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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 위기를 바라보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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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4월05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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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을 기록했다. 세계 최저에 최초의 기록이다. 70년대 100만명대이던 출생아 수가 작년엔 25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80, 90년 대에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 주면서까지 산아제한을 장려하던 것이 불과 30년 만에 상황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퍼부은 예산이 280조원이라고 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산탄총알 쏴대듯 현금을 살포해도 효과가 없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지켜 볼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출산율 저하가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70년대 초 평균수명이 62세가 채 안 되었는데 현재 83세에 달하고 있다. 그 시대의 부모들은 환갑 이전에 은퇴하고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는 것이 삶의 패턴이었다. 그러니 환갑이 큰 잔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100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 결과 인구 구성 그래프의 모양이 밑바닥이 넓은 피라미드에서 수명의 연장에 따라 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날씬한 종모양(입구가 좁고 기다란 모양)을 거쳐 항아리 모양(입구와 바닥이 좁고 배가 불룩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전세계에 불과 30년 만에 이렇게 변화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삶의 기본 틀이 되는 각종 연금, 의료보험, 학교를 비롯한 교육제도 등을 설계하기 시작한 70, 80년 대에는 감히 이런 변화를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적게 태어나고 오래 사는 걸 설계자들이 제대로 반영했을 리가 없다. 아마 AI가 있었다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현상인 것이다.

 

그러니 출산률 높이겠다고 돈을 뿌릴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재설계(리모델링)를 시급히 해야 한다.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을 부담할 생산 인구가 빠르게 줄고 피부양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니 견딜 수가 없다. 이에 따라 빠르게 개혁해야 한다. 군대, 학교, 행정구역 등에도 인구의 변화에 따른 수요공급의 변화와 개편을 꾀해야 한다.   

 

출산에 대해 보상하듯 현금 지원을 하는 건 오랫동안 비판해 왔듯이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불요불급(不要不急) 하지도 않은 대상한테 돈이 뿌려지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출산, 육아, 교육, 의료를 원활히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데 투자해야 한다. 현금은 소모성이고 인프라 투자는 축적된다.

 

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은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출산 장려할 것이 아니라 육아, 놀이, 교육, 의료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투자를 하고 지역에서 일거리가 생기고 돈벌이가 되도록 해야 사람이 모인다. 또 현금이 아니라 산, 바다, 강, 심지어 폐교, 폐가까지도 자기 지역에 있는 것을 활용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영월군에서는 20개가 넘는 폐교를 활용해 각종 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며 사람을 키우고 모이게 하는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창작마을’ ‘마을호텔’ ‘공동 숙박시설’ ‘학교밖 교육’ 등 폐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강원도는 산림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 때는 노숙자들을 모아 일을 시키고 자립 자금을 모으게 하는 사업도 벌인 적이 있다. 청년들도 산림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찾아 모여 들게 해야 한다. 

 

일본의 한 시골지역 지자체에서는 청년들에게 폐가를 고쳐 주택을 제공하고 한 3년 급여를 주며 그 지역에 필요한 일을 시키는 사업을 했더니 그 후에 70%의 청년이 정주했다고 한다. 그 시골에서 나름 살아갈 희망과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신안군에서 희망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시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생기고 있다. 힘든 노동으로 중단하는 염전으로 주민참여형 태양광 발전 사업을 벌여 주민들에게 연금을 주기 시작했더니 전입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새로 전입한 가정에 대해서도 지급하니 전입이 늘 수 밖에 없다. 소멸에서 전입증가 지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소위 ‘햇빛연금’이라고 한다. 신안군은 같은 방법으로 풍력 발전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바람 연금’이다 

 

이 외에도 굴 양식 시설을 설치해 이주민들에게 공동 양식으로 훈련한 후에 시설을 임대해 주고 있다. 또 청년 어부들에게는 선박 임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노후염전, 햇빛, 바람, 바다가 다 일거리를 만들고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자원이 된 것이다. 꿈도 꾸지 않는 기업을 유치한다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걸 활용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ifsPOS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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