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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인지와 K-POP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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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19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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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우
  •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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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홍보대사로 위촉된 걸그룹 블랙핑크가 는 10월 23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버락 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조명하는 행사인 'Dear Earth'에 연설자로 출연해 전 세계 팬들에게 기후변화 인식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멤버 개개인과 블랙핑크의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를 더하면 2.5억명에 달해 이 막강한 영향력이 초대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BTS(방탄소년단)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제76차 유엔총회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기후이야기를 연설한 후,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저희도 기후변화가 위기란 것을 인지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이것이 변화 단계가 아니라 위기 단계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지하는 게 첫 번째"라고 말했다. 두 그룹 모두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제고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K-POP스타들이 흔히 하는 일종의 선한 이벤트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기후변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사회가 시급히 인지해야만 하는 절박한 배경을 공감할 필요가 있다.

 

돈으로 계산해 보자. 유럽중앙은행(ECB)이 9월 21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비용으로 발표했는데, 이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비용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으로 30년 동안 유럽의 400만개 기업과 1,600개 은행에 대한 영향을 계산한 결과,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유럽 국내총생산(GDP)은 10% 감소하고,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기업의 채무불이행(default) 확률은 37.5%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이 결과를 내년 스트레스 테스트를 위한 기초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번 여름 유럽은 기후변화를 실감했다. 지난 7월 독일과 네덜란드 등 서유럽에 100년 만의 강한 폭우가 내렸는데, 예년 같으면 한 달 동안 내릴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둑이 무너지고 건물이 떠내려가며 18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경험하고 있지만 요즘 비는 과거보다 훨씬 사납다. 이 때문에 주로 배수인프라가 불충분한 개도국에서만 목격했던 피해가, 경험치에 맞춰 과학적으로 설계된 선진국의 건물 및 인프라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폭우가 기존의 시설 한도를 뛰어넘기 시작한 것이다. 

 

기온이 1도 르면 습도는 7%씩 상승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이 습한 공기는 과거보다 느리게 움직이며 집중적 피해를 일으킨다. 우리가 경험한 2018년 여름 최악의 폭염과 2019년 봄 최악의 미세먼지도 대기 정체가 피해를 키웠다. 문제는 이러한 이상기후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후학자가 많다는 점이다. 

 

폭우 뿐만 아니라 8월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에서 47.7도, 스페인에서 47.4도를 기록해 유럽 최고기온 기록을 갱신했다. 더 심각한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나 폭염의 빈도도 같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유엔산하 국제협의체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8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이상기후가 발생할 확률이 9배에서 40배까지 높아진다. 영국기상청(UK’s Met Office)이 유럽은 앞으로 50도가 넘는 뜨거운 기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이유다 .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00년 빈도 폭우가 유럽에 쏟아진 바로 그 날(7월 14일), 유럽연합(EU)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 초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로 이른바 Fit For 55라 불린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내용의 골자는 산업, 수송, 에너지, 농림 등 각 부문별로 온실가스의 추가감축을 위해 규정을 제개정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실행을 지원하는 것이다 .

 

산업 부문에서는 지난 16년간 운영해온 배출권거래제의 배출상한선은 더욱 낮추고, 연간 감소율은 높였다. 해상운송/도로운송/건물을 새롭게 배출권거래제에 포함됐다. 특히 도로운송 및 건물의 배출권거래제 포함으로 인해 차 연료 및 난방 연료가 상승하면 취약 계층의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을 우려해 별도 기금 마련도 제안했다. 더욱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로부터 특정 제품이 유럽에 수입될 경우 가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을 3년간의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도입한다. 우선 대상 수입품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등으로, 대상 제품을 수입한 역내 사업자는 수입량에 상응하는 인증서를 구입해야 하는데 EU 탄소배출권 가격이 기준이다.

 

수송 부문에서는 자동차 및 밴에 대한 강화된 이산화탄소 배출기준을 제시했다. 신규 차량의 탄소배출을 2035년까지 100% 감축하여 제로화 하고, 이를 위해 역내 60km 마다 전기충전소 설치 및 150km마다 수소 충전소 설치를 예고했다. 항공연료의 경우 도착지와 무관하게 EU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가능한 항공연료의 혼합 사용을 의무화하고, 해상연료의 경우 선박에 사용되는 연료의 탄소배출량을 제한한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EU에너지의 40%를 재생가능 자원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운송, 냉난방, 건물 및 산업 분야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안함과 동시에, EU내 재생에너지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지속가능성 논란이 지속되는 바이에너지 사용에 대한 기준은 강화한다. 

