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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전통문화 반딧불이 <5> ‘섣달그믐’ 서로 다른 시작의 디딤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1월2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22일 09시55분

작성자

  • 김용호
  • 전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메타정보

  • 5

본문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쓰이는​ “어(敔)”라는 악기

한국의 전통악기 중에 “어(敔)”라는 악기가 있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쓰이는 악기로 그 모양은 흰 호랑이, 즉 백호(白虎)와 닮은 모습이다. 조선 역대 왕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이나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의 악기로 무섭고도 신묘하게 생긴 악기의 특성과 의미는 바로 장엄과 숙연함 그리고 악곡의 종지(終止),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소리이다. 

 

악기의 생김새는 백호를 닮​아

악기의 생김새는 백호를 닮았다. 악기의 등에는 27개의 톱날로 되어 있는데 ‘서어(齟齬)’라 쓰고 ‘차아’라 읽었다. 대나무 끝을 세 조각으로 세 번 쪼개 아홉 조각으로 갈라서 만든 채를 가지고 백호 모양의 머리를 치고 등을 비비며 연주한다. 연주 소리는 우스갯소리로 마치 나무 빨래판을 여러 번 두드리고 비비는 소리와 비슷하다. 생김새도 특별하다 보니 그 역할도 참으로 특이하고 절묘했다. 이러한 신통방통한 전통악기 “어”는 전체 곡 중 마지막 음악의 끝을 알릴 때만 사용하는 단 한 번의 악기로 연주자는 전체 음악을 모두 숙지하고 마무리하는 지휘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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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 맞을 준비​

2025년 새로운 을사년 설날을 맞이할 시간, 전통악기 “어”의 포효(咆哮)하는 종지의 연주기법에 반해 우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시풍속에는 너무나도 친근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의 평안함과 마무리란 평정심(平靜心)이 있었다. 매년 섣달그믐이 되면 우리 민족은 저녁밥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먹었으며 전에 해오던 바느질도 비로소 끝내어 해를 넘기지 않았다. 그동안 밀린 빚도 있으면 섣달그믐 안에 갚았고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가 생겨도 정월 대보름 이전에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다고도 전한다. 그만큼 묵은해에 넘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평안한 신년을 맞이하려 노력했다. 우리 조상은 섣달을 ‘남의 달’이라 하여 한 해를 조용하게 마무리하였고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에 다시 찾아온다.”, “숟가락 하나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지내면 서러워서 운다.”라는 말을 유념해 전에 빌렸던 남의 물건도 모두 돌려주고, 돈도 꾸지 않았으며, 혼인도 하지 않고, 연장도 빌려주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렇듯 섣달그믐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하였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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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의 전통문화는 종지(終止)의 정점에서 성심(誠心)을 통해 다가올 날의 무탈(無頉)을 기원했다. 바로 전통악기 “어” 악기처럼 포효하며 자신의 연주로 막힘없이 무사히 마무리하기를 바랐으며 섣달그믐의 세시풍속처럼 안전하고도 평온한 끝을 원하기도 했다. 각자의 사명과 역할을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의 웅비(雄飛)를 준비하는 마지막 날, 우리는 “아무런 병이나 사고가 없는 삶” 즉 무탈한 삶을 간절히 원한다. 

 

현재 우리는 힘든 정국과 어려운 경제와 싸우고 있다.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문제야!”, “나에게는 아무 문제 없어” 무탈을 위한 처신의 답변으로 너무도 허망한 발언이다. 만약 그대가 전통악기인 ‘어’가 곡 중간에 나오거나 혹 마지막 연주를 하지 못한다면 그 곡은 엉망이 되어 연주곡 전체를 무너트릴 것이요 마지막 섣달 세시풍속과 반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무리 지어 교사(敎唆)하며 규율을 어기고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리고 우리 사회와 조국은 분열되고 돌이키기 어려운 난국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하는 사회에 대한 규율과 약속을 충실히 바라보고 지켜야 할 시간과 순간에 서 있다. 특히 이처럼 이기주의로 넘쳐나는 현 세상에 더더욱이 말이다. 

 

세상의 나쁜 기운을 모두 없애는 "어" 포효의 종지처럼, 우리 평정의 세시풍속처럼 순탄한 미래 기대​

필자는 음력 섣달그믐이 이 세상의 나쁜 기운을 모두 없애는 전통악기 "어" 포효의 종지처럼 그리고 우리 평정의 세시풍속처럼 순탄한 미래를 기대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가올 신년. 만약 나이 듦에 서글픈 이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으니 함께 살펴보고 작은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 

 

        <1616년 생모인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하는 일에 명 황제가 고명을 내린 

        것을 축하하며 실시한 증광시(조선 시대에 있었던 시험으로 나라에 큰 경사가 있

        을 때 실시하던 임시 과거)를 실시했는데 이때 광해군이 책문(策問)을 내렸다.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워지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

        달 그믐밤에 꼭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중략-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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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과거에 임한 한 젊은 이명한이란 사람이 이러한 글을 쓴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나에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살아서는 볼 만한 

         것이 없고 죽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초목이 시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

         니까?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으니 학문에 힘쓰면서 흐르는 세월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즉 사람이 세월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안타

         까워하지 않습니다. (然則人能傷歲 歲不傷人)”   - 이명한 -

 

광해군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스물두 살의 장원자가 쓴 글을 보니 갑자기 쓰디쓴 웃음과 함께 뒷방에 꽂아 놓은 책들을 살펴보게 한다. 다가올 2025년 을사년, 조금이나마 우리의 삶이 윤택하고 풍요롭고 정직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굳건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또한 소원해 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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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1월2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22일 09시55분
  • 검색어 태그 #국립국악원 #전통악기 #세시풍속 #섣달그믐 #광해군 #을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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