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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예술시평<49> 지역주의를 중심으로 한 뮤지엄 정책의 필요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1월2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20일 14시23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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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구감소 속도가 유럽 흑사병 창궐 때보다 더 빠르다고 언급한 뉴욕타임스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인구감소의 문제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저출산이란 악령은 대중의 관심이 옅은 농촌부터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대도시로의 인구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방의 과소지역과 무거주화 현상을 지방소멸이라 하는데, 전체 228개 시·군·구 중에서 소멸 위험지역은 130곳으로 전체의 57.0%였다. 소멸 고위험 지역은 57곳으로 25%였다. 최근엔 부산과 같은 광역 시도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인구소멸은 지역의 경제를 침체시키고, 공공 서비스가 축소되며, 인구 밀도가 낮아져 공동체 활동과 지역문화 전승이 약화되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정치적 영향력 감소하는 등 많은 문제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문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여러 가지 방안 중 문화를 통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효율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전문성을 기반으로 정교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유사한 과제인 점을 살펴 그것을 참고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이다.

 

정부는 작년 말 「제2차 문화진흥 기본계획」을 포함한 국정 비전 및 목표를 발표했다. 문화 분야 중장기 계획으로 3대 혁신전략과 10대 핵심 과제를 발표하며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라는 비전 아래 국격에 맞는 세계적 수준의 예술인. 단체의 육성과 국민 누구나 전국 어디에서든 마음껏 누리는 문화예술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중 뮤지엄을 위한 정책인 「제3차 박물관 미술관 진흥 기본계획」의 핵심 내용으로 국립박물관 분관 건립과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찾아가는 박물관, 지역순회전 등을 발표했다. 뮤지엄은 전국 문화기반시설의 38%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문화시설이며 지역소멸 위기와 수도권-비수도권 문화 격차 문제 심화로 국민문화 향유 공간으로서 그 역할의 중요성이 점증되고 있다.

뮤지엄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능과 가치에 부응하며 그 정의가 변화한다. 2022년도 프라하에서 개최된 세계박물관 대회가 채택한 새로운 정의는 다음과 같다

 

             “ 박물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 수집, 보존, 전시 및 전달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영구적인 비영리기관이다. 대중에게 개방되어 접근하기 쉽고 포용적이며 다양성

             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한다. 박물관은 전문적이고 윤리적이며 지역사회의 참여로 

             운영되고 교육, 향유 및 지식 확장을 위해 다양한 관객 경험을 제공한다.”

 

이 정의를 보면, 유물의 수집, 보존, 연구, 교류, 전시라는 전통적인 기능 이외에 관객과의 소통, 사회봉사, 지역사회의 참여, 전문성, 비영리성, 지속가능성 등의 개념이 더해졌다. 사실 뮤지엄의 기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진보적인 견해로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담론 생산과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등 더 많은 기능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동안 정부는 뮤지엄 제도의 정비와 정책 기반 체계화를 위한 평가인증제도를 통해 뮤지엄의 운영의 질을 향상하며, 문화유산 표준관리시스템 구축과 자료전산화 확대, 사립박물관의 학예인력 확충지원을 통한 운영 활성화와 서비스 질 제고 등을 추진해 왔다. 디지털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실감형 콘텐츠 제작 등 문화 향유 여건을 개선과 스마트 뮤지엄 구축 등 미래형 뮤지엄 구축에도 힘써왔다. 이 외에도 장애인과 문화 취약 계층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지원과 스미스소니언 등 해외 주요 뮤지엄과의 MOU 체결 등 국내외 협력사업을 통해 K-컬쳐 확산을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하지만 넓게는 국제적 수준, 좁게는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는 여전한 실정이다. 지역 뮤지엄의 학예직원 수, 소장자료 등의 격차 해소 및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의 수준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제3차 박물관 미술관 진흥 기본계획」은 뮤지엄을 ①문화 향유의 대표 공간 ②지역을 살리는 거점 공간 ③미래를 이끄는 모두의 기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를 위한 실천 전략 중 하나로 뮤지엄을 지역문화의 활력소이며 거점으로 인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들의 대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은 지역을 살리기 위해 지역 뮤지엄을 확충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정부가 주관하던 공립뮤지엄의 건립 사업을 지방에 이양하며,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분관을 확충하고자 하고 있다. 일례로 국립민속박물관을 지역으로 이전한다거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 수장보존센터를 1927년까지 대전에 건립하고 국립민속박물관 지역 분관 건립에 관한 연구 추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주관해 오던 공립뮤지엄 설립 타당성(신축, 증축, 이전) 에 대한 사전평가 및 검토를 지자체장에게로 이관하여 자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게 자율적 문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으로 이관할 때 부실 운영 및 난립이 우려된다. 사립 뮤지엄의 설립 승인을 정부에서 지자체로 이관하고 난 뒤 뮤지엄의 난립이나 부실 운영 문제가 야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우려되는 지점임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제도 운용에 관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바 있다. 또한 2018년부터 실시해 온 ‘작은 미술관’ 사업의 지속 운영이다. 그간 지역에 84개의 작은 미술관이 조성되었는데, 지역의 인구감소와 도심 동공화에 따른 시각예술 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 유휴공간 또는 기존의 소규모 전시 시설을 활용하여 작은 미술관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물론 이것은 본격적인 미술관으로 볼 수 없지만, 작은 공간을 개조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전시 공간과 교육시설로 활용한다.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일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시콘텐츠를 다양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에 역량 있는 학예인력이나 전시콘텐츠 개발 여건 등이 열악한 점을 고려하여 콘텐츠 생산을 위한 공동 전시와 교류 전시를 통해 다양한 전시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립뮤지엄과 지역의 뮤지엄 간의 공동 기획 전시를 개최하거나 국립뮤지엄의 우수 전시를 순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전시기법 및 인력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효율적으로 개발한다.

