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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2> 창의적인 미래 세대와 시각적 문해력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7월10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08일 15시37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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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필자의 친구가 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지인의 개인전에 초대받았다고 걱정스레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 행사에 가보질 않았는데 복장은 어때야 하며, 선물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가 걱정이란다. 고학력의 사회적 리더 그룹에 속하는 친구였지만 미술 문화에 익숙지 않은 탓에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다. 

 

사실 이러한 경우는 그 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일반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 실태조사를 보면 한 해 동안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인구의 비율은 3.8%, 전혀 관람하지 않고 지내는 인구의 비율이 93.3% (2022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달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뮤지엄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그나마 문화적 향유의 대부분은 영화나 공연으로 채워진다. 소외계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바우처 역시 마찬가지다. 바우처의 금액이 많지 않아 뮤지컬과 같이 비싼 공연은 여전히 그들에겐 먼 이야기다. 

 

 이전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K-문화의 장르 중 해외 인지도가 가장 낮은 분야는 시각 예술 분야이다. 국민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화랑 등 전시 공간에 대한 접근 기회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교육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물론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문화예술 분야가 소외된 영역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청소년들이 공연문화나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 등에 열광하는 것을 생각하면 시각 예술 분야에 관한 관심이 적은 이유는 입시제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지만 짧은 수업 시간과 어려운 현대미술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학교 교육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동안 전인교육을 강조하면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시절까지 음악, 미술, 체육 등 모든 분야의 사교육비 지출이 과다하던 시절이 있었다. 웬만한 아이들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무용과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지금 이미 30~40대에 이르렀는데, 예술 향유의 여건이 예전보다는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도 방과후 학교 등을 통해 다양한 예술교육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효과에 대해선 역시 의문이다. 기실 성인이 되어서 문화예술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예술 영역을 다양하게 배우고 경험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국가에서는 교육부의 사업과는 별개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을 통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설립된 이 기관에서는 교육부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지원프로그램으로는 각급 학교에 방과 후 문화예술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이 있다. 국악, 무용, 전통, 디자인, 공예, 사진 등 약 5천 명에 달하는 예술 강사가 매년 전국 1만 개의 학교나 시설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 차원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통계를 보면 이들 사업에는 그간 국가재정 1조 7천억 원을 투입했고 누적 수혜자가 국민 인구의 60% 이상인 3,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진흥원 출범 당시부터 추진되어 온 대표적 사업인 강사파견의 경우는 초기에는 수입이 열악한 작가들의 경제 여건을 돕고, 예술가들을 강사로 파견하여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창의 교육을 염두에 둔 일거양득의 목표를 가진 것이었다. 현재 이 강사들의 상당수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을 가진 교사 요원들이 이를 맡고 있어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미처 다 감당할 수 없는 창조적 교육을 목표했던 초기의 취지가 많이 흐려져 있다. 게다가 이 교사들은 고용계약이 장기화하여 결원이 생기기 전엔 새로운 인력 투입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급변하는 문화적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교육을 실현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노동조합의 틀을 빌어 고용 안정화를 염두에 둔 강사들의 계약조건들은 운영의 난맥상마저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이 교육프로그램에는 디자인이나 사진 등 시각 예술 영역이 일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현대미술은 빠져있다. 정규 학교 수업에서 현대미술에 관한 수업 비중이 낮은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방식이든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각 예술,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는 단순치 않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와 심미적 감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인문학 빈곤 상황을 고려할 때 현대미술에 대한 교육은 예술과 문화, 인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지식과 심성을 연마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시각 예술교육의 중요한 방법론인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는 시각적으로 사물을 보고, 인식하고, 만드는 종합적인 능력인데, 미디어 기반의 비주얼 리터러시는 최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중요한 지식체계를 구성한다. 비주얼 리터러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의 중요한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뮤지엄 교육 차원에서 학생들의 현장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학교 수업에 비해 효율적으로 다각적인 비주얼 리터러시를 교육할 수 있다. 최근 이러한 장점을 인지한 교육 당국이 지역의 미술관 박물관들과 협업 교육을 시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입체적 교육효과와 함께 열악한 뮤지엄의 예산을 간접 지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육부의 예산은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의 거의 10배에 달한다. 국내 세금의 약 20% 이상을 교육재원으로 징수하는 관계로 학생 수는 줄고 있지만 조세수입은 늘어나 교육 분야의 예산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교육의 많은 부분을 문화예술 영역이 감당하고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교육과 문화의 벽을 가변적으로 연계 조정함으로써 예술 분야 예산을 충당하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이 미술관의 방문을 꺼리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문화에 접할 기회는 물론,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자유롭게 미술 문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미술교육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렇게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한 아이들이 결국은 미술애호가 되고 자유롭고 충성도 높은 관람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미래의 미술시장의 구매자나 투자자, 기증자 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위해 기존의 제도를 내실화하거나 신규제도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강사 파견제도는 초기의 정신을 살려 단순한 강사가 아니라 창의성과 역량 있는 작가를 파견하는 방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해외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에듀케이터로서의 뮤지엄’의 개념에 착안하여, 교육부는 교육청과 뮤지엄을 연계시켜 학교의 문화예술교육을 뮤지엄에 전담토록 위탁하는 방안의 검토도 필요하다. 역량 있는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과 ‘비주얼 리터러시’에 정통한 뮤지엄을 활용한 청소년 대상의 현대미술 교육은 미래세대의 무한한 창의력과 종합적인 문해력을 높여 국가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을 확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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