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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3월05일 22시18분
  • 최종수정 2023년03월05일 22시23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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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미명 아래 무한정 풀었던 통화의 효과가 인플레이션으로 되돌아 왔다. 사실 이번 인플레이션 이전까지 십수 년 동안 통화와 인플레이션의 관계는 경제학의 이론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제로 금리, 나라에 따라서는 마이너스 금리를 천명하면서 통화를 무작정 풀어도 물가는 오르지 않았다.

 

 물가는 화폐와 재화의 교환비율이기 때문에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락한다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기본인데 그 기본이 들어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물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과 에너지 공급에 애로가 발생하면서 매우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경제 원리의 귀환이다. 그것도 험악한 얼굴로.        

 

사람이 경제다

 

근자의 인플레이션과 관련하여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 경제주체들의 생각(기대)의 중요성이다. 20세기 후반 경제학에 일어난 혁명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기대)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소위 합리적 기대 혁명이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합리적 기대혁명(rational expectations revolution)’의 요체는 경제주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해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기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에는 미래가 과거와 크게 다르면 오차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다. 

 

기대가 ‘합리적’으로 형성된다고 해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나 선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투기와 거품이 그 가운데 대표적이다. 우리 국민은 죽도록 미워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투기는 가장 중요한 시장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투기를 경제학에서는 자본이득 곧 가격 변동으로부터 이득을 얻고자 하는 선택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주식의 가격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이득을 얻는 것은 정의상으로 투기이다. 우리의 경우 말도 많고 문제도 많은 주택시장의 투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투기는 미래의 자산 가격 변동에 대한 예상(기대)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시장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리라고 기대하면 미래에 시세차익을 누리기 위해 시장참여자들은 그 주식(부동산)을 매입할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주식(부동산)가격은 현재에 미리 상승한다. 현재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대되었던 가격상승은 완화된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대의 변화가 아무런 근거 없이 일어나는 거품의 경우에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예측(기대)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거품을 ‘합리적 거품(rational bubble)’이라고 한다. 그런데 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장참여자들이 생각한 바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합리적인 거품은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투기는 해롭기보다 이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모든 자원배분을 시장원리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이론가들은 투기의 위력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여 가격이 상승할 것이 예상되면 당연히 그 전에 구매하고자 하는 (투기)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한다. 가격이 상승하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요는 감소하고 공급은 증가하면서 시장은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회귀한다. 

 

다시 말해 가격기능의 근저에는 투기가 있고 그 기능을 정책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정책의 성공확률이 높다. 따라서 정책을 설계할 때에는 반드시 시장참여자들의 기대가 정책과 함께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고려하여야만 한다. 이를 거시경제학에서는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이라고 한다. 시장참여자들의 기대를 도외시한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이와 같은 경우였다. 정책을 담당하고 있던 인사들이 매번 시장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더니 더욱더 과격한 규제로 맞서곤 한 결과가 무엇이었는가.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사람이 경제다. 문 정부는 경제를 망치기 전에 국민을 사람 취급하는 것부터 배웠어야만 했다. 

 

자신들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무슨 로봇처럼 따르리라고 보는 것이 정책실패의 첫걸음임을 몰랐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물경 삼십 번 정책이 바뀌었는데도 정책효과가 반대로 나오면 한 번쯤 성찰할 만도 하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책이 바뀌면 시장참가자의 생각(기대)도 바뀐다.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보다는 루카스 비판이 말하는 것처럼 국민을 사람대접하는 정책이 성공한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이 불처럼 환하게 보여준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기제(機制)는 바뀌었는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20세기의 주류 거시경제학이 과연 21세기에도 옳은 것인가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와 같은 의문의 핵심은 화폐와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느슨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이론은 화폐수량설이다. 그리고 화폐수량설에서 주목하는 인플레이션의 요인은 화폐공급 곧 통화량이다. 시장참가자들이 항상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도 통화량이고 그 증가율이다. 

 

그와 같은 관심이 당연한 것은 물가수준은 재화와 화폐의 교환비율이고 화폐공급이 증가하면 한 단위의 재화와 교환되는 화폐의 양 곧 물가수준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요와 공급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수시로 변하는 단기에 물가와 통화량의 일대일 관계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길게 보면 틀린 이론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학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화폐공급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그와 같은 긴밀한 관계가 깨진 것 같은 현상이 새 밀레니엄 들어 나타났다.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통화량을 다량 풀었다. 그리고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정책이자율을 0%로 내려 유지하였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통화를 얼마든지 풀 용의를 보인 것이 먼 과거가 아니다. 

