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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내방가사)>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1월2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27일 22시18분

작성자

  • 이정옥
  • 위덕대 명예교수, 전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메타정보

  • 3

본문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세계기록유산(MOW) 프로그램은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물에 대해 인류 공동의 노력을 통해 보존하고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등재하는 프로그램이다. 기록유산이란 전 세계 민족의 집단 기록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사상이나 발견 및 성과의 지화(紙化) 기록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자로 기록된 것이나 이미지 및 기호로 기록된 것, 비문, 시청각 자료, 인터넷 기록물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을 통해 유네스코는 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과 보존의 필요성을 증진하고, 기록유산 사업 진흥 및 신기술의 응용을 통해 가능한 많은 대중이 기록유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MoW) 또는 아태지역 기록유산(MoWCAP)의 등재신청은 유네스코가 만든 일정한 양식에 맞춰, 작성, 제출해야 한다.”1 

세계기록유산(MoW)은 영어 단어 200자 내외, 아태지역 기록유산(MoWCAP)은 영어 단어 100자 내외로 등재신청 기록물에 대한 정의, 현황, 역사, 가치, 보존 등을 요약 제출해야 한다. 또한 공히 다음의 몇 가지로 유산 등재 기준에 부합을 입증해야 한다. 첫째, 유물이 진품이며, 그 실체와 근원지가 정확한 자료인지를 입증해야 한다. 이는 기록물의 정체와 기원에 대한 심사 기준이다. 둘째, 세계적 중요성이다. 해당 기록물의 소멸이나 약화가 전 인류 유산을 빈곤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하며 대체 불가능한 기록물임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오랜 기간 또는 특정 국가를 넘어서까지 지역 문화권에 큰 영향을 미친 기록물이거나 역사상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기록물이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세계사적 중요성이다. 세계적 가치는 시간, 장소, 사람, 대상과 주제, 형태와 양식 측면의 가치를 입증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위 세 가지 요구 조건 외에 추가적으로 희귀성, 완전성, 위협요소의 유무 및 보존 관리 계획의 기재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등재 기준에 따라 2년마다 문화유산청에서 심의를 통해 2개를 선저ꥷᅡ여 신청하고, 최종적으로 국제자문기구(IAC) 총회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여 유네스코에 권고한 후,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최종적으로 등재를 결정한다. 이 기준은 세계기록유산(MoW) 및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 등재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2

내방가사는 위의 등재 기준을 충족하고 그 기록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11월 16일,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 등재되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정확한 등재 제목은 <내방가사>(Naebang-gasa : Song of the Inner Chambers)다. 한국국학진흥원이 69개 문중 및 기탁처로부터 기탁받아 관리하고 있는 221점과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26점 등 총 347점이며 관리기관도 소장처와 같다. 기록물의 유형은 종이에 기록된 필사류 원본으로, 개별 문서, 두루마리(rolling paper), 그리고 책으로 엮은 선장본(codex)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방가사>는 1794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여성들이 공동으로 창작하고 낭송하여 기록한 여성들만의 문학 장르이다. 여성들이 창작하고 직접 필사했던 원본들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내용의 길이와 공유하고 싶은 작품의 수 등으로 인해 그에 맞는 다양한 유형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두루마리본의 경우 10m가 넘는 기록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m가 넘는 형태의 기록물도 있다. 이처럼 <내방가사>는 개인에서 집단 창작의 형태로 넘어갈 때 남길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의 형태적 전형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내방가사>는 통일된 유형이 없는 유일본들로, 직접 붓으로 필사한 원본들이다. 낭송과 필사 등의 재창작 과정을 통해 내용상 유사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이 역시 <내방가사>의 가치를 드러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내방가사>는 18세기에서 20세기, 남성 중심주의가 주류였던 시대, 여성들이 그들의 주요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여 여성들만의 생각과 삶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여성 집단 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20세기 동아시아의 압축적인 역사변혁기에 대한 여성들만의 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처럼 <내방가사>는 18~20세기 여성들의 주체적 활동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시기, 여성들만의 주체적이고 자생적인 활동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더불어 <내방가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문자(한글)로 기록된 문학 장르이다. 한글로만 창작된 문학 장르인 <내방가사>는 창제된 문자가 한국어의 특징에 맞는 문자로 창작되는 문학 장르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방가사>를 통해 우리는 창제된 문자가 어떠한 활용 단계를 거쳐 한 사회의 공식 문자가 되는지 추적할 수 있는 대표적 기록물이다.​3 

