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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에 대한 국회의 역할,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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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30일 17시1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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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운용에서 한국 국회의 역할은 참담한 수준으로 후진적이다. 동아일보 보도(2023.04.18)에 의하면, 21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재정관련 계류 법안 497건의 총 재정부담은 418.6조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의 65.5%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재정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는 300여년 전에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재정부담이 발생하는 어떠한 법안 또는 결의도 내각을 통한 동의가 접수될 때까지는 의회 내에서 검토 자체를 금지한다.”는 의사규칙을 마련하였다. 우리 국회는 아직 이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더구나 현재의 제21대(2020~2024) 국회는 역대 최악이다. 앞의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재정부담에 대한 추정치가 가장 큰 상위 5개 법률안은 모두 야당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그 어느 국회에서도 항상 야당은 정부 여당의 방만한 재정운용을 견제하고자 노력해 왔다. 보수 우파가 집권하면 진보 좌파가 그러하였고, 진보 좌파가 집권하면 보수 우파가 그러하였다. 그런데 진보 좌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국회에서는 오히려 야당이 방만한 재정운용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국회는 국회가 예산을 증액하고자 할 때에는 행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헌법 제57조의 제정 취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제헌국회에서 이 조항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 제헌헌법 제안자 유진오 박사는 “(국회는) 국민의 부담을 경(經)하게 하는 그곳에만 치중하는 것이지 …, 국민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그러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취지”라고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이 조항은 국회의 매연도 예산안 심사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이 재정부담을 초래하는 법안을 행정부 동의 없이 무분별하게 제안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영국 의회는 행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수정할 –증액이건 감액이건 관계없이- 때에는 내각불신임으로 간주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국민적 의지를 다시 확인한다.1) 

결국 영국식 내각책임제에서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거의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에 야당 의원이 위원장이 되는 공공회계위원회(Public Accounts Committee)를 설치하여 비정파적인 결산검사에 대해 거의 무제한적인 권한을 인정한다.2) 그리고 그 위원장을 야당 의원으로 선임하는 관례를 채택하여 행정부의 직무태만과 과실을 정치적 편의에 따라 그냥 넘기지 않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권력구조가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영국의 제도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에서 의회의 재정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미국식 대통령제를 우리나라는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행정부 예산편성권을 규정하는 우리 헌법 제54조의 규정까지 개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2023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가 예산 심의·확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적 근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상당한 오해가 있다. 1789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에는 의회의 재정권(power of purse)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1921년에 예산회계법(Budget and Accounting Act)을 제정하여 대통령에게 예산편성권을 위임하였다. 대신에 회계검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을 신설하여 의회는 결산검사에 주력하였다.3) 이는 19세기 말까지 미국 의회가 예산편성권을 직접 행사한 데 대한 통렬한 반성의 결과였다. 미국은 영국을 본받은 이러한 개혁으로 인해 모범적인 대통령제 예산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고 이후 전 세계의 패권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74년 의회예산법(Congressional Budget Act)이 제정되면서 유명무실하였던 미국 의회의 예산권한은 다시 회복되었다. 이 때 의회는 의회 내에 예산총량과 분야별 배분의 조정기능을 담당하는 예산위원회(Budget Committee)를 설치하였고, 재량지출과 의무지출을 구분하여 상임위원회별로 그 역할들을 구분하였다. 또 의회의 예산심사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를 설치하여, 이 기관이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률에 대해 객관적인 비용추계서를 작성하도록 하였다. 

재정적자가 심화되자 1980년대 이후에는, 미국 의회가 자신의 예산결정을 스스로 제한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입법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입법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1985년의 ‘균형예산 및 재정적자 긴급통제법(Balanced Budget and Emergency Deficit Control Act)’, 1990년의 ‘예산강제법(Budget Enforcement Act)’, 2011년의 예산통제법(Budget Control Act) 등이 있다. 이 법령들을 통해 미국 의회는 의무지출에 대해서는 PAYGO(Pay-As-You-Go) 원칙을, 재량지출에 대해서는 지출한도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기 시작하였다.4) 이처럼 미국 의회는 재정건전성을 제고하는 자기제어적 노력을 통해 의회의 예산과정이 국민적 신뢰를 받도록 하였다. 

