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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형벌의 완화 정책은 신중히 진행되어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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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9월25일 17시10분

작성자

  • 한만수
  •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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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형벌 완화에 관한 정부의 입장

정부가 기업활동과 외국인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기업인의 가벼운 법 위반에 과도하게 부과되는 형사 처벌을 행정제재로 바꾸거나 아예 폐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알려졌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관련성이 적은 조항 중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한 조항들이다. 예를 들어, (i) 물류시설법상 인가 없이 물류터미널 건설 공사를 할 때 부과되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ii) 식품위생법상 식품접객업자가 호객 행위를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규정도 폐지하는 대신 허가·등록 취소나 영업정지를 부과하며, (iii)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설립·전환 신고 의무, 지주회사 사업내용 보고의무, 주식소유·채무보증현황 신고의무 등을 위반하면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를 과태료 부과로 바꾸고, (iv) 엽연초생산협동조합 관계자가 관계 공무원의 검사를 거부·방해하는 경우, 등기를 게을리하는 경우, 거짓 보고를 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200만원 이하 과태료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다른 개선 방안으로, 벌금 부과에 앞서 행정제재를 선행하는 제도도 도입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하도급법상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구매확인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하도급 대금의 2배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 벌금 부과에 앞서 과징금·시정명령을 먼저 부과하도록 개정하고, 대규모유통업법상 납품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방해하는 대기업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개정하여 과징금·시정명령을 먼저 부과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공정무역조사법상 원산지 표시 대상물품의 수출·수입 관련 위반행위의 미수범까지 5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데, 그 형량을 낮추고, 환경범죄단속법상 오염물질을 배출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망의 경우에만 기존 형을 유지하고 상해의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낮추며, 화학물질관리법상 업무상 과실로 화학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사망사고는 기존 법정형인 10년 이하 금고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유지하지만, 상해사고의 법정형은 7년 이하 금고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완화하는 것과 같이 형량이 과도한 경우는 완화 또는 차등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한다.

과도한 형벌 규정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경영자들의 기업활동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대내외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연합뉴스 2022년 8월 26일자 인터넷 기사) 

2. 행정법규 위반죄(법정범)에 대한 형사처벌의 남발은 경제활동 본연의 목적 달성을 저해할 수 있다

범죄에는 자연범과 법정범이 있다. 자연범은 객관적 사실 만으로 국가, 사회 또는 개인의 법익의 침해가 인정되는 범죄로서 살인, 절도, 사기 등과 같이 대부분 형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에 비해 법정범은 어떤 행위의 이행만으로 타인의 법익침해를 쉽게 인식할 수 없는 경우로서, 특별한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설정된 행정 법규의 위반을 범죄로 규정한 경우이다.

한편, 형벌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2가지이다. 하나는 범죄에 대한 응보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범죄의 예방이다. 응보의 기능은 주로 자연범의 형벌에 대한 기대이고, 행정법규 위반의 법정범에 대한 형벌의 기능은 예방이 핵심이다. 그런데, 경제활동 내지 기업활동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행위에 대해서 가해지는 행정 형벌을 예방적 목적으로 남발하는 경우에는 자칫 그 경제활동이나 기업활동 본연의 목적 달성을 해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농작물의 해충을 잡는다고 독한 농약을 너무 많이 살포하면 농작물 자체가 고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저인망식의 단속법규로 인해 기업활동 자체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국민경제의 원활한 운용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법정범의 처벌을 남발하는 데 따른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법정범은 그 구성요건 사실 자체만으로는 위법성을 쉽게 인식할 수 없으므로, 국민들이 그 위반죄의 요건을 알지 못하는 경우, 이른바 ‘법률의 부지(不知)’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의 부지는 범죄의 위법성을 조각(阻却)하는 사유가 될 수 없지만, 내가 알지도 못하는 법규의 위반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국민들은 행위 자체를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사실의 착오)에 못지 않게 억울해 한다. 특히 경제활동에 따른 처벌법규에 그러한 것들이 많다. 이에 대한 제재를 행정제재의 대상으로 돌려 주고, 형사처벌은 가능한 한 자연범죄로서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3. 경제형벌 법규의 완화는 옥석을 가려서 세밀하게 추진하여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경제행위는 수많은 소비자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리는 세심하고 과감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장애를 입은 사건은 기업의 영업행위에 있어서의 고의나 과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책임진 정부가 이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상행위는 어느 정도 ‘기망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잘못된 인식은 위험한 행위나 위해한 물질의 대량소비가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용인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제형벌의 제재는 옥석을 가려 꼭 필요한 처벌 법규까지 없애버림으로써 자칫 국민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위험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반대로 타인의 행위를 결정할 권리나 권한이 없는 자에게 타인의 고의적 행위나 과실에 기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것도 형벌 체계의 근간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삼가야 할 일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고의범과 과실범을 구분해서 기업활동을 하면서 고의로 다중의 안전에 위해를 가한 행정법규 위반범을 관용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나쁜 마음을 먹고 소비자에게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법감정이 일반화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정부의 경제형벌 완화 방안 중의 하나로 대규모유통업법상 납품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방해하는 대기업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형벌의 부과 전에 과징금·시정명령을 먼저 부과하는 것으로 개정한다는 데, 거래상대방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은 명백히 그 행위의 내용을 인식하고 저지르는 고의적 행위이다. 