 

<내방가사>는 18~20세기 여성 개개인의 주체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단적 문학 활동’을 통해 여성들 스스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한국 사회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자신의 문자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내방가사>를 통해 여성들은 타인의 생각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여성 공동체 스스로 이를 가르치고 교육했던 것이다. 또한 전승의 필요에 따라 입으로 낭송하고, 또 필요에 따라 함께 베끼고 기록하며, 새롭게 내용을 만들어갔던,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집단 창작’의 결과물이다. 어떤 <내방가사>는 사회와 국가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역할과 시대적 사명까지 함께 공유하는 노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방가사>는 한글 서체 미학 관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내방가사>는 낭송, 받아쓰고 베껴 쓰는 과정 등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필사되었다. 이러한 필사는 여성들의 서체 훈련 과정이기도 했고, 서예사 측면에서 다양한 한글 서체로 발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방가사>의 창작 및 필사는 한글 서체 미학의 폭넓은 발전을 불러왔다. 이러한 서체는 여러 종류의 민간 서체 발굴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동시에, 현재 한글의 사용 폭을 넓히기 위한 폰트 개발이나 새로운 디자인에 활용될 수 있는 원형 콘텐츠로서 가능성이 높다.   

 

내방가사의 수집과 출처 문제

기록유산의 등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상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특히 집단기록물의 경우 반드시 모든 기록물을 대상으로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기 기록 문화나 기록물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범위를 정해서 등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등재를 위해서는 대상 기록물의 상하한선을 정해서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4 

2022년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MoWCAP) 등재된 내방가사는 모두 347이다. 이는 모두 한국국학진흥원과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이다. 그런데 학계에 보고된 내방가사의 작품수는 최소 6,000편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등재 준비를 위한 워크숍 과정에서는 2% 남짓 되는 작품수가 대표성을 가지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에 대한 문제 논의가 있었다. 이는 등재 요건 중의 하나인 보존 및 관리 주체의 측면에서 쉽게 해결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전 학계의 내방가사 수집 과정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출처와 소장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내방가사의 익명성과 겹쳐지면서 원본의 진정성에 심대한 오류를 발생하게 한 점에 대한 심각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했던 지점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신청 목록에 오를 내방가사의 시기와 소장처, 필자와 연대의 기준이 책정되었다. 그리고 내방가사 등재 목록에 오를 작품이 선정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등재신청 작품은 69개 문중 및 기탁처로부터 기탁 받아 관리하고 있는 221점이었다.

시기적으로는 1794년부터 ‘쌍벽가’로부터 1960년대 말까지 창작되고 필사된 것들이다. <내방가사>는 낭송과 필사, 의미 비틀기 방식의 창작으로 인해 작가와 시기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내방가사>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작된 것도 많다. 이러한 <내방가사>는 <내방가사> 본래의 특징을 구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유산 등재에 있어 원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등재 신청한 <내방가사>는 소장처가 분명하여 그 기원이 확실하거나, 필자와 연대가 확인된 것, 그리고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연대가 1960년 말까지로 밝혀진 기록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는 <내방가사>가 가진 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대변해 줄 수 있는 기록물들로, 등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모든 <내방가사>의 가치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등재 목록에 포함된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자료들은 내방가사의 활용 측면에서도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한다.  

 

(주석사항)

1. 박순(2019),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에 대한 토론문’,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 한국국학진흥원, 354~356쪽 참조 인용.​

2. 이정옥(2024), ‘내방가사의 기록유산적 가치 및 활용방안’, 제2회 한국국학자대회 발표문, 한국국학진흥원. ​

3. 최은숙((2018), ‘내방가사의 세계적 중요성과 가치’ 내방가사 워크숍 결과보고서 참조.​

4. 한국국학진흥원(2018), 내방가사 워크숍 결과보고서,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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