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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시시콜콜한 정책 지시는 곤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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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7월21일 17시10분

작성자

  • 이상돈
  •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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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경제학, 역대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배운다

‘경제 못 살리면 정권 빼앗긴다’는 철칙, 항상 명심해야 할 일

전 정권에서 물려받은 악조건 탓하지 말고 큰 흐름 바로 잡아야


대통령은 대외정책을 통해서 자국의 안보를 지켜야 하고 경제를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대통령은 누적되어 온 대외정책과 경제 환경을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물려받은 것을 탓하려면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누적되어온 문제를 고치겠다고 해서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한다. 대통령이 전세 대출 이자율을 올리지 말라고 시시콜콜하게 지시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은 경제의 큰 흐름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3월 대선’ 시점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같은 이자율 상승과 인플레는 예상했던 일이 아닌가. 파티는 이미 끝난 것이다.(The party is over.)

 

아래 도표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실업율과의 연관성을 잘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은 2차 대전 후 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시기였고 경기는 호황이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불황이 닥쳐와서 그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했다. 잠시 나아지던 경기는 1960년 들어서 다시 나빠졌고, 그 해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리차드 닉슨 부통령은 존 F. 케네디 상원의원한테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닉슨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The Fed)가 이자율을 인하해 주었으면 자기가 당선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케네디/존슨 행정부 8년 간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특수와 사회복지 지출로 인한 호황이었는데, 그것은 심각한 재정고갈과 인플레를 후유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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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선에서 승리한 닉슨은 베트남 전쟁과 복지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악화와 인플레를 인계받았다. 닉슨은 경기침체를 막지 못하면 재선에 실패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1971년 8월 15일 달러화 금(金)태환 중지 조치는 그런 극적 조치가 없이는 재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닉슨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었다.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났고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나 그 때부터 불황이 심화되어서 1976년에는 실업률이 7%를 돌파했다.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가 승리했다. (도표에서 보듯이, 실업율이 6%를 넘으면 집권당 후보가 패배했다.)

 

카터 대통령은 사회간접자본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처하는 등 초기에는 의욕을 보였으나 곧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체가 비관론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란 사태로 2차 오일 쇼크가 터지자 이자율과 인프레가 폭등했고 카터는 속수무책이었다. 강성 노조가 지배해온 미국 자동차 산업은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지 못했고, 자동차 3사 중 가장 취약한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의회는 크라이슬러에 구제금융을 주기로 해서 자동차 메이커 파산이라는 파국은 면했으나, 이는 미국의 제조업이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1980년 대선에서 압승한 로널드 레이건은 전에 없는 인프레와 고이자율을 인계 받았다. 폴 볼커가 이끄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고(高)이자 정책을 고수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석유류 가격 통제해제와 에너지 산업 규제완화, 그리고 중동 산유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유가(油價)를 잡았다. 자동차 산업 등 미국 제조업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 들어가서 대통령 선거가 있는 1984년에는 경제지표가 개선됐고 레이건은 재선에 성공했다. 레이건 임기가 끝나가는 1988년 미국 경제는 완전히 회복됐고 조지 H.W. 부시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서 공화당 전성기를 구가했다. 

 

동유럽 몰락을 연착륙으로 이끌고 걸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부시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당연하게 재선할 줄 알았다. 하지만 1991년 말부터 다시 불황이 찾아들었다. 자신이 재선에 실패하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달성하기 위한 긴축에 집착하다가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부시의 재선 실패는 큰 교훈을 주었다. 정직한 재정정책을 추구하다간 재선에 실패한다는, 아주 좋지 않은 교훈을 남긴 것이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있었던 8년간은 냉전과 테러와의 전쟁 사이에 있었던 황금 같은 태평성대 시기였다. IT 산업이 미국 경제 부흥을 주도했고, 전임 부시 정부가 이루어 놓은 WTO 체제와 NAFTA로 인한 세계화는 미국에게 젖과 꿀을 가져다주었다. 윈도(Window) 95가 나온 다음해에 치른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군비감축과 호황 덕분에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미국 재정은 흑자를 기록했다. 경제지표로만 보면 민주당이 정권을 연장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클린턴이 여자 인턴과 벌인 스캔들로 인해 앨 고어 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실패했다. 대선 후 앨 고어는 클린턴한테 당신 때문에 내가 떨어졌다고 화를 냈다는데, 그럴 만도 했다.   

 

재정흑자 정부를 인수한 조지 W. 부시는 9.11 테러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마주하게 됐다. 무모하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는 경제운용을 정직하게 하다가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 부시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려 했으나 아들 부시는 감세와 금리 인하로 경기를 살리고자 했다. 그런 식으로 경제를 운용하면 큰 일 난다고 경고한 폴 오닐 재무장관을 부시는 해임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침묵으로 부시의 무모한 경제 운용에 동조해서 그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그 결과는 부동산 버블 파열과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그로 인한 초대형 불황이었다. 

 

2008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한 게임으로 민주당 후보 오바마가 당선됐다. 오바마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인들을 단죄하겠다고 공언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다시 겪을 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 오바마 정부는 실패한 금융기업에게 구제금융을 퍼주고 심지어 국유화를 통해 부채를 탕감해 주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회사를 망치고도 천문학적 급여를 챙겨간 금융기관 임원들은 단한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양적 완화라는 전대미문의 돈 풀기로 경기를 살려서 2012년 대선에서 재선하는데 성공했다. 

 

오바마 정부가 끝난 시점에 미국 정부가 지고 있는 누적 부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고 코로나 19가 세계경제를 강타했다. 이제 그 후폭풍을 전세계가 감당하게 됐다. 나는 그래서 재정적자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떠드는 정치인의 무책임, 그리고 대중의 무모한 도덕적 해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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