 

이처럼 수 백 년에 걸친 영국과 미국의 예산제도 발전과정을 우리 국회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왜 영국 의회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스스로 예산을 편성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왜 미국 의회는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예산편성권을 행정부에 위임했을까? 그 간 미국 의회는 재정운용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하였는가? 우리 국회는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직 국회의 예산권한 강화에만 귀를 기울일 뿐 우리 국가의 미래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170여년에 걸친 역사적 경험도, 우리 국회의 예산권 강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더욱 강하게 한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후 170여년간 매우 혼란한 헌정체제를 경험하였다. 1959년 제5공화국 출범 이전까지 프랑스는 허약한 행정부와 잦은 내각교체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5) 강력한 행정권을 요구한 드골(De Gaulle)의 개헌 요구에 따라 성립한 현재의 제5공화국 헌법은 행정부가 사실상 입법을 주도하고 강력한 예산편성권을 행사하도록 허용하였다.

 

우선 법안에(재정관련 법안 포함) 대해서는, 의회의 심의절차에서 행정부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 의회의 의제에 대한 행정부의 지배(제48조), 의회 내 상임위원회 개수의 제한(제43조), 행정부가 원하는 개정사항만을 포함한 법안에 대한 패키지 투표(vote bloqué)(제44조), 의회를 해산하는 신임투표와 연계된 행정부 주도의 의안 처리(제49조) 등이 규정되어 있다. 예산안에 대해서는, 일반 법안보다 더 확고하게 행정부의 우위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40조는 정부의 지출을 증가시키거나 수입을 감소시키는 개별 의원의 제안을 금지하며, 제47조는 의회가 70일간의 예산심사 기한을 준수하지 못하면 행정부가 명령(ordinance)으로서 예산을 확정할 권한을 가지도록 하였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재정적자를 제한하는 재정준칙의 채택도 주저하고 있으며, 국회 내에서 합리적인 예산조정 메카니즘도 구비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년 국회는 행정부 예산안에 대해 많은 사항들을 수정하고 있다. 2023년도 예산안의 경우 국회는 318개 사업에 대해 사업당 평균 430억원을 감액하였고, 1,094개 사업에 대해 사업당 평균 205억원을 증액하였다. 개별 국회의원들이 국가 경제 전반에 대한 정책적 논의보다 세부사업의 예산들을 수정하는데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이들이 지지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편파적 결정이 아니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2022년 12월 18일에 게재한 “되풀이 되는 여야(與野) 예산전쟁,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국가미래연구원, News Insight)의 결론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예산제도에 대한 국제적 비교연구에 정통하였던 세계은행의 리너트(Ian Lienert) 박사가 2010년 12월 한국을 방문하여 발표한 논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6) 그는 많은 예산권한을 가지고 있는 미국 의회의 예산제도를 한국이 본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회는 전략적 관점에서 거시예산 심사에 주력하고, 미시예산에 대해서는 행정부의 편성권을 존중하여 사후점검과 감독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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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취지를 감안하여 1960년 4·19혁명 직후에 채택된 내각책임제 헌법 제71조에 의하면, “예산안을 그 법정기일 내에 의결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국무원에 대한 불신임결의로 간주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2) 상임위원회에서는 정책 내용을 논박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공공회계위원회에서는 정책이 수행되는 방법에 -적법성, 효율성 그리고 효과성- 대해서만 논의할 수 있다. 

3) 2004년에 회계검사원은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4) 페이고(PAYGO) 원칙은 ‘얻기 위한 대가의 지급’을 의미하는 말로서, 특정 의무지출을 증액하기 위해서는 다른 의무지출을 감액하거나 증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제1공화국(1792~1804)과 제2공화국(1848~1852)은 독재체제 전환으로 종말을 보았다. 제3공화국(1870~1940)에서는 내각의 평균 수명이 8개월에 불과하였고, 제4공화국(1946~1958)에서는 국회 내에 안정된 다수가 존재하지 않아 결국은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였다. 

6) Lienert, Ian, “국회의 예산권한: 과연 한국은 미국 의회의 관행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재정포럼」, 2013년 11월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pp. 6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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