 

그러나 통화를 무한정 증가시킬 수 있다는 중앙은행들의 그와 같은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10년 이상 매우 낮게 유지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돈을 찍어 재정에 사용하자는 무모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모를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돈을 찍어내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데 무슨 문제냐는 강변이다. 이 나라에서도 몇 년 전 어떤 국회의원이 그런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론이 잠자는 사이 그런 광기가 횡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론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고려하여야만 하는 요소들이 많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세계금융위기, 유럽의 재정위기, 코로나 위기 등을 겪으면서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잠자고 있었을 뿐 화폐수량설이 함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기제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신과 함께 코로나 위기가 끝나가자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꿈틀거리면서 풀린 통화량의 인플레이션 효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국제시장에서 유가가 상승하고 이자율 특히 인플레이션 기대가 크게 반영되는 장기이자율 또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곡물과 에너지 공급에 애로가 나타나자 시장참가자들의 인플레이션 심리(기대)가 크게 깨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불현듯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볼커의 추억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이제 기준금리 올리기 경쟁을 하고 있다. 가장 앞장서고 있는 것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이다. 연준에게는 1970년대 유가충격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의 트라우마가 깊다. 1970년대 내내 괴롭히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980년 3월에 14.8%로 정점을 찍었다. 1980년대 초반 그와 같은 인플레이션을 잡은 사람이 1979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연준 의장을 지낸 볼커(Paul A. Volker, 1927-2019년))이다. 

 

볼커는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s rate)를 1979년 11.2%까지 인상한 다음 1980년 6월에는 20.0%까지 올렸다. 그 덕분에 인플레이션은 1983년 3%까지 하락하였으나 실업률이 10%에 이르는 등 1981년과 1982년 극심한 불황이 초래되었으며 엄청난 사회적 저항이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시작하자 연준은 1982년부터 긴축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하였고 경기는 1983년부터 살아나기 시작하여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호항이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1980년대 이후 볼커의 탈(脫)인플레이션 정책은 하나의 교과서로 남아 있다. 볼커의 고금리는 시장의 인플레이션 심리(기대)를 꺾음으로써 빠르게 실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지금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경쟁하고 있는 것은 ‘볼커의 추억’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여 인플레이션 심리를 꺾음으로써 실제 인플레이션을 잡고 그 결과로 나타날 불황은 빠르게 지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의 고금리 정책의 성공은 그로 인해 초래될 불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먼저 앞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무한정 푼 통화량 곧 수요충격이다. 다음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식량 가격과 유가 상승 곧 공급충격이다. 이와 더불어 보호무역 추세가 강화되면서 붕괴되고 있는 공급망이 공급충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화량을 감축하고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분명 통화팽창에 따른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의 진정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효과는 빠를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공급망의 붕괴에 따른 공급충격의 효과는 전형적인 수요관리정책인 고금리에 따라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인 전쟁이 언제 끝나고 공급망의 언제쯤 재정비되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지금 고금리만 가지고 인플레이션을 단기간에 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착시일 수 있다. 

 

참고로 볼커가 탈(脫)인플레이션에 성공한 1980년대 초반 1970년대의 유가충격의 효과는 거의 소멸하고 있었다. 1985년이 되면 실질유가가 유가충격 이전의 수준에 거의 접근하고 있었다. 따라서 197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인 공급충격은 1980년대 초반 소멸하고 인플레이션 심리가 주된 실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긴축 통화정책의 효과가 당시 그토록 빠르게 나타난 이유이다. 지금을 그때와 혼동하지 않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힘들어 하는 곳은 부동산시장이고 부채가 적지 않은 중소상인은 울상이다. 관계기관은 고금리에 따른 불황과 서민의 고통에 좌불안석인 듯하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은행의 수익이다. 경제는 불황인데 은행의 수익은 사상 최고라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그리고 그에 따른 수당의 규모가 일반 서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이 금융기관인 은행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경기 역행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불황에 수익이 높다는 것은 불황을 더 깊게 하고 호황에 수익이 낮다는 것은 호황을 더 확대하는 반사회적인 수익구조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은행의 수익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고 듣고 있으나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대통령과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질타하고 은행과 통신사의 과점에 따른 폐해를 지적하고 나섰다. 은행과 통신사의 과점을 허물기 위한 정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물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경쟁력이라는 미명아래 김대중 정부는 은행을 지금의 과점체제로 대형화하여 재구성하였다. 

 

그런데 우리 은행들이 국제경쟁력을 획득하였는가? 은행들이 외국에서 돈 벌어 온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국제경쟁력이 향상되었다는 전언도 없다. 결국 경쟁을 제한하고 대형화하여 과점체제를 만들어서 피해는 소비자가 보고 국제경쟁력이라는 효과는 전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거래에 서툰 노인들이 많이 찾는 지점들은 폐쇄하고 고객 서비스를 줄이는 것이다. 은행들이 사회적 소명을 망각한 지가 꽤 오래된 것이 사실이다.

        

경쟁이 없는 시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책당국의 겁박하는 듯한 언사는 결코 유익하지않다. 시장의 불완전함은 당연히 시정해 나가야 한다. 경기 역행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은행 의 영업행위도 바람직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럴수록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을 극소화하면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자세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급조한 정책은 상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할 일을 하지 않고 정책은 실패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 측면이 있으나 시장은 시장기능에 따라 정상화 해야만 한다. 

 

아무리 불완전한 시장일지라도 계획경제보다 나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장을 통해 경제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시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시장을 통해 번영했고 앞으로도 그러 하여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 시장경제를 수십 번 외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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