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불가능한 외교담론’에 시달리는 한국외교의 트라우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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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외교의 위기인가?
1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위기를 몰고 온 것은 아니다. 그는 전세계가 이미 직면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위기를 대변할 뿐이다. 세계는 심각한 경제침체에 더해서 미·중대립에 따른 ‘신 냉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스라엘·하마스전쟁에 따른 중동사태 등 안보위기도 중첩되어있다.
게다가 지난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동에 따른 탄핵사태로 한국의 위기가 더 부각되고 국제적인 신뢰가 하락했다. 정치와 경제에서 동시에 파열음이 들린다. 국내정치는 이미 혼란상태다. 환율이 급등하고 경제지표가 급락하면서 경제침체가 악화된다. 2025년 경제전망은 더욱 어둡다. 외교기반이 파열되고 있으니 외교대응은 더 어려워졌다. 당장의 대처가 시급하겠지만 위기는 개혁의 기회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국내정치적 이념대립이 초래한 모순적 외교담론
민주화 이후 소위 ‘선출권력’인 정치인이 외교를 장악했다. 정치세력 간의 이념대립으로 외교도 이념화되었다. 그 대립이념이란 ‘반공 대 종북’, ‘민족주의 대 반민족주의’, ‘친미 대 반미’, ‘친중 대 친미’, ‘반일 대 친일’ 이라는, ‘허수아비론적’ 진영논리다. 학자와 관료들도 각 정치진영에 줄섰다. 이들은 어떤 외교정책이라 하더라도 서로 반대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기조는 롤로코스터처럼 반전하고 정책의 오류는 누적된다. 결국 외교정책은 정파 간 싸움거리 명분으로 전락한다. 실현 불가능한 명분을 옹호하는 해명을 할수록 오히려 협상상대국 입장을 대변하는 웃픈 결과가 된다.
그 첫 번째 명분은 ‘대등한 한미관계’에 관한 논쟁이다. 미국에게 안보를 의지하면서도 ‘반미’가 정치적 담론이 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대등한 관계’나 ‘반미’를 내세울수록 정책은 더욱 더 ‘친미의존적’이 되는 아이러니는 그 모순의 귀결이다. 자주국방과 자주헌법을 외칠수록 더 깊게 미국에 종속되는 일본과 비슷하다.
대북정책도 그렇다. 통일담론은 반공과 종북의 주술이 되었고 북한의 비핵화는 공염불이 되었다. 30년간의 대북정책과 북한핵폐기 협상은 실패다. 그것은 한국과 미국의 정책의 급반전과 오류, 그리고 대미의존의 결과다.
일본에게 ‘사과’ 받는 것이 불가능할수록 ‘반일’의 도덕성이 더 선명하게 과시된다. 일본사회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만큼 도덕적이지 않다. 일본에게 ‘사과’는 천황제도의 존폐를 건드릴 수도 있는 예민한 문제다. 일본으로부터 사과받는 외교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대중국외교는 중국이 한국편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쫓는 외교가 되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미·중 양자택일이나 등거리 외교를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역사 트라우마에 기인하는 외교심리
한국의 외교가 드러내는 이러한 기묘한 모순적 심리의 근저에는 역사적인 트라우마도 작용한다. 국내정치의 대립은 그 트라우마를 더 자극하고 왜곡한다.
사대주의와 보편적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큰 트라우마다. 과거에는 중국의 정치·문화적 준거가 곧 보편적인 가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적 준거를 따랐다. 현재는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이 제시하는 준거를 곧 보편적인 가치로 간주한다. 그 가치는 물론 정치·경제·문화 이론도 대부분 ‘수입품’이다. 강대국의 외교이론과 외국언론의 보도에 권위를 부여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한국인은 식민지지배를 당한 피해자 의식이 있다. 핍박받는 약자와 약소국을 동정하고 자기민족을 비하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이유가 어떻든’ 가해자에게 책임이 있고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사과하지 않는 가해국 일본은 ‘나쁜 나라’가 된다.
권위있는 민족주의 담론이 없다. 남북한이 서로 적대하니 편협하고 편의적인 민족주의에 집착한다. 통일민족주의와 남북대립이라는 괴리를 메꾸는 서사(narrative)가 없어 내부갈등을 유발한다. ‘하나의 민족국가’는 정치적 명분이 되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조선은 하나다’라는 명분을 포기했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법만능주의와 내로남불이라는 ‘법꾸라지적’ 편의주의로 해결한다. 도덕과 이성은 폄하되고 관습도 한순간에 불법이 된다. 어떤 사안의 법적 개념과 문제의 근원은 무시된다. 그래서 법과 현실의 괴리는 갈수록 더 커진다. 모순은 일상화되고 갈등은 심화된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보상적 귀결은 한국대통령들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일종의 ‘천동설’ 같은 거대 외교담론이다. 세계화, 햇볕정책, 동북아균형자 외교, 실용외교, 비핵개방3000, 그랜드바겐, 신뢰프로세스, 통일은 대박, 운전자론, 담대한 구상, 통일독트린 등은 모두 강대국의 외교이론을 흉내내는 5년 수명의 거대담론들이다.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외교위기를 외교생태계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북한의 일상적인 핵위협과 국제 위기에 취약한 한국의 외교목표는 ‘통일기반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국익은 더 크게 만들고 손실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의 결과는 늘 모호하다. 이익은 과시하기는 쉽지만 허상일 수 있고, 손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외교의 지혜는 과장하기 쉽고 무능은 숨기기 쉽다. 한국 대통령의 ‘구름잡는’ 외교담론은 지혜가 아니다.
위기는 개혁의 지혜를 자극한다. 그 지혜는 앞서 언급한 한국외교의 문제를 철저하게 점검(review)해 봐야 찾을 수 있다. 잘못을 파헤치는 것은 괴롭고도 어려운 일이다. “상처는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한 강 〈작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성이 아플수록 더 건강한 외교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잘못된 외교정책의 결과’라도 유용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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