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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주가는 상승하는데 엔저가 진행되는 이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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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7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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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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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 및 주가지수의 상승 

 

요즈음 한국에서 일본경제가 살아난다는 논조가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다. 2023년 7월 3일 일본은행이 발표한 지난 달 6월의 ‘전국기업 단기 경제관측 조사(간단히 ‘단관(短觀)’이라 한다)에서 대기업·제조업의 ‘업황판단지수(DI: Diffusion Index)’가 일곱 분기(21개월) 만에 개선을 보였다. 대기업·비제조업의 DI도 다섯 분기(15개월) 연속하여 개선되고 있어 일본 경제 전체에 경기 회복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DI라 함은 일본은행이 일년에 네 번 발표하는 단관(短觀) 조사 항목의 하나로, 기업의 경기 상황에 대한 감각을 나타내는 지수로 사용된다. DI는 경기가 ‘좋다’고 대답한 기업의 비율(%)로부터 ‘나쁘다’고 대답한 기업의 비율(%)을 차감한 값으로 계산되는 간단한 지수인데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데 곧잘 이용된다. 지난 6월의 대기업·제조업의 DI는 +5라는 값을 보였다. 이는 경기가 ‘좋다’고 대답한 기업이 ‘나쁘다’고 대답한 기업보다 5%포인트(p)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제조업보다 먼저 경기 회복감을 보인 대기업·비제조업의 6월 DI는 +23으로 대기업·제조업의 DI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다. 특히 숙박·음식 서비스 분야는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서36%p나 상승하여 2004년 3월 이후 최대의 개선폭을 보였다.

 

주가지수도 크게 상승했다. 닛케이(日經) 평균주가는 대담한 금융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 실시 직전인 2012년말 10,395였는데 2023년 7월 7일 시점에서 32,388로 10년 반 사이에 3.1배 상승했다. 최근의 주가 상승을 두고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기 이후의 최대 상승이라며 일본 언론의 뉴스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주가가 상승하면서도 1달러당 엔화 가치는 같은 기간, 즉 2012년말 86엔에서 2023년 7월 7일 144엔으로 67.4%나 하락(환율이 상승)했다. 주가상승이 경기회복을 뜻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통화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보통인데 일본에선 그와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가 상승의 요인

 

최근 일본의 논의를 참고하면 주가 상승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그 다섯 요인은, ① 엔저에 따른 수출기업의 업적 개선, ② 물가상승이나 기업의 임금인상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탈출에 대한 기대, ③ 코로나19가 수그러듦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 ④ 금융완화 수단의 하나로 일본은행의 주식 상품(ETF: 상장투자신탁) 매입을 통한 주가 떠받치기와 낮은 이자율 유지, ⑤ 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 증가로 인한 주주에의 환원 증가이다(아사히 신문 7월 3일자를 참조하여 필자 보충 정리).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주가 상승에는 이러한 요인을 감지한 해외 투자자들이 비교적 저평가 되었다고 보는 일본 주식을 노려 그 매입을 크게 늘렸다고 하는 배경이 자리한다. 예컨대 미국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이 일본의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한 주식 매입을 늘렸고, 유럽계의 자금도 많이 들어왔다. 해외투자자들의 ‘매입’에서 ‘매도’를 차감한 순매입은 2023년 3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12주 연속 플러스이며 합계 6조엔(약 57조원. 이 기간의 대략적인 환율인 1엔=9.5원 적용)에 달했다. 

 

덩어리 큰 부가가치 창출에서 밀려난 일본 기업

 

아베노믹스에서와 같이 대담한 금융완화로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은 수출기업의 업적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상품의 상대가격 하락에 따른 영업이익 증가에 머물 수 있다. 그 증가된 이익이 산업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진다면 일본 경제 구조도 튼튼해질 여지가 있으나,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산업구조의 혁신이 있었는가 하면 대답은 ‘아니다(No)’에 가깝다. 특히 발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나 금융 분야에서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2023년 세계 주요기업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상위 10위 이내에 미국 기업이 9개나 들어 있고, 상위 50위 이내에 든 일본 기업은 하나도 없다(STARTUP DB 참조). 1위는 애플사(社)로 2조 3,242억달러, 3위가 마이크로소프트, 4위가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5위가 아마존으로 되어 있고, 사우디 아람코가 2위, 버크셔 해서웨이가 6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대만 반도체 대기업 TSMC가 12위, 중국 IT기업 텐센트가 14위, 삼성전자가 23위로 되어 있다. 일본 기업으로 시가총액이 가장 큰 토요타자동차는 52위로 밀려나 있다. 

