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를 둘러싼 세 가지 불확실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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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코스피는 9.6% 하락하며 전세계 40개 주요 주가지수 중 37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나스닥과 S&P 500지수가 각각 28.6%, 23.3% 급등했고, 일본 (+19.2%)과 독일 (+18.9%) 등 선진시장의 주가지수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국 증시가 속한 신흥시장 내에서도 대만이 28.6%, 중국 상해종합지수가 12.7%, 인도가 8.2%나 올랐다. 2024년 중 코스피보다 부진한 증시는 브라질 (-10.4%)과 러시아 (-20.3%) 밖에 없다, 최하위는 우리나라 코스닥 (-21.7%)이었다.
주가가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2016년만 해도 MSCI 신흥시장 (EM)지수 내에서 16%의 비중으로 중국과 1, 2위를 다투던 한국 증시의 위상은 2024년 말 비중이 9.0%로 축소되며 중국 (27%), 인도 (20%), 대만 (20%)과는 현격한 차이로 4위로 밀려났다. 2024년 초만해도 13%의 비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4년 한국 증시의 상대적인 부진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불확실성은 기대가 반영되어 있는 증시의 밸류에이션 (Valuation)을 더 끌어내린다. 그 결과 코스피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 (BPS, Book value per share)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 (PBR, Price-to-Book Ratio)이 0.8배로 낮아졌다. PBR이 낮아졌다는 것은 기업의 자산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주요국보다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 (ROE, Return on Equity)은 지난 10년 (2014~2023) 동안 8.0%로 선진국의 11.6%, 신흥국의 11.1%보다 낮았다. 2000년대 이후 PBR이 1배를 추세적으로 하회했던 경험은 2000년대 초 IT 버블 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그리고 2020년 팬데믹 당시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금융위기나 경기침체 없이 PBR이 청산가치인 1배를 지금처럼 추세적으로 하회했던 경험은 없었다.
최근 한국 증시가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더 부진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둘째, 국내 기업의 산업 경쟁력 약화, 셋째, 야심차게 시작했던 기업 밸류업 추진력의 후퇴 등이다. 그 영향으로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 이탈되고 있고, 밸류에이션은 낮아지고 있다.
첫째, 탄핵을 둘러싼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은 예단하기 쉽지 않은 이슈다. 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 3일 이후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3bp 상승하는데 그치며 신용위험 확산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볼 수 있지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장중 1,480원을 넘어서는 등 3% 이상 상승하며 주요국 통화 중 두드러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달러-원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선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4개월, 2009년 3월 금융위기 당시 1개월 정도였기 때문에 국내 경제를 둘러싼 불안과 긴장감은 어느 때보다 매우 고조되어 있는 상태다.
정치적 불확실성의 장기화 우려는 기업의 의사 결정을 늦추고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 이미 소비와 기업 투자는 크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12월 소비자심리지수 (CSI)는 88.4로 전월 대비 12.3포인트 하락했다.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0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나타내는 기업심리지수 (BSI)도 12월 87.0으로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이다. 기업실적과 국내경제보다, 최근 외국계 투자자들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질문이 부쩍 증가했다.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은 외국인 자금 이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2024년 들어 외국인은 7월 중순까지 25.7조원을 순매수했지만, 이후 24.5조원을 순매도했다. 2024년 상반기만 해도 AI 반도체 붐을 타고 대만과 한국증시가 동반 상승했지만 하반기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7월 이후 코스피의 외국인 순매도 (24.5조원) 중 삼성전자의 순매도가 21.6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범위를 좁혀보면 결국 반도체와 달러-원 환율 등의 문제다.
