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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인도는 왜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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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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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유엔의 대러시아 비난결의안에 3번 모두 기권

- 미국 등 서방국가들, 인도의 의외 행보에 놀라

- 과거 ‘비동맹국가의 맹주’란 시각에서 보면 이해 가능

- 인도와 러시아는 오랜 친선 우호협력 국가

- 무기, 에너지, 식량안보 등 러시아와 협력 긴요

- 인도, 국가이익 위해 검증된 외교전략 채택한 것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이로써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전쟁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소련이 무너진지 30년만에 동서(東西)가 다시 대립하는 ‘신냉전’ 상황도 벌어졌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친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일부 강성 친러성향 국가들과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예외 국가가 있다. 인도다.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국제무대에서 벌어진 외교전에서 단 한 차례도 러시아를 공개 비난하지 않았다. 인도는 2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우크라이나 침공규탄결의안에 중국 및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기권했다. 3월 2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도 인도는 러시아의 침공규탄 및 철군결의안에도 기권표를 던졌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 부차(Bucha) 지역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수백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강하게 이 사건을 비난하며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조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때도 러시아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충격이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민주적, 반인권적 침공에 침묵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인도는 민주주의를 기치로 모인 쿼드(Quad) 4개국(미국, 인도, 호주, 일본)의 일원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이후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원유를 계속 수입하고 무역관계도 그대로 유지했다. 

 

인도는 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외교적 행보를 하는 것일까? 인도의 이 같은 ‘전략적 중립’ 정책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인도의 대외정책과 인도-러시아의 관계, 인도-미국관계 차원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도의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정책

 

인도는 비동맹주의(non-alignment)의 맹주로 꼽힌다. 인도의 비동맹정책은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로부터 시작되었다. 네루는 1948년 제헌의회에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이끈다’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오늘날 세계 주요 강대국들의 외교정책은 비참하게 실패했다(miserably failed)”면서 비동맹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 혹은 소련의) 동맹에 가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국 그것은 단지 한 가지를 뜻합니다. 특정 문제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포기하고,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그의 견해를 채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을 할 때 항상 첫째 인도의 국가이익, 둘째 그 장점이 무엇인가란 측면에서 각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즉, 그것이 인도에 이익을 주거나 장점이 없다면 단지 특정 한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투표를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1949년 총회에선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모든 나라에 우호적이면서도 큰 블록으로부터는 멀어지는 것입니다….이는 우리를 어떤 갈등으로 이끌 수 있는 어떤 동맹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다른 나라와 긴밀한 관계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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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의 비동맹정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들 간의 냉전에서 어느 쪽과도 동맹을 맺지 않겠다는 중립적, 독자적 노선을 의미한다. 평화공존,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상호평등과 상호이익의 인정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런 원칙에 바탕한 인도의 비동맹 정책은 독특한 형태의 실리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인도는 미·소 초강대국들 간의 냉전 대립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외교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냉전의 폐해로부터 자국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다. 또 이를 통해 미·소 양 진영으로부터 실질적인 대외 경제원조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네루의 비동맹 정책은 한국전쟁의 외교적 해결에도 적용되었다. 당시 인도는 유엔이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응징하려는 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한국에 유엔군을 주둔시킨다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는 반대했다. 다른 친서방 측의 입장과는 다른 결정이었다.

 또 인도는 남한에 억류된 반공포로의 석방과 제3국 송환을 원하는 포로들을 위한 중립국송환위원회 의장국을 맡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태도로 비동맹주의를 훌륭하게 실천한 바 있다.

 

과거 냉전기간 동안 인도는 초강대국 분쟁에 얽히지 않고 주권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면서 비동맹정책을 실천했다. 그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사태, 즉 ‘신냉전’ 상황은 오늘날 인도의 외교정책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통적 비동맹정책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러시아의 장기적 우호협력관계 

 

냉전시대의 초강대국인 미·소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겠다는 인도의 비동맹주의는 실제로는 소련에 기울어진 경향이 있었다.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사회주의라는 독특한 혼합식 제도를 채택했다. 이는 초대 총리 네루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였다. 

