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47> 메리 크리스마스, 혹은 해피 홀리데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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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을 맞는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가 오실 때처럼 세상은 여전히 소란하고 분주하다. 인간들의 헛된 욕망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횡행한다. 특히나 올해는 정치적인 문제로 더욱 우울한 성탄을 맞게되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선 성탄의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란 말을 써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특정한 종교적 표현이 비신자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라는 의식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공동체의 전통문화를 그르치는 지나치게 예민한 태도로 치부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담론화되기 시작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의 인식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나 그들의 문화를 차별하는 용어나 태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운동은 사람들이 타인을 존중하고 차별적이거나 모욕적일 수 있는 표현을 피하도록 하는 각성을 의미하는데, 다양한 집단(예: 성별, 인종, 성적 지향, 종교, 장애 등)에 대한 편견이나 불공평한 대우를 방지하고, 포용성과 평등을 촉진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특정 직업이 남성이나 여성에게만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을 피하고자 성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한다거나, 장애인을 정의할 때 부정적인 뉘앙스를 줄이고 개인을 강조하는 표현이 그것이다. 파급효과가 큰 대중문화나 미디어에서는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을 고치고 현재도 이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나 제도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PC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개인과 집단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도 엄연히 존재한다. 사람들이 솔직한 의견을 말하거나 건강한 논쟁을 피하려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PC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되어, 해학적이거나 해가 없는 표현까지 금지하려는 경향으로 발전할 수 있어 이 때문에 대화와 논의의 자유로운 흐름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예술적 영역에서는 자유로운 창작 행위를 방해할 위험도 상존한다.
또한 PC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대중적인 비난과 배제를 당하는 현상인 ‘취소 문화(Cancel Culture)’가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가들이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가 퇴출당하는 경우나,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적절한 표현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취소 문화가 때로는 공정성보다는 공격적이고 편협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성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대화에서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영역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이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낳을 수 있다. PC가 언어나 겉모습의 변화에 집중되면서, 구조적 문제나 근본적인 불평등 해결에는 소홀해질 수 있다. ‘취소 문화’는 부적절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중요한 사회적 도구임엔 틀림없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 제한, 과도한 여론 재판, 맥락을 무시한 비판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 사례들은 이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보여주며, 균형 잡힌 비판과 대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PC나 취소 문화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때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히 정치적 목적에서 선동적으로 사용되면 계층 간, 성별 간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그만큼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정체성,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는 의미다. 언어에 내포된 의미가 존재의 성격과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속에서 세계나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언어가 가진 지식과 권력의 요소에 대해, 그리고 역설적으로 위선과 허위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언어를 기반으로 한 지식을 권력의 핵심으로 이해한 미셸 푸코의 경우, 개인의 언어가 아닌 시대의 사회적 언어가 구축한 지식(에피스테메)을 권력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한 바 있다. 쟈크 라캉은 무의식을 구조화하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언급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타인들의 인식에 의해 형성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말한 바 있다. 지식으로 정치적 프레임을 선점하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지식이 가진 권력의 힘과 그것이 가진 허구나 위선적 속성을 잘 인지하고 있다.
PC나 취소 문화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경우, 개인들의 표현을 규제하면서도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기검열’의 문화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자칫 표면적인 표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무시하거나 은폐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유지하면서도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종종 그것이 위선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적 편견을 억누르고, 이를 외부에서 요구된 형식적 규칙으로 대체하도록 강요하면서 오히려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일은 사회적 통합을 위해 매우 시급한 과제인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편한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념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PC나 취소 문화가 개인적 언행을 규제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면서 도덕적 우월성에 빠질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PC는 표면적인 변화에 머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취소 문화가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되면 오히려 반동적 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취소 문화가 또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려면 내면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솔직하게 자신의 편견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솔직함이 오히려 편견을 논의하고 해결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PC는 특정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집단적 정체성과 도덕적 우위를 강화하려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관용과 대화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한데, 이는 사회적 연대와 이해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치적으로는 특정 그룹의 차별 해소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아니라, 더 보편적인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구조적 변화를 통해 진정한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
예술과 예술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을 통한 사회적 통합의 맥락에서 많은 일들이 가능할 것이다. 송년과 새해를 맞아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의 화해자가 되기를 다짐해 보면 어떨까?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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