둘째,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기업의 산업 경쟁력 약화는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의 공급과잉 충격이 국내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2024년 상반기 비중 19.2%)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한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 도입은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2차 전지 등을 중심으로 수출 감소폭이 클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대하여 보편관세 10~20%를 부과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은 약 222억~448억달러 (약 31조~62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반영한 한국의 실질 경제성장률 (GDP)은 최대 0.67%p 하락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미국 내 생산시설을 건설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과학법 (CHIPS and Science Act, 2022)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Inflation Reduction Act, IRA 2022) 폐지를 언급했다. 고율 관세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전면 폐지하거나 축소한다면, 반도체 과학법과 IRA에 대비해 미국에 수십조원 규모로 투자를 늘린 국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기업 등의 막대한 손실이 우려된다.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의 과잉 공급능력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 UNIDO (UN산업개발기구)에 따르면, 2000년에는 미국과 아시아, 유럽, 남미의 동맹국들이 전세계의 제조업 생산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75%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이 25%로 점유율 1위였으며 일본 11%, 독일 8%로 뒤를 이었다. 반면 중국은 6%로 당시 4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뒤인 2030년에는 전세계 제조업 지형에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중국이 전세계 제조업 생산의 45%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지위에 올라설 것임은 물론, 단독으로도 미국과 모든 동맹국들의 점유율을 넘어설 전망이다. 2030년 미국의 제조업 생산은 전세계의 11%로, 일본과 독일은 각각 5%, 3%에 그칠 전망이다. 한국이 3%로 독일과 동일한 점유율로 성장하지만, 미국-일본-독일-한국에 대만까지 모두 합쳐도 중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전세계 제조업 지배 또는 독점 현상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산업정책 자금 지출로 자동차, 배터리, 전자, 화학, 선박, 항공기, 드론, 기초 반도체와 같은 군사적으로 유용한 제조업 산업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생산을 늘리는 데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넘쳐나는 과잉 생산 능력과 가격 하락을 만들어내고, 결국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대만의 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중이다. 결국 중국은 과잉 공급능력 확대를 통해 지정학적 경쟁자들을 탈산업화시키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화학, 철강 등의 업계가 당면한 문제도 이러한 연장선 상에 있다. 중국 DRAM 제조사의 생산능력 확장이 가속화되면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저사양 레거시 DRAM 중심으로 중국 리스크가 대두되는 중이다. 2022~2026년 중 중국 정부의 메모리 반도체 보조금 지원은 역대 최대 규모인 1,42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EU, 일본, 한국의 보조금을 모두 합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대만의 IT 데이터 조사업체인 TrendForce에 따르면, 전세계 DRAM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을 2023년 7%에서 2025년에는 17%까지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DRAM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 확장이 가속화되고 중국 업체들의 가격인하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향 매출 비중이 약 30%에 달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동안 68%에서 61%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2024년에도 중국은 정부 주도로 최대 3,440억 위안 (약 70조원)의 반도체 육성을 위한 펀드를 조성했다. 이러한 정부 주도 산업정책 등에 힘입어 중국의 DRAM 업체인 CXMT (창신메모리)는 2026년 미국의 마이크론을 추월한 DRAM 업계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이러한 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미국 대 미국 외 모든 나라' 구도를 '중국 대 미국 등 모든 나라' 구도로 전환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야심차게 시작했던 기업 밸류업 추진력이 후퇴하고 있다.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다. 이를 둘러싼 첨예한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미뤄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지배주주를 중심으로 이뤄진 기업 지배구조가 일반 주주의 권리 보호에 미흡했다는 입장이고, 경영자들은 만약 그럴 경우 무분별한 소송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업 경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장회사에는 회사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존재한다.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와 이사회 독립성 부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지배주주는 합병과 분할 등 자본거래 뿐 아니라 배당과 같이 주식 비율에 따른 현금흐름 외에도 내부거래, 과도한 수준의 보수, 불공정한 자전거래를 통한 사적이익 편취 등 지배권의 사적이익을 누릴 수 있다. 전체 주식가치가 동일해도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이 크다면, 일반주주의 주식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배권의 사적이익이 클수록 지배주주는 전체 주주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유인이 높아진다. 이사회는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기업지배구조의 핵심 기구다. 따라서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조항을 유지하되 직무수행에 있어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특정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조항을 추가하는 등의 법적 제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12월 2일 금융위원회는 상법상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또는 보호의무 대신 ‘공정한 합병가액’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자본시장법상 합병, 분할 시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는 대원칙을 우회한 세부적인 정책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한국 밸류업 정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도 후퇴하고 있다. 상법상 주주 충실의무 또는 보호의무는 대원칙이며 글로벌 스탠더드다. 경영자측이 제기하는 위험은 대원칙에 따른 세부적인 후속입법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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