 

네루는 어린 시절 영국에 유학해 명문 해로스쿨과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던 영국에서 네루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몸소 체험했다. 반면 경제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수억명의 인구에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인도에는 자본주의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영국에서 자생한 평화적 사회주의 페이비어니즘(Fabianism)에 매료됐다. 

 

네루는 정치적으로 인도에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허가와 규제를 위주로 한 사회주의적 경제를 추구했다. 이에 따라 당시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과 구상무역(求償貿易)을 하는 등 밀접한 경제관계를 유지했다.

 

소련은 1991년 붕괴될 때까지 인도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였다. 소련의 경제적 기여와 기술적 노하우는 석유와 가스, 광업을 포함한 인도의 국내산업 발전에 필수적이었다. 소련은 또한 인도의 에너지 안보를 보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인도 시민 라케시 샤르마는 소련의 인테코스모스(Intekosmos)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문화교류 또한 처음부터 러시아(소련)와 인도 관계의 중심에 있었다. 소련의 역사가, 철학자 및 예술가들은 혁명적이고 문학적인 인도 인물에 대한 큰 존경심을 나타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힌디어 영화는 러시아어로 더빙되어 절찬리 상영됐고,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소련은 또한 러시아 고전 텍스트가 인도에서 널리 읽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인도 시장에만 초점을 맞춘 출판사를 설립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인도-소련 관계는 국방외교 관련이었다.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인도와 소련의 외교관계는 상호간 높은 수준의 ‘정치적·전략적 신뢰’에 의해 형성되었다. 양국은 이 같은 신뢰에 바탕해 논쟁적 국제이슈에 대해 늘 비슷한 입장을 취했고, 서로를 지원했다. 

 

소련은 처음부터 인도와의 동맹을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지배력을 상쇄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인도는 국제정치에서 강대국 소련이 제공하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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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소련(이후 러시아)의 입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55년 소련 지도자 니키타 후르시초프는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 주권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 가까워서 산꼭대기에서 (인도가) 우리를 부르면 우리는 당신 곁에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 이후로 소련은 카슈미르에 대한 국제적 개입을 막는 최후 보루였다.

 

소련은 카슈미르에 대한 국제적 개입을 촉구하는 1957년, 1962년, 197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거부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양자 문제라고 주장했다. 소련은 인도-파키스탄 분쟁 전반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소련의 입장이 인도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마침내 1971년 인도와 소련은 ‘평화, 우정 및 협력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소련과 인도와의 동맹을 공식화함으로써 남아시아에서 인도의 우위를 보장했다.

 

이같은 소련의 우호협력 정책에 인도도 적극 화답했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 혁명을 폭력적으로 진압했을 때 네루의 인도는 소련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자제했다. 

 

1968년 소련군이 프라하의 봄을 짓밟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는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인 소련 비판을 삼갔다. 인도는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에도 기권했다. 하지만 네루 총리나 인디라 총리는 비공개석상에서는 ‘사적(私的)으로’ 소련의 행위를 비판했다. 

 

1979년 소련이 새로운 친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들이닥쳤을 때, 차란 싱 총리를 포함한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소련의 침공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인도는 소련을 비난하는 유엔총회결의안 투표에선 기권했다. 인도는 당시 기권한 유일한 비동맹 국가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인도와 러시아의 특별한 관계는 계속됐다. 2000년 인도의 바지파이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략적 파트너십 선언’에 서명했다. 양국은 2010년 이의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전략적 파트너십’에 서명했다. 이 특별한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러시아는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2019년 인도가 잠무(Jammu)와 카슈미르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헌법 제370조를 폐기했을 때, 모디 정부는 국제사회의 심각한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번에도 이를 인도의 “내부 문제”라고 인도를 변호했다. 

 

인도 역시 2000년대에 들어서도 러시아에 우호적 투표행태를 유지했다. 2000년대 초반 인도는 제2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의 "부적합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는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인도는 또한 러시아가 지원하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비판적인 2013년과 2016년 유엔총회결의안에도 기권했다. 예상대로 인도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결의안에 기권했고, 2020년에는 크림반도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유엔총회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양국 간 이같은 긴밀한 우호협력 과정과 역사적 경험을 통해 소련(러시아)은 인도에게 ‘믿을만한 파트너’로 확고히 인식되었다.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위에서 본 것처럼 소련(러시아)은 인도 국내정치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인도가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마다 미국은 수시로 인도를 비판했다. 대표적인 예는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을 때이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인도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도양에 전함을 파견해 위협했다. 사실상 인도의 숙적 파키스탄을 편드는 행위였다. 인도로선 매우 실망했고 배신감을 느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전함을 쫓아내기 위해 해군을 파병했다. 