또한 농어촌 및 지역 특화 발전 특구와 같은 인구감소 지역 내의 전문인력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한데 주요 소장품 교류전시 및 전시기법 교육을 강화하며 학예사들을 구하기 쉽지 않은 벽지나 오지의 미술관을 대상으로 학예인력 지원금의 교통비 현실화 및 벽지 수당 제공 등을 고려하고 있다. 향유의 기회가 적은 문화 소외지역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가상 콘텐츠를 가지고 찾아가는 뮤지엄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뮤지엄의 활성화는 궁극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까지 방안을 확대한다. 정부는 ‘세계박물관의 날’(5.18)을 계기로 전국의 뮤지엄이 참여하는 뮤지엄 주간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전시 또는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지원하고 권역별 박물관 미술관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한다거나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학술행사 개최 등 전국적으로 뮤지엄 축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관람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간 전국에 조성된 문화도시를 연계한 <문화도시, 로컬 100>을 통해 지역의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소개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품격 있는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시와 행사를 결합하여 지역관광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을 거점으로 지역관광 공간 및 생활 서비스를 연계한 공간을 재조성함으로써 지역의 문화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뮤지엄 발전계획은 매우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실 좀 더 획기적인 면이 없어 아쉽다. 제시된 계획은 그동안 뮤지엄 분야에서 소소하게 필요성을 논의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커다란 과제로는 국립미술관의 지방분관 제도와 근대미술관의 조성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조직과 효율적인 운영체계를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그리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 뮤지엄의 규모에 따른 인력, 직급, 소장품 수, 예산 등 지자체로 이관한 공립뮤지엄의 기본 운영 기준이 좀 더 치밀하고 분명한 기준으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히 뮤지엄을 통한 지역발전 방안에 초점을 맞춘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근본적인 과제는 관습적인 정책목표보다는 개념과 사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뮤지엄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지역의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생산과 소통 체계를 갖추는 일에 더욱더 초점을 맞추는 일이 그 중핵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들을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지역 특성을 갖추어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하다. 지역의 특성과 괴리된 국공립뮤지엄의 분관 조성이나 중앙의 순회 전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지역이 주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하는 체계를 만들어 내는 일의 마중물을 만드는 일이 정책과 계획의 중핵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지역복원을 위한 지역주의를 강조하며 ‘청년, 바보, 외지인’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매우 큰 시사점을 준다. 이것은 새로운 자질, 시설, 의지를 갖춘 구성원의 추가 참여를 통해 새로운 판을 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청년처럼 날렵한 실행력을 갖추고, 바보처럼 독특한 발상력을 발휘하며, 외지인처럼 냉정한 기획력을 발굴, 반영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는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이면서 동시에 3대 인적자원의 공통인자를 두루 갖춘 예비 인재를 찾는 일이 중요한데,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3040의 세대가 없는 초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이라면 50대가 주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건 지역을 떠받치는 굳건한 허리이자 생산, 소비의 왕성한 주역을 지역 활성화에 끌어당기려는 시도이다. 맞춤식 홍보 교육을 적절한 인센티브로 얻어내고, 이해관계의 당사자성이 공감, 확대되면 훨씬 탄탄해질 것이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커뮤니티를 만들며 이를 중심으로 지역의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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