 

농림부문에서는 2030년까지 대기중 탄소 감축을 위해 약 3억톤의 이산화탄소를 자연 흡수원(natural sinks)으로 제거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비료 사용 및 가축과 같은 농업용 배출(이산화탄소 외) 포함 2035년까지 토지 이용/임업/농업 분야에서 기후중립(climate neutrality)을 달성한다. 벌채 및 바이매스 사용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며 산림 관리인과 산림기반 바이경제를 지원하고,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EU는 과거에도 기후·에너지 관련 정책을 실행한 결과 1990년 대비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24% 감소한 반면 60%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성과가 있다. 이번에 수립한 새로운 정책에 기초가 됐다. 는 2027년까지 7년간 예산 2조 유로 중 30%를 기후 행동에 투입할 예정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유럽은 2050년 기후중립을 선언한 최초의 대륙이자 구체적인 로드맵을 설정한 최조의 대륙”임을 강조하며, “화석 연료 경제는 한계에 도달했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 우리의 자연을 해치지 않는 좋은 일자리와 성장뿐만 아니라 건강한 지구를 남기고자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혁신, 투자, 사회적 보상 등을 통해 기후 정책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Fit for 55'라는 정책 패키지로 장차 심화될 폭우와 폭염을 막을 수 있을까? 만만치 않다는 판단이다. 'Fit for 55'​는 유럽연합(EU)이 2021년 7월 내놓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12개 항목을 담은 입법 패키지로, 2030년까지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이 정책 패키지 제안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EU회원국과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부문별 이해관계자들이 정책패키지에 대한 불만을 자신이 속한 국가를 통해 반대하고 있다. EU의 2050 탄소중립 목표와 2030 감축목표를 담은 Climate Law도 법제화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Fit for 55에 대한 온전한 합의는 향후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심지어 최근엔 EU내 에너지가격의 폭등으로 기후정책 반대에 힘이 실리고 있다. 어렵게 합의를 해도 또 다시 수 년 동안 세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한 후 정책 효과가 나기 전에 지구가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판단의 근거다.

 

일단 임계점을 넘기면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아래에 머물게 하고,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라는 목표에 합의한 이유이자,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48차 총회에서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 1.5도’에도 대응해야 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이유다. 지구는 래전부터 자연적 기온등락을 반복해 왔는데, 지난 100만 년 동안에는 빙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주기로 반복됐다.

 

최근 빙기는 2만 년 전부터 녹기 시작해 1만 년 전까지 자연적으로 기온이 4∼5도 상승해 지난 만 년 동안 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100년에 걸쳐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해 인위적으로 기온을 1도 더 올렸고, 2015년 기준의 각 국가별 감축 목표를 지킨다고 해도 이번 세기말에는 기온이 결국 약 3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심지어 IPCC는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이 1과 2도 사이에서 티핑 포인트(탄소배출과 같은 점진적 일로 전체 균형이 깨지는 시점)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이를 넘기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기온이 지속 상승해 문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70년에는 순배출제로에 도달해야 하고,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로 감소시키고 2050년에는 순배출제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평생 지구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는 약 4천억톤 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4백억톤이다. 10년 후에는 소진되는데, 탄소감축과 경제성장의 성공적인 탈동조화(decoupling)를 이미 경험한 EU도 대응이 만만치 않다면,  다른 국가는 더할 것이다 .

 

랜 기간 정부정책 및 기업전략을 자문하고 시민사회와 교류하며 다양한 주체와 소통하면서, 어쩌면 우리 사회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실체만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위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지금의 위기만 봐도 그렇다. 한 주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업, 개인 대부분이 그렇다. 이 때문에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이 30년째 이어지고 있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간의 합의도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것 같다.

 

같은 이유로 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관련한 발표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충분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유럽의 폭우나 푹염이 11월에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대중들에게 잊혀져 강력한 협력과 즉각 대응을 위한 불충분한 구호로만 남을 것이 걱정된다. 

 

미국은 친환경으로 국제사회의 리더임을 선언했지만, 올해 상반기 석유 시추 승인 건수는 2,500건으로 부시 정권 이래 가장 많았다. 작년 9월 탄소중립을 선언한 중국은 2020년 석탄발전소 신설용량은 38GW로 전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합 보다 3배를 초과했고, 올 들어 새 화력발전소 건설 인가는 지난 2년 합한 것보다 많다. 

영국과 일본 등에서도 적은 예산 배정과 입법 지연 등 정부와 의회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 필자가 세계의 모든 사회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합의하고 대처할 수 있겠는가?

 

지난 여름 유럽이 경험한 폭우나 폭염을 운이 나쁜 특정 지역이나 일년의 이벤트로 생각해선 안된다. 과학이 보내는 랜 위기경고를 외면한 채 위험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해, 드디어 선진 시설의 한계도 넘어서기 시작한 하인리히 법칙의 초기로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어른이 인지하지 못한 결과를 아이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6년 전 파리협약을 합의한 정상들이 대부분 지금의 정상들이 아니 듯이, 10년 후에는 또 다른 리더들이 기후변화 대응성과를 논의할 것이다. 선언보다는 빠른 실행을 위한 내재화가 중요한 이유다. 너무 늦었다기 전에, 너무 어렵다기 전에, 전혀 관심없다기 전에, 위기를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블랙핑크와 BTS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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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19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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