 

거품경제가 한창이었던 1989년에는 시가총액으로 세계 50위 이내에 일본기업이 32개나 차지하고 있었다. 시가총액 순위 변화로 볼 때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기업의 상대적 약화가 얼마나 두드러졌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1980년대말 거품경제 시기가 일본으로서는 과감한 디지털화 추진 및 핀테크 등의 금융기술 선진화를 추진하여 경제구조를 혁신할 시기였다고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그러지 못했고 아날로그 성향 및 강한 경로의존성이라는 한계를 노정시키며 성장상실기를 겪어 왔다.

 

일본은 금방 거꾸러질 나라는 아님

 

일본이 디지털화 추진에서 뒤처지고 세계를 리드하는 기업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금방 거꾸러질 나라는 아니다. 그 이유로 ① 소재·부품·기계·장비 부문의 강점, ② 종합상사의 건재함, ③ 풍부한 지방 관광자원을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디지털 기업을 받쳐주는 소재·부품·기계·장비 부문은 일본기업이 계속하여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화 진전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이들 기업의 힘도 더불어 발휘된다. 일본의 반도체 기계·장비 생산업체인 디스코와 도쿄일렉트론을 대상으로 하여 앞에서 든 닛케이 주가지수의 변화와 같은 기간인 2012년 12월 말(28일) 시점과 2023년 7월 초(7일) 시점 간의 주가 변화를 보자.

 이 기간 동안 디스코의 주가는 1,492에서 23,105로 15.5배, 도쿄일렉트론의 주가는 1,312에서 20,205로 15.4배나 상승하고 있다. 같은 기간 3.1배 상승한 닛케이 주가지수 보다 다섯 배나 높았음을 알 수 있다. 2022년부터 일본 서쪽 구마모토(熊本) 지역에 TSMC의 대규모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일본의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기계·장비 기업들도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TSMC가 반도체 부문을 리드하고 일본기업이 그것을 받쳐주는 구조 형성이라 하겠다. 

 

두 번째는 일본 종합상사의 건재함이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경제 상황이 침체되었다고는 하나 일본은 여전히 세계 1위의 해외순자산 보유국이다. 해외 자원을 콘트롤 하는 힘도 강하며 무역 거래의 물동량에 대한 영향력도 크다. 세계의 물동량 운송·거래에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일본 종합상사로 이들 기업의 주가 상승도 평균 주가 상승보다 높게 나타난다. 2012년 12월 말(28일) 시점과 2023년 7월 초(7일) 시점 간의 주요 종합상사 주가 변화를 보면, 미츠비시(三菱)상사는 1,657에서 6,832로 4.1배, 마루베니(丸紅)는 614에서 2,400으로 3.9배, 미츠이(三井)물산은 1,283에서 5,236으로 4.1배를 보인다. 같은 기간의 닛케이 주가지수의 3.1배 상승보다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성에 기반을 둔 풍부한 지방 관광자원이다. 코로나19 이전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 추이를 보면 2009년 679만명에서 2019년 3,188만명으로 10년간에 4.7배나 늘어났다(일본 정부 관광국 「訪日外客数」 참조). 그 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에는 412만명, 2022년에는 383만명으로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코로나19가 수그러든 2023년 들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2019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0.8%에 육박했었다. 향후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인한 일본경제 활성화 효과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웃돌 가능성도 농후하다.

 

엔저의 진행 이유와 전망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 30년간(1991~2021) 0.7%라는 낮은 평균 경제성장률을 기록(일본 내각부 자료)하는 ‘성장상실기’에 머물고 있다. 최근의 경기 회복을 두고 일본이 성장상실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성숙기에 접어든 일본 경제는 대대적인 구조변화가 없는 한 급격히 침체하지도 성장하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인들과 관련하여 소재·부품·기계·장비 분야, 종합상사, 여행·숙박업 및 음식 서비스업의 업황은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분야의 부가가치 규모가 상당한 정도에 이를 것으로 여겨지나, 세계를 리드할 정도로 돌출하게 높은 부가가치를 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자국통화의 가치는 경제 전체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얻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본에서 주가가 상승함에도 엔화 가치가 낮은 데에는 해외 투자자들의 순매입 증가와 대담한 금융완화라는 금융 요인에 더하여 실물·서비스 부문에서 일본 기업 부가가치액의 상대적 감소가 있다. 여기서 상대적 감소라 함은 일본기업의 부가가치가 커진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부가가치가 그보다 훨씬 크게 늘어난다고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실물·서비스 부문에서 큰 덩어리의 부가가치 창출이 적다고 하는 것이 엔화 약세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이후 반도체 부활을 외치면서 디지털 분야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일본식 경제 운영의 근저에는 아날로그 감각으로 안전성을 지향하는 의사결정이 두드러진다. 그러한 일본 기업·정부의 의사결정 구조의 속성상 디지털 투자로 인한 부가가치 창출은 다른 국가(특히, 미국)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곧 엔화 약세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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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7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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