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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새 정부의 경제정책 능력에 대한 첫 번째 시험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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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4월06일 17시10분

작성자

  • 이종규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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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지금 아주 ‘괴팍’한 경제현상에 맞닥뜨리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 현상에 대한 우려가 한층 더 커졌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가 급등하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그것이다. 경제성장률 둔화나 물가 상승 모두 정책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경제현상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이 현상이 심화되면 저성장-고물가의 난국을 벗어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은 골칫거리를 떠안게 된다. 저성장 문제를 벗어나고자 하면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반대로 물가를 중시하여 긴축 정책을 펼치게 되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된다. 한마디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정책적으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물가상승이 경제성장 기반을 심하게 훼손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지난해 코로나 충격이 가시고 경기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붕괴, 일부 품목의 공급 애로 및 운송 차질 등의 요인으로 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이 상황에서 경제성장세가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등장하였다. 당시 경기 회복은 보복소비(revenge spending)라는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바 컸다. 미중 갈등 심화, 공급 애로 심화 등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제약할 것이라는 견해가 점차 우세해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작년 연말경부터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을 기정사실화하는 사건이었다.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는 등 제재가 가해지면서 에너지 가격이 대폭 오르고 그에 따라 경제성장이 제약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게다가 밀과 같은 곡물과 일부 광물 자원의 공급도 급격히 위축될 전망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를 반영하여 국내 경제주체들의 예상도 급변하였다.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급격히 늘어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가 3월 전망치는 88에 달하였지만, 4월 전망치는 83으로 급감하였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월의 2.7%에서 3월 2.9%로 상승하였다. 작년 11월 이후 기대치가 횡보하는 추세였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도 지금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예상된다. 

 

   다만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할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에너지 의존도 하락, 디지털 전환 등 경제구조 변화로 앞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더라도 1970년대와 같은 극심한 상황으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그 대응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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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단계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스태그플레이션의 심각성이 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특수한 상황적 요소들로 인하여 스태그플레이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동시에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성장과 물가의 통상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개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물가는 하락하거나 안정세를 보이게 된다. 이 관계를 경제이론에서는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라고 부른다. 이 관계가 깨어지게 된 이유는 외생적 충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외생적 요인, 즉 원유의 공급 중단 등과 같은 공급측면의 충격에 의해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거나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이 외생적 충격에 의한 저성장-고물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외생적 충격에 의해 촉발된 스테그플레이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저성장-고물가 상황이 연장되거나 심지어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주요 선진국의 사례 등을 바탕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악화될 수 있는 경우를 몇 가지를 생각해보자.

 

   첫째가 외생적 충격으로 야기된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구조화되어 있는 경우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으로 물가-임금의 악순환 구조이다. 그리고 비용 부담을 가격으로 전가시키기 용이한 구조가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주요 경제주체들이 높아진 비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가격 전가가 쉽지 않은 경우에는 외생적 충격에 의한 물가 상승이 곧 수습될 수도 있다.

 

   둘째가 정책적인 오류를 범하여 물가상승을 이어지게 하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첫 번째 사례로 경제성장과 물가의 두 가지 정책목표 중 한 가지에 치중하는 경우이다. 특히 경제성장에 치중하여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시행하게 되는 경우에는 물가 상승이 이어지고 높은 물가가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실제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아래에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비록 이 판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에 입각하여 거시경제정책을 집행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게 된다는 점을 충분히 유념하여야 한다. 

 

   세 번째 사례로 물가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들 수 있다. 주요국에서 1960년대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된 것은 바로 이 문제에 기인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급 측면의 요인으로 물가가 상승(cost-push inflation)하였기 때문에 수요 관리 정책 수단인 통화정책을 물가안정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정책기조를 소위 통화정책적 태만(monetary policy neglect)이라고 부른다. 