 

1961년 인도 정부는 고아(Goa), 다만, 디우 등 인도 내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종식시키기 위해 군대를 사용했다. 그러자 미국, 영국 등은 득달같이 일어나 인도를 비난하고 인도 정부에 군대를 즉시 철수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그러나 소련은 이 결의안에 반대했다. 만약 당신이 인도인이라면 미국 소련 중 누굴 지지하겠는가? 

 

물론 미국이 과거 인도에 비판적, 적대적으로만 대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이 인도를 도와준 여러 선례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인도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했을 때 미국은 인도에 식량원조 등을 수차례 해주었고, 1962년 인도-중국 국경분쟁 때는 인도에 군사적, 외교적 지원을 해주었다. 또 2000년대 들어선 인도의 평화적 핵개발을 허용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와 인도인들은 소련(러시아)을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 대해선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전략적 파트너’란 인식이 강하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인도가 러시아에 이처럼 의존적 관계를 갖게 된 것은 미국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과거 인도가 미국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돼 중국 파키스탄 등 주변국들에 위협받고 있을 때 유일한 파트너는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였다”고 지적했다.

소련(러시아)은 믿을만한 파트너, 미국은 ‘온전히 믿기엔 좀 찜찜한 파트너’라는 인식은 인도 정부는 물론 인도 국민사이에서도 널리 그리고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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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으로 구축한 인도 무기체계

 

이같은 인도와 소련(러시아)의 안보국방 협력은 양국간 군사협력으로 확대, 실천됐다. 소련은 당시 수십년 동안 인도의 함대에 장착할 충분한 군사 하드웨어를 인도에 제공했다. 여기에는 항공모함, 탱크, 총, 전투기, 미사일 등이 포함된다. 소련은 또한 인도 해군 창설의 중심이었고, 1980년대에는 인도에 핵추진 잠수함을 임대까지 해주었다.

 

이런 군사협력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러시아산 무기는 오늘날 인도 군대의 60~8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연구소 스팀슨센터는 러시아산 무기가 한때 인도 주요 무기시스템의 85%까지 점유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도의 러시아에의 무기 의존도가 줄고 있다. 인도 정부가 무기수입국 다변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1>에서 보듯, 지난 10여년 간 인도 군대의 러시아 무기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줄었다. 인도는 프랑스를 위시해 이스라엘, 미국, 영국 등에서 더 많은 군사장비를 구입했다. 

 

SIPRI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인도가 프랑스, 미국, 이스라엘 등으로부터 구입한 무기 수입액은 2017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무기구입이 급증세다. 인도가 최근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군사장비는 라파엘 제트기, 미라지 전투기, 스코르핀 잠수함 등이었다. 이스라엘로부터는 드론장비, 공중경보시스템, 방어미사일, 정밀유도탄 등을 구입했다.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도 강화되고 있다. 양국간 방위 무역은 최근 증가세다. 주요 무기로는 미국의 장거리 해상순찰기, C-130 수송기, 미사일 및 무인항공기 등을 포함한다. 최근 미 국방부는 “우주 방위 및 사이버 보안에 대한 인-미 협력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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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인도의 무기수입 다변화로 인해 러시아산 무기수입은 2012년 87%에서 2021년 32%로 급격히 줄었다. 반면 프랑스산은 2021년 48%로 러시아산을 추월했다. 인도의 무기수입 다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한쪽 편들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산 무기에의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도의 무기체계는 대부분 러시아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이런 환경도 인도의 전통적 비동맹 정책이 현재도 힘을 발휘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중국 및 파키스탄에의 전략적 대응 필요성

 

