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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69>‘매’와 ‘멍’의 산골짜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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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5월04일 16시41분
  • 최종수정 2024년05월05일 15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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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만발해서
산비탈들 붉게 물들어 있다.
거기, 세상의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퍼질러 앉아
꽃들 흐느끼고 있다.
아니, 아니, 멍든 사람들을 다독여
불러 앉히며 너는 울지 마라,
눈보라 휘몰아치던 때도 가고,
새들도 오지 않았느냐,
봄비 푸지게 내리고,
제, 얼었던 산비탈도 다 녹았으니
세상아, 너는 울지 마라,
겨우내 덮고 잔 불도
햇볕에 내어 펼쳐 말리렴,
보아라, 저 아지랑 산들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흐느끼고 있지 않느냐?
봄, 아지랑
산비탈들 즈믄 세상의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핏빛 울음을 대신 울어주고 있지 않느냐?
       
   --건청 「진달래꽃」  전문

사는 일 어수선한 시대가 되었다. 그냥 평범한 나날을 상식적인 일상인으로 사는 일조차 그리 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살다보면 칼을 품은 말들에 찔려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고, 몇 마디 자신의 소회를 피력했다가 떼 지어 몰려드는 댓글 부대의 비난에 봉착하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은 모두 ‘적’으로 매도되기도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멍’ 많은 시대를 힘겹게 건널 수밖에 없다. 억울한 일, 분한일도 지천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300 여 명 넘는 아 물속에 잠겼다. 별 되고 싶었던, 푸른 산 되고 싶었던 아 고혼 되어 떠도는 세상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억울하고 분한 세상인데도 여전히 해가 뜨고, 달 뜨고 별 뜨는 일상의 순환은 여일하게 되풀 된다. 그런데도, 겉만 보아서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대로 안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기도 한다. 아침면 어딘가 각자의 일터를 찾아 출근을 하고, 학생들은 제각기 자신의 학교를 향해 길을 나선다. 아침 시간 지하철 승객들은 하나같 바쁜 걸음으로 에스컬레터에 발을 올린다. 도심의 아스팔트길은 또 어떤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승용차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천히 바퀴를 굴리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스물 전후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네들은 무슨 긴한 사연 있는 것일까. 마를 맞대고 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까르르 웃어 보기도 한다. 광화문 광장 같은 곳, 시청 앞 광장 같은 곳엔 어김없 무슨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 서서 프랭카드를 펼쳐들고 있고, 구호같은 걸 외치고 있기도 하다.

그래, 그렇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삶의 모습으로 어딘가에 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멍’을 안보는 속에 지니고 있는 것다. 아주 평범해 보는 일상의 모습에 가리워져 잘 보지는 않지만 그들은 제각기 나름의 ‘멍’을 가슴 속 한켠에 지니고 있는 것리라. 그리움의 멍, 슬픔의 멍, 분노의 멍, 절망의 멍……

‘매’가 ‘멍’을 남긴다. 세상을 스쳐가는 바람 속에, 비판 속에, 비난 속에 ‘매’가 들어 있어서 사람들의 가슴에 ‘멍’ 든다. 무슨 특출난 삶을 산 사람 아니어도 사람은 살다보면 여기 저기서 ‘매’를 만나고 ‘멍’을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 국악 중, ‘계면조’의 노래는 슬픈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다. 익은 성호사설 속악조(俗樂條)에서 “계면라는 것은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다.”라고 적어놓고 있다. 눈물을 흘려 그 눈물 얼굴에 눈물자국을 남기기 때문에 그런 노래를 ‘계면조’의 노래라 한다는 것다. 박헌봉은 그의 ‘청악대강’에서 계면조의 노래를 렇게 설명하고 있다. "성음 미려 청고하고 애원처절하며 감상적다. 한스럽고 고독한 애수가 얽히어지 때는 독특한 계면조의 정서어린 창법 더욱 효과적다. 예컨대 우조가 화란춘성의 만물 성장하는 봄을 상징한다면 계면조는 서리 내리는 가을 달밤에 기러기 소리 지저귀는 가을을 상징한 격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조를 남성적라 하면 계면조는 여성적라 할 수 있다.”

명창 김소희의 구음(口音)은 의미 없는 입소리만으로 된 창(唱)다. 창의 내용 사상된 채 소리의 울림만으로 감정을 실어 낸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소희의 ‘구음’은 슬픔을 나타낸 것고 그 곡진함 망극의 경지에 르고 있는 것라 믿는다. 계면소리가 런 것라고 생각한다.

와서 눈 녹은 산골짝에 진달래꽃 만발하였다. 진달래는 잎보다 꽃 먼저 핀다. 떼지어 피어나 나라 산골짝들을 붉게 물들인다. 나는 른 봄, 나라 산골짝에 떼지어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보면, 피 토하듯 피어나는 붉은 꽃무더기 속에서 흐느끼는 곡성(哭聲)을 듣는다. 꽃들 혹한의 추위를 모두 겨내고 격정에 겨워 우는 울음소리를 듣는 것다.

진달래꽃 만발해서/ 산비탈들 붉게 물들어 있다./ 거기, 세상의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퍼질러 앉아/ 꽃들 흐느끼고 있다.

그렇다. 꽃 우는 게 아니라 ‘세상의 매와 멍을 다 품어 안고 퍼질러 앉아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 치러내야 할 ‘매’와 ‘멍’의 아픔을 꽃들 대신 울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다. 사람 세상의 비탄과 억울함 크고 깊은 것어서 사람을 대신해 우는 꽃들의 울음은 결곡한 것 되기 마련일 것다.
다시 봄 와서 붉은 꽃을 피워 올리고 있고, 꽃들 무리지어 온 산천을 덮었구나. 그래,그래, 진달래꽃 흐느끼고 간 나라 산하에 명징하고 선연한 햇살의 때가 와서 ‘매’도 ‘멍’도 없는 산하가 푸르청청 울창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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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5월04일 16시41분
  • 최종수정 2024년05월05일 15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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