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올바른 진단과 처방으로 법을 만들어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5월24일 17시10분

작성자

메타정보

  • 6

본문

의사가 처방을 제대로 내리려면 진단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진단에 따라 투약, 시술, 수술, 예후관찰 등의 방법을 택한다. 그러니 진단이 중요하고, 진단을 위한 기술들이 발달한다.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 CT, MRI, 초음파, 내시경, 내시경초음파 등등 나날이 발전하고 AI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을 보면 돌팔이 의사 같다. 진단도 처방도 엉터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한 가지 현상에 꽂혀 자신들이 내리는 처방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처방의 효과에 대한 분석은 아예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번 법을 만든 후에 사후에라도 챙기는 경우가 없다.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인다고 안전속도 5030 법(도로교통법)을 만들었다. 이면도로에서 시속 30km이하 간선도로에서 50km 이하로 다니라는 것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후에 위반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실제로 지켜질 수 없는 법이다. 또 이 법으로 교통사고와 인명피해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또 환경이나 에너지 효율, 물류비용 등에 대한 고려도 일체 없다.

도로의 여건이 차 한대도 지나기 어려운 골목길부터 10차선까지 다양한데 어떻게 이렇게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도로의 현실과 시간대 별 교통량, 주변 환경에 따라 시속 10km에서 80km 정도 까지 IoT, 인공지능, 첨단디스플레이 등을 활용해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단순히 속도를 낮추면 사고가 줄겠거니 하는 막연함 만으로 이런 불편과 비용을 발생시킬 수 없다. 환경적인 고려도 빼 놓을 수 없는 세상이다.

 

중대재해법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끔찍한 대형 참사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사건을 들 수 있다. 해당 기업의 회장들은 오랜 수감 후 병마로 사망하거나 체포 과정에서 객사(客死) 하기도 하였다. 두 사건 모두 엄청난 비리와 부실이 내재되어 있고 기업의 총수가 깊게 관여되어 있어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수 십 년 째 안전에 대해 엄청나게 강조를 하고 있음에도 지하철 화재, 병원 화재, 물류창고 화재, 아파트공사장 붕괴, 연쇄충돌, 작업장에서의 사망 사고 등 끊이지 않고 있다. 대형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니 급기야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경영주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고 재해 방지가 목적이라면 이 법은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다. 안전에 필요한 사항과 절차들을 세세하게 법률과 규정으로 마련해야 할 정치권과 행정기관이 기업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다. 닥치고 사고를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요인들을 제거해 가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거기에는 필요한 시설투자, 지켜야 할 절차, 거래(사업)관행, 비용구조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이런 내용들을 세세하게 챙기는 과정에 숨어있는 모순도 들춰내 고쳐야 한다.   

 

미국 여행 중에 만난 스쿨버스 만 봐도 우리와 다르다. 노랑색만 칠하면 스쿨버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차량 자체가 엄청 견고하게 생겼다.(차량 가격이 25만~30 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또 어린이 승하차 시에는 브레이크 등이 이중으로 켜지고 ‘stop’ 사인이 귀처럼 펴진다. 이 때는 모든 차가 정차해 기다려야 한다. 우선 어린이 등하교 시 안전을 위해 차량(시설)에 투자하고 자동차가 갖춰야 할 장치들을 규정하고 있다. 또 스쿨버스 정차 시에 지켜야 할 규칙이 교통법에 반영되어 있다. 어기면 엄청난 과태료가 부과된다. 결국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절차를 마련하고 지켜야 한다.

 

최근 신축 아파트 붕괴로 인한 참사가 일어났다. 역시 처벌도 중요하지만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미국에서 고층아파트 공사 현장을 지속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장이 엄청 청결하고 안전해 보인다. 인부 수도 많지 않고 공중에 매달려 하는 위험한 작업도 안 보인다. 먼지도 많이 발생하지 않아 시내인데도 가림 막도 없다. 현장에서는 거의 조립 작업 만 이루어 지는 듯 했다. 작업시간도 아침 정해진 시간에 시작해 오후 4가 되면 칼 같이 정리한다. 또 우천시에는 공사를 중단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철저한 절차를 마련하고 지켜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가격 통제 등 모순적인 압력을 기업에 가하고 있으니, 기업은 편법을 찾고 그 사이에 위험 요인은 커지기 마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 일어난 사고의 85%가 제조,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또 2024년으로 적용이 유예되기는 하였지만 50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84%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거나 광범위하게 벌이는 큰 사업일수록 위험에 노출이 크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필요한 투자, 투자유인, 위험을 제거할 절차(process)의 마련에 있는 것이다.

 

검수완박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검찰이 선택적 정의를 택하는 것이 문제이면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사법체계를 충분한 검토도 없이 얼렁뚱땅 만들어버리니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 한다. 

검찰이 아닌 다른 기관에 권한을 다 주면 정의가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다. 또 수사와 기소를 완전 분리함으로써 복잡하고 대형인 사건의 경우에도 공소장만 보고 기소를 유지해야 하는 불합리를 안게 된다. 그러니 다른 의도를 의심 받게 되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엉터리 의사 같은 짓 하지 말고, 사회에 대한 보다 바른 이해와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해야 한다. 현상을 있으키는 다양한 원인과 자신들이 내리는 처방의 영향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도 하여야 한다. 또 손쉬운 처벌이나 책임전가(責任轉嫁)식의 법이 아니라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절차(process)를 규정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6
  • 기사입력 2022년05월24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