술의 쓰임새가 커지고 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주민이 내세운 사유 중 ‘문화여가시설 및 서비스 여건 개선’(39.5%)이 ‘양질의 일자리’(37.2%)보다 높게 나타난 사실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지역불평등: 현황과 개선방안 총괄편’, 2021) 문체부는 정주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문화적 정주여건 개선사업으로 △국립예술단의 지역순회 공연을 포함한 ‘방방곡곡 문화공감’ △지역 중심 문화균형발전을 위해 세종 전주 등 전국 13개 도시를 선정한 ‘대한민국 문화도시’ △문화환경 취약지역에 문화 향유 및 문화활동 기회를 확대하는 ‘구석구석 문화배달’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로컬100 (지역의 명소와 콘텐츠, 명인 등 지역문화매력을 알리기 위해 선정한 100곳) △워케이션 (일을 뜻하는 Work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의 합성어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휴가를 즐기는 근무형태) 활성화 등을 펼치고 있다.
지역문화 전문인력의 역량 강화가 중요
부산연구원 김민경 연구위원은 제36회 문화경제포럼(지난 1월 31일,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 강당)에서 ‘지역소멸과 문화정책’ 발표를 통해 “지역소멸 대응을 위해 문화시설을 비롯해 예술인 예술단체, 지역생활사 및 문화유산 등 지역문화자원을 특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 기초단위의 자원을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획 역량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박물관·미술관의 큐레이터, 도서관 사서, 축제기획자 등 문화전문인력이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특히, 문화기획자들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 수도권 주민을 생활인구로 끌어들일 문화적 이벤트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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