이러한 고의적 행위에 대한 처벌을 행정규제로 완화하면 그런 행위가 만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는 방향이다. 반면에 과실, 즉 주의의무의 해태로 인해 행정법규를 위반한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형사처벌 대신에 행정벌이나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를 하는 것이 ‘과실범은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는 형사이론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둘째, 시간·공간적으로 광범위한 피해(massive damages)를 초래할 수 있는 자연범에 가까운 고의범에 대한 처벌은 완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발표된 정부정책에 의하면, 환경범죄단속법상 오염물질을 배출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완화해 사망의 경우에만 기존 형을 유지하고, 상해의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 수위를 낮춘다는데, 오염물질을 배출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와 재산에 오랜 기간에 걸쳐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인지할 수 있고, 그 행위는 살인이나 상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범적 성질을 갖는다. 이러한 자연범에 가까운 다중살상행위의 처벌을 완화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정당화할 수 없으므로 추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셋째, 형사처벌 이론 면에서 위법성과 책임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중대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위법성과 책임성을 의제하는 것도 곤란하다. 최근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처벌조항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 법에 의하면,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로서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중대산업재해의 발생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 

또한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과 관련하여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하여 그 수급자나 수탁자가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고가 발행한 경우에도 해당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고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중대재해처벌등에 관한 법률 제9조 제3항). 

우선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라는 말은 애매하고도 불확정적인 개념으로서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으로 삼아서는 곤란한 것이다. 형사처벌은 누가 보아도 명확한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지우는 것이다. “실질”이라는 말은 그에 포섭되는 사실관계가 명확한 개념이 아니라 재판관의 마음에 따라 그 범위가 신축적이므로 형사처벌 조항에서 사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자칫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라는 말이 위탁이나 하도급을 했으면 위탁자나 도급자가 수탁자나 수급자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느슨하게 해석하게 되면, 수탁자나 수급자의 업무로서 위탁자나 도급자가 임의로 결정할 수 없는 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이 되어 형사이론의 근본에 반하는 결과가 된다.

타인의 업무수행을 내 일처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음이 민사법의 기본법리이다. 공사도급자는 수급자가 어떤 기술자를 몇 명 동원하여 어떤 작업환경에서 일을 하는지 일일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연하다. 그렇다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하여 그러한 권리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법률의 충돌이 발생하고 현실과 법 간에 괴리가 생겨난다. 이러한 형사책임을 지우려면 그 전제로 민사거래법에서 위탁자나 도급자가 수탁자나 수급자의 업무조건을 결정할 권리를 유보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수급자의 고의나 과실로 발생한 결과에 대해 도급자에게 형사법적 책임을 지우려면 수급자의 행위의 내용을 원청업자가 결정 할 수 있는 권리나 권한을 갖도록 거래법적 면에서의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거래구조(특히 하청거래)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공사를 수주하여 여러 단계의 하도급을 주고, 경제력이나 관리 능력이 취약한 수급자가 공사를 시행하다가 대형 살상사고를 내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러한 경우 원청 대기업의 관리직이나 경영진은 실제로 공사의 진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형사이론상 책임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 능력도 없는 하수급자 보고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도 법감정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본 법리에 반하지 않고 이러한 부조리를 타개하는 방법은 그런 식의 하청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거래구조를 짜는 것이다. 직접 공사하지 않을 것은 수주하지 않도록 하고, 직접 시공할 중소업자에게 직접 수주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상으로 경제형벌의 완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해 보았는데, 이러한 이론적인 고려 외에도 국민 일반의 법 감정과 세계 선진각국의 추세 등을 살펴 신중하게 추진함이 필요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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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9월25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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