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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에 대한 비판 고조와 엔저의 향방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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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6일 17시10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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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의 생활고 경시한 구로다 발언 비판 

 

각종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와 함께 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의 기업도 가계도 물가 급등에 고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행의 구로다 총재가 "가계는 물가상승을 수용하고 있다"고 발언하자 비판이 쏟아지면서 일본은행이 발언을 철회하는 소동이 발생했다. 이 발언은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나온 실언도 아니고 일본은행이 조직적으로 신중하게 준비한 총재 강연 원고에서 나온 실수였으며, 그만큼 일본은행이 바라보는 일본경제의 상황에 대한 판단이 일본의 각 경제주체와 괴리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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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4월에 전년동월비로 2.5%의 상승세를 기록했으며, 미국 등에 비해서는 낮지만 0~1%대의 물가가 지속되었던 일본인들에게는 높은 수준이 되고 있다. 사실, 4월의 생활물가의 상승률을 보면 휘발유가 15.7%, 등유 26.1%, 도시가스 23.7%, 전기 21%, 식빵 8.9%, 수입 쇠고기 10.3%, 식용유 36.5%, 마요네즈 24.3%, 냉장고 16% 등을 기록, 일본 소비자의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행이 분기별로 공표하고 있는 ‘생활의식에 관한 앙케트 조사’에서도 물가상승으로 여유가 없어졌다는 응답이 확대되고 있다. 식사량을 줄였다는 가정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구로다 총재가 지적한 대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동안 외출소비가 줄고 정부의 생활지원책도 있어서 가계에는 과거의 증가 추세에서 벗어날 정도의 과잉저축이 수십 조엔에 달하고 있다. 다만, 가계 저축에는 편차가 있어서 저축을 하지 못한 가계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물가상승세의 고조로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가계의 경우 엔저와 고물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고집스러운 금융완화 정책 자세로 엔저 가속화

 

일본국민들이 구로다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한 데에는 일본은행이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도 엔저 유도 효과를 가진 금융완화 정책 기조를 고수하는 데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2%라는 당초 목표에 도달했는데도 일본은행이 금리인상을 억제하고 엔저를 유도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물가상승세를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종합지수 기준으로 2.5%를 기록했으나, 신선식품을 제외한 지수로는 2.1%. 여기에 에너지까지 제외한 지수로는 0.8%에 그쳤다. 

 

일본 은행의 물가 목표는 2%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을 기대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일본은행은 지금의 물가상승세가 지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디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융완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물가 2%를 목표로 한 금융완화 정책이 아베노믹스와 함께 2013년 이후 지속되어 왔는데도 근본적인 달성에는 실패한 것을 고려하면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은 1% 정도의 물가상승률로 만족해야 한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구로다 총재의 의지도 작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은행이 지난 4월 말의 정책결정회의에서 제시한 소비자물가상승률(신선식품 제외 기준) 전망치(중앙수치)는 기존의 1.1%에서 1.9%로 상향 수정되었지만 일본은행은 오히려 금융완화 정책을 강화하는 자세를 보였다. 단기 콜금리를 -0.1%, 장기금리인 10년 만기 국채금리를 0.25%로 억제하는 수익률 곡선 제어(YCC : Yield Curve Control) 정책을 강화해 시장참여자들의 놀라움을 유발하기까지 했다. 장기금리가 0.25%를 넘어서 상승할 경우에 일본은행이 국채를 무조건 매입하는 오퍼레이션을 그때그때 하겠다는 종전 입장에서 매일 하겠다고 변경한 것이다. 

 

금년 들어서 엔저의 부작용으로 인해 금융시장 일각에서 가졌던 소폭의 금융완화 정책 수정 기대를 일본은행이 무너뜨리면서 더 이상 그러한 기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엿볼 수 있는 고집스러운 결정으로 인해 엔화는 그 후 1달러당 130엔대를 돌파하는 엔저를 보였다. 일본은행으로서는 엔저 요인을 가시화해 엔저가 1달러당 130엔대를 진입하면 엔저 압력이 서서히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4월 말에서 5월 초순에 1달러당 130엔대를 돌파한 엔화는 5월 중순 이후 다시 120엔대 후반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은행의 고집스러운 정책 자세는 외환시장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다’는 강한 기대를 형성해 투기 세력이 엔화 매도에 안심하면서 임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왜곡된 시장분위기를 형성한 측면도 있다. 사실, 엔화는 6월에 다시 1달러당 130엔대의 엔저를 기록, 지난 6월 13일에는 1달러당 135엔으로 추락, 24년만의 엔저를 기록했다. 지난 1998년에 엔화가 1달러당 135엔으로 하락하여 일본정부가 시장개입에 나섰을 때에는 아시아 통화위기의 여파와 함께 일본 금융시장에서 부실채권 문제가 극도로 악화된 비상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금융기관의 경영은 안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극심한 엔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기 엔저에도 불구하고 리먼쇼크 이전에 확대된 바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 즉, 저금리인 일본 엔화자금을 조달해 고금리인 미국 달러 및 신흥국 투자 등에 나서는 거래는 최근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러한 엔 캐리 트레이드는 리먼쇼크 당시의 초엔고 반전으로 인해 거액의 손실이 발생한 것과 그동안 구미 각국도 초저금리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축소되었다는 요인 때문에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확대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일본 자금의 상환 효과에 의한 엔화의 강세 압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경제 위기 때의 엔고라는 안전통화로서의 엔화의 위상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국제원자재 가격의 상승, 지정학적 불안 등으로 인해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일본의 엔화에 대한 매도 압력이 강화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일본은행의 저금리 고수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만약, 투기 세력에 의한 엔 캐리 트레이드까지 본격화될 경우 추가적인 엔저 압력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엔저의 불안한 향방

 

이미 상당히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떨어진 엔화 환율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더 이상의 엔저는 일본정부나 일본은행도 바라지 않다는 코멘트가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의 허가 없이 일본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이 단독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계속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지금의 엔저 압력의 원인인 미국의 물가 및 금리 상승 우려,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 일본은행의 저금리정책 고수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투기세력으로서는 아무리 엔저가 되어도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질 경우 엔화 매도 투기에 열을 올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신흥국 경제의 위축, 국제적인 자산 시장의 하락세를 고려하면 엔 캐리 트레이드로 저금리 엔화 자금을 빌려서 마땅히 투자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임금 및 물가 상승 압력도 경제성장세의 하락이 점차 가시화될 경우 완화될 것이며, 내년도에는 적어도 금년도만큼의 금리인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과거 러시아의 평균 전쟁 기간인 3년 정도의 장기전이 될 가능성은 있으나 내년도의 국제유가 상승률도 금년도에 비하면 떨어질 가능성은 높다고도 할 수 있다. 

 

당분간 엔저 기조가 지속되겠지만 금년 후반에서 내년도를 바라볼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엔저 압력도 완화될 가능성은 있다. 다만, 그 이전에 일본은행이 금융정책을 미조정하거나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시장에 강하게 형성하지 못하면 투기세력이 마음 놓고 엔화 매도 투기에 나서면서 엔저 현상이 오버 슈팅 할 위험은 있으며, 그 경우 1달러당, 140엔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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