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전 美 대통령 100세로 별세,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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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영리단체(NGO) 카터 센터(Carter Center)는 지미 카터(Jimmy Earl Carter) 전 대통령(39대; 1977년~1981년 재임)이 현지시간 29일 조지아(Georgia)주 Plains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사인(死因)은 밝히지 않았다. 향년 100세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령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에 피부암 수술을 받은 뒤 종양이 간 및 뇌로 전이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2023년에는 여명(餘命)을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며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왔다.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었고, 11명의 손자녀와 14명의 증손자녀를 두었다.
그는 1924년 조지아(Georgia)주 Palins에서 태어나 해군병사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사관으로 복무했고, 전역한 뒤에 고향 조지아주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했다. 1970년에는 조지아주 지사에 당선되기도 했다. 1976년 치러진 대선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서, 공화당 출신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으로 물러난 뒤를 이어 취임했던 당시 포드(Gerald Ford) 대통령과 싸워 승리했다.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Ronald Reagan) 공화당 후보에 패해 4년 단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민주주의 촉진, 분쟁 조정, 빈곤 퇴치 등 활동을 펼쳐 ‘’퇴임 후 더욱 빛나는” 전직 대통령으로 명성을 얻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부부 명의로 된 조문(弔文)을 발표하고 “오늘 전 세계는 범상한 지도자, 정치가, 인도주의자를 잃었다(Today, America and the world lost an extraordinary leader, statesman, and humanitarian)” 고 칭송하며 슬픔을 표했다.
■ "바이든 대통령 등 요인들, 카터 전 대통령의 생전의 업적을 기려"
블룸버그 통신 등 미 언론들은 바이든 현 대통령, 트럼프 차기 대통령을 비롯한 전 · 현직 대통령들을 포함한 워싱턴 요인들 및 전세계 저명 인사들의 애도 물결을 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존경하는 친구를 잃었다’고 슬퍼하는 조문을 발표했다.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 내외는 SNS에 올린 글에서 카터 전 대통령이 생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헌신했던’ 공적을 깊이 추모했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은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빚을 졌다(a debt of gratitude)’고 애도했다. 그는 “카터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우리는 대통령으로 봉직 하는 것이 대단히 선택된 일이고, 오직 우리들(대통령들)만이 역사상 위대한 나라를 지도할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고 말했다. 그는 SNS에 올린 글에서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했을 당시 직면했던 도전들은 미국에게 중대한 시기였고, 그는 미국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주어진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감사하는 마음의 빚을 졌다” 고 말했다.
오바마(Barack Obama)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은 우리 모두에게 명예와, 긍지와, 정의와, 헌신의 삶을 영위하며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taught all of us what it means to live a life of grace, dignity, justice, and service)” 고 애도했다. 아울러, 그는 개인적으로 카터 대통령과 만났던 기회에는 ‘그러한 가치와 교훈을 그냥 말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마음 깊이 심어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카터 전 대통령이 1980년 이후 생전에 주일학교에서 가르쳤고, 작년에 별세한 부인 로잘린(Rosalynn Carter) 여사가 잠들어 있는 Maranatha 침례 교회에 묻힐 것을 회상하고, 카터 전 대통령은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 "인권 외교, 퇴임 후에 더욱 빛나, 중국과 수교로 개혁 개방 유도"
땅콩 농가 출신으로 서민 풍인 카터 대통령은 경건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참신 소박한 이미지와 성품으로 베트남 전쟁 및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상처받은 국민들 마음을 사로잡으며 위로하고 미국 재생에 매진했다. 따라서, 그의 재임 중 최대 공적은 ‘평화와 인권 중심’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카터 대통령의 재임 중 업적에 대해서는 평가하는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는 4년 대통령 재임 중, 당시 냉전 중이던 소련과 긴장 완화에 진력했고 1978년에는 이집트 · 이스라엘 정상들을 초청해 중동 평화를 위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도 체결했다. 1979년에는 닉슨 대통령 때 시작한 중국과 협상을 이어받아 역사적 수교를 성공함으로써 ‘죽(竹)의 장막’에 둘러싸였던 중국 사회를 개방으로 이끌어내는 등, 많은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1994년에는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자 직접 평양을 방문해서 당시 최고 지도자 김일성과 담판을 벌여 위기를 피했다. 이런 공적으로 200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1959년 쿠바 혁명 후, 2002년에 미국 대통령 경험자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당시 카스트로(Fidel Castro) 국가평의회의장과 회담했다. 