 

   이 정책은 물가를 실물 현상(real phenomenon)으로 이해하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견해는 유동성 공급이 크게 늘더라도 당장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점을 그 논거로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늘어난 유동성은 언젠가는 물가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현 시점에서 일부 품목의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면 과거 유동성 공급이 없었다면 지금만큼 가격이 오를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 논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물가를 실물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경우 통화정책 이외의 수단으로 물가를 관리 내지는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주요국에서 물가를 통제하고 임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려고 소득정책(income policy)을 시도하였는데 이 역시 정책적 오류의 또 다른 사례이다.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는 점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례로 외환시장을 통해서도 저성장-고물가 상황이 심화되는 연결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 1970년대 초 미국이 금태환(金兌換)을 중지함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였다. 이 상황에서 중동전쟁을 계기로 원유가격이 폭등하고 수입물가가 급등하게 되었다. 달러화 환율의 상승이 수입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말았다. 당시 미국 제조업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 하락은 수출 확대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한 반면 수입물가 상승을 유발함으로써 스태그플레이션을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상의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외생적 충격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이를 확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극력 회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은 물가상승기대를 끊지 못하기 때문에 비용 상승-가격 전가 등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가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물가는 화폐적 현상(monetary phenomonon)이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특히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는 현상은 필히 화폐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비용 견인 물가상승(cost-push inflation)은 화폐의 추수적(追隨的) 공급이 없으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 능력을 점검해보기로 하자. 먼저 민간의 가격 흡수 능력을 최근의 물가 동향을 통해 유추해보고 이어서 정책 집행 여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최근 수입물가가 30% 이상 급등하였고 생산자물가도 10%의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원가 부담 증대를 반영하여 소비자물가도 작년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오름세로 전환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내 물가도 높은 오름세로 전환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외식물가가 최근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데 이는 원가 상승 부담을 가격으로 전가하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비용의 가격 전가 현상이 폭넓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방역과정에서 영업기반이 크게 약화된 자영업자들이 비용 상승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가격 변동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농수산물과 석유류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이 3%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높아진 것도 국내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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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물가 상승률이 상당히 높은 데다 세계 경제 여건이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되기 힘들 전망임에 비추어 원가상승 압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물가 요인 중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전세 가격 상승효과가 물가지수(집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임대차 3법 시행 2년이 지난 금년 하반기부터는 전세가격이 더욱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요금 인상 지연 등 공공요금 상승 압력 요인도 산재해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여건도 감안해야 한다. 근래 노조의 활동이 한층 활성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노조는 앞으로 물가 상승과 연계하여 높은 임금 상승률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임금이 큰 폭으로 오른다면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늘고 결국에는 가격 전가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 마디로 민간부문에서는 원가 부담을 흡수할 여력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게 형성될 여지가 다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정책적 차원에서는 재정 부문에서 확대 지출이 당분간 불가피한 점을 주목하여야 하겠다. 문재인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중기재정운용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재정수지는 GDP 대비 3% 정도의 적자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가 얼마만큼의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당분간 재정적자가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이에 더하여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각종 선심성 정책들을 공약하였다. 당장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으로 최소한 50조 원 가량 지출될 예정이다.

 

   금융부문에서도 유동성 공급이 이어질 전망이다. 주택 공급 확대 과정에서 대규모 토지보상금 지급이 예정되어 있다. 주택 가격 상승 기대심리가 여전한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강하고 실제로 일부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종전의 이완적 정책기조에서 탈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1.25%로 인상하였다. 그렇더라도 정권교체 이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그 중대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8일 안철수 인수위 위원장은 인수위에서 스태그플레이션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관련 의견이나 정책 방향 등이 추가적으로 제시된 것은 아직 없다.

 

   앞으로 새 정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어떻게 다룰지 여러모로 흥미롭다. 앞으로 이 주제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정책과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공약 등을 슬기롭게 추진할 수 있을지, 민간 경제주체들의 가격전가 행위를 자제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아니면 종전과 같이 물가당국을 자처하고 행정지도 등을 남발할지, 주택을 구입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대출 제한을 완화하면서도 과잉 유동성 형성을 막을 수 있을지,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에서 경제성장을 유인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지 등 눈여겨봐야 할 사안들이 한둘이 아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여러 가지 선심성 공약을 곧이곧대로 시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가뜩이나 문재인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이 잔재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의 정책 집행 여건이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신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정책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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