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국의 문화전망대 < 7 > 매화 향기 흩날리는 정원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 또 하나의 한류 ‘전통문화’의 현대화 방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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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한철의 여섯 폭 병풍 작품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書屋)’을 보노라면…
화면 오른쪽에 큰 매화나무 세 그루가 서 있고, 그 앞쪽으로 초가집과 두 마리의 학이 있다. 초가집을 둘러싼 전경의 둔덕과 왼쪽 기슭에는 수십 그루의 매화나무가 포진해 매화 향기를 흩날리는 듯하다. 초가집 안에는 한 선비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며, 툇마루에는 시자(侍者)가 차를 준비하는 듯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다.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여섯 폭 병풍(가로 1,183cm, 세로 36cm)의 이 그림은 화가 이한철(李漢喆·1808~1893년 이후)의 작품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이다. 철종과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등 당대의 뛰어난 초상화가였던 이한철은 산수도 화조도 등에도 능했다.
이한철의 그림 가운데를 클로즈업한 설날 선물
얼마 전 설날을 맞아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이 이한철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매화 가득한 옛 정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매화가 활짝 피어 매화향 진동하는 산속 풍경에서 차 한잔 마시며 글 읽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부각되어 오래 잊고 있었던 유유자적한 삶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이한철의 매화서옥도로 만든 커피 머그잔과 텀블러가 불러온 여유
내가 받은 선물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인 여섯 폭 병풍의 이한철 그림 가운데 부분을 클로즈업해 만든 텀블러와 머그잔이다. 박물관문화재단이 한 커피 회사와 협업해 선보인 이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신다면 마치 200년 전 조선의 선비처럼 매화꽃 정원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을 누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K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박물관 문화상품 ‘뮷즈’
박물관문화재단은 한국의 문화유산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박물관 문화상품 ‘뮺즈’(뮤지엄+굿즈)를 통해 K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이 사업을 시작했다. 재단은 그 첫 사업으로 선비가 매화꽃 가득한 정원을 바라보며 책 읽고 차 마시는 풍경을 담은 머그와 텀블러, 그리고 그 선비의 방에 놓였을 법한 테이블매트와 족자, 조선을 대표하는 백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구성한 에스프레소 잔 세트와 티팟, 플레이트까지 출시했다. 이러한 다구(茶具)들로 커피를 마신다면 누구나 멋을 아는 우아한 조선의 선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통문화는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한 경제적 자산
박물관문화재단의 커피 다구(茶具) 제작 사례는 ‘전통문화는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자원이지만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다면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한 경제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통문화는 나아가 K팝과 드라마, 영화 등 현대 대중문화 및 문학 미술 등 기초예술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를 높이는 한류의 핵심 분야로 작용할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는 계기로 ‘한류 콘텐츠(대중문화)를 접하고 나서’(31.9%)에 이어 ‘한국 전통문화를 접하고 나서’(28.7%)가 차지한 사실(2023년 4분기 외래관광객 조사)도 이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뮷즈 사랑 … 그러나, 아직도 영세한 전통문화산업의 실상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즐기고 소비하는 흐름도 최근 2030 젊은 세대 사이에 뚜렷하게 부상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뮷즈의 2023년 판매 매출액은 149억 7570만원으로 전년 대비 28%, 2020년 대비 298% 증가했다. 그중 2030의 구매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전통문화 분야의 기업구조나 생산방식이 여전히 영세하고 전체 산업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조사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문체부, 전통문화산업 진흥정책 발표
이에 문체부는 전통문화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종합 정책인 ‘제1차 전통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25~’29)’을 지난해 12월 말에 발표했다. 향후 5년간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및 민간이 함께 전통문화를 고부가가치 한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현대화·융합으로 전통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전통문화를 K문화의 대표 브랜드로 육성’ 두 가지를 목표로 △전통문화기업의 신성장 동력화 △일상에서 즐기는 전통문화 △전통문화산업의 선순환 구조 창출 △기초가 튼튼한 전통문화산업 등 4대 전략-8대 과제를 제시했다.
한복근무복, 추석 무렵 ‘오늘 전통 한마당’ 축제, 스토리텔링 영상콘텐츠 제작…
이 계획에 따라 문체부는 전통문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전통문화에 대한 매력도를 높이고 정부 지자체 등 공공 부문에서 앞장서서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을 우선 펴기로 했다. 한복 문화주간(매년 10월 3주)과 한복근무복 도입 등을 통해 일상 속 한복 입기를 장려하고, 전통 한지를 활용한 상품공모전으로 소비 기회를 확대한다. 또 추석 무렵에 지역축제와 연계한 전통문화 전시 체험 종합축제인 ‘오늘 전통 한마당’을 전국 곳곳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아울러 문체부는 전통문화의 해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주제별 스토리텔링 영상콘텐츠를 제작해 홍보를 추진하며, 해외관심도가 높은 한식문화를 선정해 국내 방송사와 함께 프로그램 제작 및 방송·유튜브·OTT(넷플릭스 등)를 통한 보급에 나선다.
대형 한류축제와 APEC 등 외교행사에서도 전통문화 활용한 한국의 멋과 맛을
아울러 전통문화산업 진흥 정책은 한류축제나 글로벌 문화교류 및 외교행사에서도 다양하게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류 연관 산업의 전시 체험 공연 등 한류 전반을 보여주는 ‘Beyond K-Fest’(6월 개최 예정), 콘텐츠 뷰티 식품 소비재 등을 망라한 범부처 한류 박람회인 ‘K-Expo 등에서도 전통문화 매력도를 높이는 기획사업과 전통공연·전시와 체험 기회를 늘려야 한다. 나아가 오는 10월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12·3 계엄사태의 여파를 잠재우고 한국의 정치 경제적 회복력을 확인하는 기회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전통문화의 역동성과 우수성을 내외에 알릴 콘텐츠와 이벤트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2005년 ‘APEC 부산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APEC 경주 정상회의’가 천년의 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한국의 멋과 맛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더없이 좋은 기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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