그는 2012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수상식 기념 연설에서 “전쟁은 때로는 필요악” 이라는 말을 두고, “전쟁은 언제나 악” 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평화 추구 노선으로 일관해서 소련과 2차 군축 조약(SALT 2)에 조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경험 부족 등에 따른 국제 정세에 대한 순진한 평가 등으로 생각만큼 성과를 보지 못한 점 등은 미국 외교의 취약함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더해, 2차 석유 위기 이후 불어 닥친 인플레이션 불황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은 경제 운영 실패라는 불신임의 낙인을 받았다. 그러나, 인권 중시 노선은 지금에 와서 미국 외교의 소중한 축을 이뤘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 英 FT "카터 대통령의 참된 공적은 소련 붕괴의 씨앗을 뿌린 것"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작년 3월에 카터 전 대통령의 공적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이 기사는, 미국 정치에서 실제의 공적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으나, 카터 전 대통령의 참된 공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련 붕괴의 씨앗을 뿌린 점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하면,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을 현대의 성인으로 취급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FT는 동 기사에서, 여론은 쉽사리 유도될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2차 세계 대전 전후 영국 정치에 빗대어, 나치 독일에 유화적 노선을 취해 실각했던 체임벌린(Arthur Chamberlain) 총리가 카터 대통령이고, 뒤이어 취임해서 對 독일 강경 노선으로 전환해서 유럽 전선을 승리로 이끌었던 처칠(Winston Churchill) 총리가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격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식됐던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 뒤, 카터 대통령은 실정을 거듭했고, 1981년에는 레이건 대통령에 패해 그 이후로는 볼 것도 없다는 인식이나,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는 지적이다. 미국이 지난 번 냉전 시대에 어떻게 승리했는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다음 냉전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카터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한 것은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카터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낀 반면, 보수 유권자들이 레이건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의 대선 패배 이유로는, 종전의 데탕트(소련과 긴장 완화)를 종식시켰다고 인식했던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카터 대통령의 인권 중시 정책은 체코 및 폴란드에서 단결된 시민 저항을 불러왔고, 종국에는 소련의 붕괴로 연결되게 됐던 점을 간과할 수 없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또 하나, 그가 패배하게 된 이유는 이란의 호메이니(Khomeini) 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의 조기 해결에 실패했던 점을 들고 있으나, 이들 인질은 카터 대통령 퇴임 직후 모두 석방됐다.
또한, 당시 만연했던 인플레이션 및 이에 따라 정책금리가 20%에 달하는 등의 고금리도 카터 대통령의 대선 패배의 한 요인이나, 그가 인플레이션과 싸울 능력을 가진 Paul Volker 연준 의장을 임명했던 것도 사후적으로는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카터 대통령은 많은 올바른 정책을 펼쳤으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은 대부분을 후임자인 레이건 대통령 치적으로 인식하고 말았던 것이다. FT지는, 결국 카터 대통령이 보여준 참된 교훈은 ‘선행을 하는 데는 대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점’ 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의 심판은 편견에 충만해 있다는 지적이다. (Nikkei)
■ "워싱턴 정가, 바쁜 일정 속에 카터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 준비"
CNN 등 주요 미디어들은 워싱턴 정가는 내년에 들어가면 3일에 의회 지도부 구성, 6일에 지난 대선 결과 추인, 각료 등 고위직 임명 청문회 그리고 20일 트럼프 차기 대통령 취임 등으로 대단히 분주한 일정이 예정되어 있으나 이날 카터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 소식으로 더욱 복잡하고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됐다고 전했다.
카터 센터는 전 대통령 추모 행사는 아틀랜타 및 워싱턴 D.C.에서 거행될 것이고, 그가 마지막으로 Georgia주 Plains 고향에 묻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식 장례 절차를 주관하는 National Capital Region는 장례는 7-10일 정도 예정으로 3 단계로 구분해서 치러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희귀한 사례인 ‘국장(國葬; state funeral)’ 장례 일정은 바이든 대통령 주도 하에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지휘 계통을 따라 국방부에 국장을 주관할 NCG의 총책을 임명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발표한 조문 성명에서 ‘한 위대한 미국인을 추모하기 위해 워싱턴 D.C.에서 국장을 거행할 것을 명령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국장(國葬) 절차의 대강을 정한 다음에는 가족들의 의향을 참작해서 군사적인 규정에 따라 공식 장례 행사의 참석자, 장소, 진행 일정 등을 결정하게 된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중, 그리고, 56세로 퇴임한 이후 40여년 동안을 “다른 사람의 불행에 무관심하고 슬픔을 느끼지 못하면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인도주의적 신념이 100세 일생의 마지막까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다른 나라 전직 대통령 별세에 즈음해서 각별한 감상을 갖게 되는 것은, 지금 이 땅에 벌어지고 있는 한심한 혼란 정국에 당해서 필경 모두가 느끼는 크나큰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네 모든 정치 종사자들은 카터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순수 열정의 정치 역정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헤아려 각성하고 또 각성해야 할 일이다. 그냥 보고 있자 하니 마냥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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