인도가 러시아를 비난하지 않는 ‘전략적 중립’, 비동맹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과거 인도-러시아간 ‘향수(鄕愁)’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고 현실적인 이유는 인접한 ‘숙적’ 중국과 파키스탄에 대한 대응전략 때문이다. 이들 두 국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인도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과거 인도는 중국과 1차례, 파키스탄과는 3차례 전쟁을 치렀다. 중국과 파키스탄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는 소련(러시아)제 무기를 수입해 세계 4위의 군사무기체계를 구축했다. 만약 인도가 러시아와 사이가 나빠지면 러시아는 인도 대신 중국·파키스탄과 가까워질 수 있다. 이는 인도로선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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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러시아전쟁에 대한 인도의 대응전략

 

인도는 비동맹주의 노선을 견지해 중국과 파키스탄이 러시아와 연합하는 것을 막고자 한다. 러시아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막고, 파키스탄과 새로운 전략적 관계를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유혹을 제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러시아와 더 가까운 관계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러시아가 중국, 파키스탄과의 근접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중국은 미국 다음의 세계 경제·군사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상으로 인도와 중국의 국력 비대칭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공세적으로 군사력을 투입한다. 인도는 2020년 인도 북부 갈완 계곡에서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인도가 전통적 우방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의 부상에 헤징(hedging) 전략으로 미국과 우호 관계를 증진하려는 이유다.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노골화되면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인도가 절실히 필요했고, 인도 역시 숙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적극 도모하고 있다. 미국은 2007년 인도와 ‘민간핵협력협정’을 체결해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했으며, 2017년에는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를 본격화했다. 인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의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 대한 미국의 입장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인도의 미온적 대응에도 인도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무산 뒤 미 국무부는 자국 외교관들에게 ‘인도와 아랍에미리트의 카운터파트들을 만나 비판하라’는 전문을 보냈다가 곧바로 회수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월 25일 “미국과 인도는 중요한 이해관계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러시아 관계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이 관계는) 오케이다.”고 말했다. 

 

미국 편이 돼주지 않은 인도에 서운하면서도,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가치를 생각한 미국 정부의 곤혹한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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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미국은 인도에 5억 달러(약 6333억원) 규모의 군사금융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5월 17일 보도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블룸버그통신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도가 러시아에 대한 비판에 소극적이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를 장기적 안보 파트너로 보고 이같은 검토에 나섰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무기 최대 수입국인 인도의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 인도의 안보협력을 강화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5월 24일 도쿄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서도 인도의 입장이 적극 관철됐다. 쿼드 정상회의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규탄 수위는 ‘원론적’ 수준으로 낮추면서, 중국에 대해선 한 단계 올라간 경고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와의 좋은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중국의 팽창은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인도의 의중이 관철됐다는 평가다. 러시아도 밉고 중국도 미운 미국·일본·호주 3국의 입장보다는 중국은 밉지만 러시아에는 그럴 수 없다는 인도의 입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이와 관련, 영국 BBC 방송은 “인도를 뺀 쿼드 3국, 특히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인도가 보인 태도에 몹시 분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이 밀착하는 건 인도 국익을 위협하는 전개로, 결국 쿼드는 러시아 성토는 최소화하되 4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의 우크라전쟁 대응정책 변화할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인도가 취한 중립적, 비동맹적 태도는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과거 인도가 취한 외교정책, 대러관계를 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 양국간 강력한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경제적 유대 관계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인도 정부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면서 러시아와 함께하기로 한 결정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인도의 현재와 같은 친러시아적 관계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인도가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고,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의 협력관계를 지속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만 부국장은 “인도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편안해 보이지 않지만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방어와 지정학적 필요성 때문에 인도가 현재로서는 그렇게 할(입장을 바꿀)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블랙윌 전 인도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이나 인도 둘 다 솔직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해관계는 신용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구축한 공동이익이라는 견고한 기초이다”

 

인도는 미국 등 서방은 물론 러시아와도 우호적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인도는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거나 서방의 제재로 인해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나선다면, 인도 정부는 푸틴에 대한 입장을 재평가할 수도 있다.

 

글을 마치면서 드는 생각…. ‘세계 최대 민주주의’ 인도는 향후 대외정책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에 보다 중점을 둘 필요가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부상하는 세계 경제·군사대국 인도를 보다 존중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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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6월12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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