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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 시대정신(zeitgeist) <5> 고도를 기다리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2월2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12월20일 17시47분

작성자

  • 김동기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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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끝내 오지 않았다. 마른 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한 덩이만 놓인 무대 위, 구부정한 어깨를 들썩이며 우스꽝스러운 대화로 지독한 기다림을 견디던 두 떠돌이 노인의 바람은 당연한 듯 부서지고 연극은 막을 내렸다. 오늘은 고도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내일은 고도가 오는 걸까? 

 

가지런히 놓인 신발 한 켤레만 남은 결말은 쓸쓸했고 여운은 깊었다. 박수와 환호는 뜨거웠다. 12월 19일 저녁, 서울 국립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첫 공연 현장이다. 에스트라공(고고) 역의 신구와 블라디미르(디디) 역의 박근형이 커튼콜을 위해 무대에 서자 관객이 일제히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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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 전 어느 공연의 기억이 겹쳤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65세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잠실 주경기장에 선 무대다. 기대와 함께 우려도 컸다. 노년기에 접어든 파바로티가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의 클라이맥스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소위 ‘삑사리’라도 내는 건 아닌지를 관람 포인트로 꼽는 기자도 있었다. 모든 시선이 한 곡에 집중됐다. 

 

공연 후반, 마침내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그 큰 무대, 수만 관중이 숨죽였다. 그리고 모든 의심과 우려를 딛고 쏟아낸 목소리, vincerò, vincerò (나는 승리하리라). 소리의 잔향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관중이 몇 분 뒤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울컥 눈물이 고였다. 그날, 어떤 아리아 선율보다 그 순간의 전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세 테너는 다음 월드컵인 2006년 독일을 기약하며 떠났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파바로티는 2006년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두 번의 10년이 더 지나고 다른 장소, 다른 공연이지만 같은 질감의 환호가 담긴 연극을 보았다. 만 나이로도 여든일곱에 이르는 신구와 여든셋인 박근형, 차가운 무대 위를 맨발바닥으로 종종걸음치고 바닥을 뒹굴며 많은 대사와 동작과 감정을 쏟아내며 두 노배우가 기어코 해낸 160분의 도전을.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대사를 잊고 당황하지는 않을는지, 걸음이 휘청이지는 않을는지 노심초사 지켜보던 이들의 안도의 마음, 존경의 마음이 북받쳤다. 기다림에 지친 에스트라공에게 한쪽 어깨를 내어주는 블라디미르처럼, 오지 않는 희망에 기대어 살면서도 서로를 걱정하고 함께 기뻐하는 ‘우리’를 보았다. 그 동지애, 인류애가 좋았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출판된 건 1952년. 저자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 정착했고 연극은 1년 뒤 파리에서 초연됐다. 플롯은 단순하다. 누군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게 전부다. 운명처럼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신의 형벌로 인해 영원히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시포스(Sisyphus)와 다르지 않다.

 

연극은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삶의 우화였다. 모래만 채워진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자’하고 말하지만 갈 곳 없는. 걸핏하면 이유 없이 얻어맞는 에스트라공이 바위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든 모습은 초라했다. 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다가도 멈춰 먼 하늘을 바라보는 블라디미르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간다. 고도를 기다려야하니까.

 

고도는 누구일까? 혹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구원, 누군가에게는 자유, 누군가에게는 부조리한 삶을 버텨낼 의미…. 사무엘 베케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왔고 남프랑스 농가에 숨어 작품의 밑그림을 그렸다.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절 그의 고도는 종전(終戰)의 다른 이름이지 않았을까?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이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그 희망 말이다.

 

연극이 끝났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내며 보았다. 두 배우의 굵게 패인 주름이 분장이 아님을. 그 속에 켜켜이 새겨진 긴 세월 기다림의 흔적을. 그럼에도 그들은 기다림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그 여운은 세밑 차가운 밤, 총총 돌아가는 발걸음에 닿는 어떤 용기 같은 것이었다.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어두운 산 그림자를 밝히고 있었다. 그 위로 2023년이 저문다. 나의 고도는 여러분의 고도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내년에는 모두가 고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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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2월2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12월20일 17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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