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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오페라 이야기 <9> 오페라 속에 담은 시대 정신-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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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25일 08시16분

작성자

  • 이소영
  • 솔오페라단 단장,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석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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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신동(神童), 불세출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를 일컫는 말이다. 

제 아무리 음악의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시작한 그는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626편에 달하는 다량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양뿐만 아니라 천상의 음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아름답고 순수한 그의 작품은 구조적으로도 완벽해 천재라는 말조차 아쉬울 정도다.

 

이렇듯 완벽한 천재로 추앙받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그리고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를 모차르트 3부작이라 부르지 않고 대본가의 이름을 따서 다 폰테 3부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세 작품들에는 시대의 풍운아 로렌초 다 폰테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탕과 일탈로 젊은 날을 보낸 그에게 성(性)을 소재로 한 이 세 작품의 스토리는 오히려 통상적인 로맨스 보다 풀어내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와 24년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절친이자 추종자였던 로렌초 다 폰테 역시 그를 능가할 만큼 엽기적인 인물이다.

 

그는 174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교 가난한 유태인 가죽상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엠마누엘레 코네글리아노였지만 그의 아버지가 재혼하기 위해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세례를 주관한 성직자의 성을 따르던 당시 관습에 따라 로렌초 다 폰테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어린나이에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재혼한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다 폰테는 종교에 심취하다 24세에는 사제 서품까지 받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유부녀와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간통으로 사생아를 얻은 것도 모자라 사제의 신분으로 자신의 정부(情婦)와 함께 직접 매춘업까지 한 것이다. 결국 베네치아 당국으로부터 “매춘 및 부녀자 납치감금”으로 고소당한 그는 15년간 베네치아에서 추방당한다.

 

재빠르게 오스트리아의 고리치아로 도망친 그는 시를 써서 귀족들의 후원을 받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드레스덴으로 가서 오페라 대본 수정 번역 작업을 소일거리로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 친구가 써준 소개장 한 장을 들고 요세프 2세 황제의 궁정 악장이던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찾아간다. 모짜르트를 심하게 질투해 후에 그를 독살했다는 물증 없는 의심까지 받았던 그 살리에리 말이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문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던 터라 다 폰테는 쉽게 비엔나 궁정극장의 전속 대본 작가로 발탁된다. 실력 있는 대본가를 찾고 있던 황제 요셉 2세는 창작 경험이 전혀 없다고 고백하는 다 폰테를 보고 "좋아. 그렇다면 우리는 처녀 뮤즈를 손에 넣은 셈이군"이라며 오히려 좋아했다.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 4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대본가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살리에리와 함께 한 첫 번째 오페라는 실패로 끝나고 살리에리는 이를 다 폰테의 탓으로 돌렸다. 

 

절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운명처럼 모차르트를 만나고 두 사람은 오페라 역사에 획을 긋는 세 편의 작품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를 연달아 발표한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한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1790년 요세프 2세 황제가 서거하자 비엔나의 상황은 급변했다. 오페라에 관심이 없던 새 황제 레오폴드가 후원을 끊어버린 것이다. 추방령으로 베네치아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다 폰테는 요제프 2세가 프랑스 부르봉 왕가로 시집간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 앞으로 써준 편지를 들고 영국 여성 낸시 그랠을 태운 채 파리로 향한다. 그녀는 장차 그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출산한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었고 믿고 있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마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또 다시 행선지를 런던으로 바꾼다. 런던에 정착한 그는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면서 오페라 제작자로서 활동하기도 하고, 가게도 오픈해보고 또 교사로도 일하며 부지런히 새로운 일들에 도전했지만 런던 생활은 결국 빚더미와 파산으로 끝나고 그는 또 다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다. 

1805년, 긴 항해 끝에 미국 땅에 도착한 그는 펜실베니아에서 이탈리아어 개인교습을 하며 잡화점을 운영하다 뉴욕으로 건너가 서점을 연다. 그곳에서 그리스 문학과 신학의 권위자였던 무어(Clement C. Moore) 교수를 만나 콜럼비아 대학 이탈리아 문학 교수로 임용된다. 이탈리아인 최초로 뉴욕에서 교수가 된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오페라 “돈 조반니”의 뉴욕 초연과 로시니의 오페라 투어 공연을 성사시켰다. 1828년, 그는 일흔 아홉의 나이에 드디어 미국 시민이 된다. 5년 후, 그는 온 열정을 쏟아 부어 뉴욕에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을 설립하지만 극장 경영은 부진했고 화재가 두 차례나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인 메트로폴리탄을 세우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838년, 그는 89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유럽 전역에서부터 신대륙까지 넘나들며 성직자, 시인, 교사, 도박사, 대본작가, 잡화점 주인, 책방주인, 양조업자, 바텐더, 공연제작자, 교수, 극장 경영자 등 수 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광폭행보를 했던 그의 삶이 얼마나 버라이어티했을지 상상해보라. 지역과 종교, 시대를 넘나들며 펼쳤던 그의 연애담은 책 몇 권으로도 모자랄 만큼 무궁무진해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돈 조반니의 연애행각이 무색할 정도다. 

 

사실, 천재 작곡가 모짜르트의 명성에 가려 그의 조력자로 끝났을 법한 로렌초 다 폰테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미국의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의 연작 소설 “뉴욕 3부작”(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을 통해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콜롬비아 대학 복도에서 로렌조 다 폰테의 동상을 마주하게 되고 대서양을 넘나들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에 대해 조사한다. 물론 이 부분은 전체적 스토리의 흐름에 무관한 한 조각일 뿐이지만 “프란츠 카프카”와 비견되며 우연의 미학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폴 오스터의 대표 소설 뉴욕 3부작이 주목 받으면서 로렌초 다 폰테가 재조명 된 것이다.

 

그가 연애의 달인(達人)이어서 아니면 그의 수많은 기행(奇行) 때문에 그의 대본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18세기, 유럽은 변화하고 있었다. 아니 격동의 시기였다. 17세기부터 시작해서 18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계몽주의는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수에게 한정되었던 권위와 특권, 제도를 타파하고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유(思惟)와 이성의 계몽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꾀하려 했던 그 시대의 정신이 다 폰테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하지만 그는 귀족의 추한 행태를 비아냥거리면서도 미소년에게 혹은 돈 많은 귀족에게 그리고 잘생긴 청년에게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꿰뚫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오페라 부파(희가극)라는 양식이 탄생했지만 이탈리아 전통극의 교과서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에 웃음 속에 철학과 시대정신을 담은 그의 대본이 모짜르트라는 천재 작곡가를 만나 새로운 경지를 만들었다. 오페라 사에서 그의 이름은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가슴깊이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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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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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 다 폰테의 절친이자 원조 뇌색남 카사노바(Giovanni Giacomo Cas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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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소개 된 폴 오스터(Paul Auster)의 뉴욕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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